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erusalem PostIraq braces for renewed Iran conflict after 1,000 strikes on Kurdistan, 600 militia attacksESPN DeportesO'Shaquie Foster derrota al 'Vaquero' NavarretePunchPolice arrest two robbery suspects in BauchiInquirerBOC vows crackdown on smuggling after Zambales cigarette haulESPNBrewers 'chip away' at Rays again, rally to take 2-0 lead in World Series한겨레미군, 중간선거 후 이란 공격 계획 보고…짙어지는 전운Bollywood HungamaTiger Shroff’s spokesperson DENIES reports of actor’s statement to Mumbai Police: “This news is completely untrue”ZDF heuteAktuelle Pressemitteilungen des ZDF20 Minuten«Die meisten Ängste stammen aus der Sci-Fi-Literatur»Observador DesportoPorto isolado, Sporting joga hoje e há El Clásico na La LigaRadio-Canada« Ce sont les personnes les plus gentilles » : Obama se moque des tarifs contre le CanadaVilaWebEl discurs del retorn de Comín: “Per alt que sigui el preu, la independència és possible”
The Daily Newsstand · Free, Always
Sunday, October 25, 2026

민주화 투쟁 한복판 섰던 ‘YS 오른팔’ 떠나다

Translate
1994년 1월4일 최형우 당시 내무부 장관이 경기도에서 새해 첫 현장 순시를 마친 뒤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제공

1994년 1월4일 최형우 당시 내무부 장관이 경기도에서 새해 첫 현장 순시를 마친 뒤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제공

초선 때 10월 유신 비판하다 고문
YS와 함께 신군부에 맞서 투쟁
문민정부 개혁 핵심…‘9룡’ 꼽혀
김민석·장동혁 ‘공동장례위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원한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민주화운동에 앞장섰고 상도동계 거목으로 꼽혔던 고인을 기리기 위해 여야 지도부 모두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빈소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보낸 근조화환도 놓였다.

최 전 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 대표였고 1968년 ‘4·19 6·3범청년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울산·울주 지역구에 신민당 후보로 나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낸 6선 정치인이다.

최 전 장관의 의정 활동은 고문으로 시작됐다.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듬해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의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그 대가로 국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석 달 동안 고문을 받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직후에도 다시 보안사에 연행됐고, 의원직마저 빼앗겼다.

최 전 장관은 의원직을 잃은 뒤에도 김 전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았다. 1981년 김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산악회에 들어가 조직을 꾸렸고, 1984년 정치 활동 규제가 풀리자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으로 재야·야권의 반독재 투쟁 한복판에 섰다. 신민당 부총재, 통일민주당 수석부총재와 원내총무를 거치며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함께 여당으로 옮겨 정무제1장관을 맡았고, 1992년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후에는 민자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내며 문민정부 초기 개혁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 차기 주자군인 ‘9룡’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30년 가까이 투병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김 대표는 조문 후 “최 전 장관은 민주화에 큰 헌신을 하고 부마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살리려고 애를 쓰신 분”이라며 “민주화의 뿌리를 기릴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다 함께 성찰해야겠다”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았다. 장 대표는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교육부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내무부 장관이셨다”며 “다른 분들은 장관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최 장관은 늘 일반 직원들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소통하셨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장 대표는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원장은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다. 김 대표는 장 대표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게 된 것을 두고 “최 전 장관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향했던 뿌리에 부마항쟁과 5·18 정신을 잇는 것이 있었다”며 “그런 점에서 여야가 같은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원영일씨와 2남2녀(최석균·제완·은지·은실씨)가 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View the original on 경향신문 →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