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이 소환한 ‘자유언론실천’, 52년 지나도 아직 외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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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시 회자됐다. 영화 속 설정과 달리 실제로는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과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유신정권 탄압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겠다는 기자들의 결의는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남은 생애는 어땠을까?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1일 발행된 관훈저널 가을호에 ‘민주화운동 언론인의 수난과 명예회복’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2015년 민주화보상위원회가 발간한 ‘민주화운동백서’의 인명편(이름만 따로 모은 책)에서 언론인만 골라내 392명 명단을 추린 것이다. 유신·신군부 정권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해직 등 피해를 입었음을 국가에 입증한 인원으로, 실제 해직된 언론인은 8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명단을 보면,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했고 해직 후에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소식지를 통해 유신정권 탄압을 알리다 체포돼 병으로 사망한 안종필 기자와 “선언 백번 하면 뭐 하냐, 실천을 해야지”라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주도한 장윤환 기자 등이 포함됐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후 광주에 잠입해 사흘간 참상을 취재했다가 그해 8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당한 김준범 전 동양방송(TBC) 기자도 있다. 또 언론인은 아니지만 유신정권에 종속된 공영방송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학사 징계와 징역형을 받은 대학생 12명도 명단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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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 정권은 검열을 비판하고 자유 언론을 요구하는 기자들을 갖은 수단으로 해고했다.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가 국내 유수의 기업을 압박해 동아일보 광고를 끊게 만들자(일명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이에 굴복한 동아일보가 기자 132명을 해고했다. 뒤를 이 은 전두환 신군부는 아예 각 신문사에 ‘문제 언론인’ 수백명 명단을 직접 전달해 해직을 요구했고, 이들의 재취업마저 막았다. 이 같은 정권의 개입 사실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와 2008년 및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에 각각 담겼다.
그러나 피해 회복은 미미했다. 정 교수가 살펴본 명단에서 민주화보상법으로 보상을 받은 경우는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386명은 관련 전과나 학사 징계 등을 지웠다는 취지의 ‘명예 회복’이 끝이었다. “법률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 사항이라 학사 징계자 징계 기록 말소 이외에 실질적 성과는 미미했다”고 정 교수는 짚었다. 이미 상당수 언론인들이 관련 전과로 재취업 기회가 끊겨 큰 실익도 없었다. 예를 들어 동아방송 출신 윤활식 위원의 경우 “다시 (채용하면) 안 된다”는 정권 압력 때문에 다른 언론사로 가지 못하고 상품판매원 등을 전전했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윤 위원은 추후 창간된 한겨레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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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적 해결도 요원했다. 동아투위 등 해직 기자들은 과거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유신정권 하의 대법원 판결(1975∼78년)을 다시 심리받고 싶다며 지난 4월 재판소원을 냈다. 당시 재판부가 졸속으로 고친 취업규칙과 상사 모욕·항명 등 엉터리 사유로 해고를 인정했다며,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시 판단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청구기간(판결 확정 후 30일)이 지났다’며 사건을 각하했다. 해직 기자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가폭력 피해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해직 언론인 구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과거 판결도 헌재 심리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해직 기자들은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일부는 동아투위 소식지를 통해 취재보도를 이어가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수년씩 징역을 살았다. 일부는 생계를 위해 영문 번역 일을 했고, 일부는 민주화 관련 서적 출판에 전념하기도 했다. 일부는 형을 마치고 다시 언론계로 돌아오거나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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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에 오른 이들은 국가에 피해 사실을 직접 알리고 증명한 경우다. 실제 박정희·전두환 정권 하에서 해직된 언론인은 800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검열·제작 거부 이외 사유로 해직됐거나 출판물 등록 해제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인원까지 합치면 2천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정 교수는 “인명편에 실린 이들은 본인이 피해를 신청해 소명 절차를 거쳐 명예 회복을 인정받았다”며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경우도 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건호 한겨레 초대 창간위원장과 박우정 전 한겨레 편집위원장 등도 명단에선 빠졌다.
5·18 민주화운동을 보도하려다 대거 해직당한 언론인들 행보도 전면적으로 다뤄질 필요성도 제기된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참상을 보도하겠다며 계엄사 검열 거부 운동 및 제작 거부 투쟁에 나선 언론인들을 강제 해고하라고 언론사에 요구했다.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을 언론사에 상주시키고 언론인 개별 성향을 추적하는 등 ‘케이(K)-공작계획’도 실행했다. 이 일로 약 770명이 무더기 해직당했다. 그러나 그간 한국 언론 역사에선 이 같은 행위보다 그해 11월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이 대표적 언론탄압 예시로 거론되곤 했다. 신연숙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신군부가 진실 보도를 요구한 기자들을 일시에 해고하고 취업 제한까지 한 만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언론탄압이자 인권침해”라며 “전두환 정권이 그해 11월에 단행한 언론 통폐합은 정부 검열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키던 이들의 무더기 해직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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