제조업 생산능력 6년째 ‘제자리’…반도체만 95% 뛰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 이후 반도체의 ‘나홀로 독주’가 제조업의 구조적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반도체 분야의 공장·설비 등 생산기반이 6년여 만에 100% 가까이 늘어난 데 비해 전체 제조업의 생산기반은 5% ‘찔끔’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생산에서도 반도체와 대기업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반면 중소기업은 2020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성장의 온기가 고르게 확산되지 못하면서 대·중소기업 격차를 비롯해 소득·자산 양극화의 ‘그늘’도 짙어지는 모양새다. | 관련기사 2면
14일 국가데이터처의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를 보면 올해 2분기 반도체 생산능력지수(2020=100)는 195.3으로 집계됐다. 기준연도인 2020년보다 생산능력이 95.3% 늘어 2배 가까이 확대된 것으로 최대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5.3으로 2020년보다 5.3% 증가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생산능력지수는 기업이 현재 설비와 노동력을 활용해 정상적인 조건에서 얼마나 많이 생산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생산능력지수가 커졌다는 건 그만큼 생산할 수 있는 기반과 설비 규모가 늘었다는 뜻이다. 즉 한국 제조업의 생산기반 확대가 반도체에 극단적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도체 독주는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최근 고착화하는 흐름을 보인다.
반도체 생산능력지수는 2021년 말 123.7에서 2022년 말 136.4, 2023년 말 152.8, 2024년 말 164.5로 상승했고 지난해 말에는 189.1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2~105 수준에 머물렀다. 반도체와 나머지 제조업의 생산기반 격차가 해마다 벌어진 셈이다.
제조업 생산능력 ‘제자리’
반도체 ‘나홀로 독주’ 구조화…기업·자산별 불평등 심화 우려
실제 생산량을 봐도 반도체 쏠림이 뚜렷하다. 올해 2분기 반도체 생산지수는 191.9로 전체 제조업 생산지수(118.4)를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지수는 105.9에 그쳤다. 제조업 생산 증가의 상당 부분을 반도체가 이끌고 있는 셈이다.
기업 규모별 생산 흐름도 엇갈렸다. 올해 2분기 대기업 제조업 생산지수는 127.4로 2020년보다 27.4% 높아졌다. 반면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94.1로 기준연도보다 오히려 5.9% 낮았다. 2020년 0.7에 그쳤던 두 지수 간 격차는 올해 1분기 34.2까지 벌어졌다. 반도체 생산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중심의 생산 확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 격차와 맞물려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AI 투자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반도체가 성장을 주도하는 흐름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설비투자와 AI 도입은 생산성을 높여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화할 수 있지만, 그 효과가 일부 기업과 노동자에게 집중되면 성장률과 체감경기의 괴리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AI 투자 확대가 자산·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국내외 경고도 잇따른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AI 설비투자로 금리가 상승하면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의 자본소득은 늘지만 노동소득 의존도가 높은 청장년층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져 세대 간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AI 투자 확대로 상위 10%의 소득은 늘고 하위 50%의 소득 점유율은 낮아져 저소득층의 상대적 빈곤이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을 지낸 이항구 남서울대 특임교수는 “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등 일부 산업과 대기업으로 자금과 인력이 쏠리는 흐름이 이어지면 반도체 사이클이 꺾였을 때 산업 전체의 충격도 커질 수 있다”며 “성장 효과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려면 중견·중소기업이 R&D(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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