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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치매 초기’ 배우도 무대에…평균 70살 극단 ‘보석할매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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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캔터빌 노래방’ 리허설 장면. 극단 보석할매할배 제공
연극 ‘캔터빌 노래방’ 리허설 장면. 극단 보석할매할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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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파워를 지닌 대중 스타와 아이돌을 앞세운 연극판에서 오래 산 어르신들의 육신과 발성으로 연극의 원초적 본질을 드러내려는 이들이 있다. 평균 나이 70살. 농부부터 어르신 대상 운동교실 강사, 심리상담사까지 이들의 본업도 각양각색이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성 연극의 문법을 깨는 원동력이 된다는 ‘극단 보석할매할배’다.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창작공간 비비비(BBB)에서 공연한 연극 ‘캔터빌 노래방’. 백발의 배우들에게선 걸쭉한 육두문자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너 몇살이야, XX년아.” “이 XX년이 어디서.” 성적 농담과 외모 비하도 거침없다. “저승사자는 뭐 하노, 이런 인간 안 데려가고.” “장작 패듯 날 때리던 영감이 죽어 내가 만세를 불렀어.” 객석에선 연신 폭소가 터진다. 여자 배우들은 “흔들흔들~ 꽈추를 팍~ 잘라야 해”라고 노래하며 관객에게 떼창을 유도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캔터빌의 유령’을 한국의 섬마을 이야기로 각색한 블랙 코미디다. 섬마을 고택을 사들여 노래방을 연 가족과, 아내를 살해한 죄책감에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이 충돌하며 전자 문명 시대 유령의 존재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작품만큼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 위 배우들이다. 출연자 10명 가운데 연기를 전공한 이는 없다. 노처녀 오숙아 역의 한종숙(71)은 2020년 중앙대 정신건강간호학 부교수로 퇴직한 뒤 청소년 심리상담 봉사를 하며 연극을 시작했다.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배우를 꿈꿨지만 현실화하지 못했어요. 퇴직하면서 이제라도 젊은 시절 꿈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해 극단에 들어왔죠.”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무대에서 위축될 때도 있지만, 연극은 삶을 바꿔놓은 경험이다. “삶이 윤택해졌고, 다양한 배역을 통해 내 인생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시작할 때, 고민일 때가 바로 내달릴 때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이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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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숙(79)은 극단의 산증인이다. “젊었을 때 아버지가 너무 엄해 연극을 못 하게 했어요.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고….” 오랫동안 품었던 꿈은 2011년 서울시 지원 목적극을 계기로 현실이 됐다. 어르신들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하는 연극에 참여하면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무렵 총괄 연출을 맡은 김진우(67) 대표를 만났다.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질 때 김진우 대표가 ‘인생 3막을 시작하시라. 늙어가는데 치매 안 걸리게 연극을 제대로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단역 배우로 영화 ‘왕을 찾아서’와 드라마 ‘동궁’에도 출연한 그는 거의 매일 촬영 일정이 잡힐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극단의 남자 배우는 두명이다. 71세 동갑내기 마준웅과 정건범이다. 유령 역을 맡은 마준웅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탄탄한 근육질 몸을 드러낸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퇴직한 뒤 헬스클럽을 운영하다 연극에 입문한 지 10년가량 됐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에도 출연했다. 농부인 정건범은 자신의 이력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농업경영체 등록했고, 농지원부(농지대장)도 가진 어엿한 농부입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해마다 제가 가꾼 벼를 농협에 수매도 합니다.” 2015년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 나갔다가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시니어 모델도 연기가 필요하더라고요. 동료들과 연기학원에 다녔고, 그게 시작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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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보석할매할배는 과학 실험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 듀공아의 김진우 대표가 2012년 어르신들과 함께 창단했다. 총괄 연출을 맡아 지금까지 20여 편을 무대에 올렸다. “초창기엔 서울시, 시니어협회 등의 재정 지원을 받아 어르신 대상 목적극을 하며 극단을 유지했어요. 그런데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껴 2024년부터 순수 연극을 본격화했죠.” 고령 배우들과 작업하는 일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감을 따다 나무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난 단원도 있고, 응급실에 실려 가 공연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배우 중에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이도 있다. 이날도 대사를 외우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도 무대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배우들의 연기 욕구를 꼽았다. “어르신들은 연기에 대한 갈증, 배우로서의 성취 욕구가 누구보다 강해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긴 대사를 외우고 90분 넘게 무대에 서는 것도 쉽지 않죠. 하지만 오래 산 육신, 그 몸에 녹아 있는 삶에서 배어 나오는 자유로운 연기, 그게 전 진짜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공연을 꾸준히 지켜본 배우이자 연출가 이태리(42)도 연륜에서 나오는 힘에 주목했다. “연기는 더 성숙해지고, 연륜에서 오는 끼를 특히 잘 활용하네요. 동료의 실수를 덮고 연기를 매끄럽게 이끄는 리액션은 젊은 배우도 하기 어려운 것인데 다 소화해요. 기적 같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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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보석할매할배는 내년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각색한 ‘쀼랄과 쩜가슴’(가제)으로 관객을 만난다. 주인공 뜨레쁠레프의 극단적 선택으로 끝나는 원작에서 벗어나, 40년 뒤 그의 죽음에 얽힌 동기와 조력자를 밝히는 파격적인 이야기다. 오래 산 배우들의 몸에 축적된 시간은 고전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다음 무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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