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물 1호가 사실이라면 나를 사형시키시오” [금자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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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설득력이 있나요?”
“없어요.”
“어떤 느낌이세요.”
“그냥 저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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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자 여사님은 잘라 말했다. 암호문건을 몸 깊은 곳에 숨겨 운반하던 정재한이 개성역 앞 파출소에서 정체가 탄로 난 채 탈탈 털리는 장면을 읽던 중이었다. 이른바 ‘정재한 음부 암호 운반설’에 대한 의견이 어떤지 카톡으로 질문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아버지 강욱중 의원을 비롯한 제헌국회의원 13명을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옭아맨 증거물 1호(증제1호)는 정재한이 북한의 박헌영에게 보고하기 위해 숨겼다는 바로 그 문건이었다. 어쩌면 금자 가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납치로 마주했던 비극은 외설적인 증거와 황당한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 음험한 시나리오 한 편은 이렇게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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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한이 숙직실로 끌려들어 가고 여순경 입회하에 다시 철저한 몸수색이 시작됐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정재한도 확실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실오라기 하나 안 남기고 벗겨보았으나 신통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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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경이 바깥으로 나왔다. 김윤쾌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소?”
“아무것도 없어요.”
“변소가 있죠?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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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쾌의 뚱딴지같은 질문이었다.
“네. 아마….”
“그럼 됐어요. 변소에 끌고 가서 소변을 보라고 하시오.”
김윤쾌 경사의 색다른 제안을 받은 여순경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숙직실 안으로 사라졌다.
“나오세요. 변소에 들어가서 소변을 보시고 나오세요.”
“왜요?”
“소변 보시고 나오시란 말이에요.”
“괜찮아요.”
“아니, 이 아주머니가, 먼 길을 갈 테니까 소변을 봐두시란 말이에요.”
“그제야 변소 안에 들어선 정재한 여인은 두 세 번 주위를 두리번거린 다음 엉거주춤하게 몸을 구부렸다.
허리띠만 풀면 용변을 할 수가 있는 옷차림인데 우선 그 자세가 이상했다. 다음 순간 여인의 왼손이 아랫도리 옷 속으로 쑥 들어가며 무엇을 끄집어내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이 순간이었다.
“이년!”
김윤쾌 형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었다. 여인이 비명소리를 질렀다.
날쌔게 뛰어든 김윤쾌 형사는 여인의 손목을 비틀어 쥐고 손안에 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돌돌 말린 종이를 빼앗았다.
“나쁜 년! 너 그럴 줄 알았다. 수갑 채워!”

1972년 출간된 ‘장편실화소설 특별수사본부’ 제3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제목은 ‘붉게 물든 그림자, 국회푸락치 사건’. 그날은 1949년 6월16일이었다. 경찰은 정재한에게 용변을 보게 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암호문건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시리즈 대공 스파이물이다. 1970년부터 동아일보 산하 동아방송의 라디오드라마로 방송된 ‘특별수사본부’가 원작이다. 작가는 드라마 원작자인 오재호인데, 소설이 나온 뒤엔 ‘국회 푸락치’라는 영화도 제작됐다.
라디오드라마든, 소설이든, 영화든 모두 그 내용은 국회프락치 사건을 수사하고 관련자들을 기소한 검사 오제도의 각종 수기와 증언에 기초해 있다. 오제도는 이 책 서문에서 “건국 전후에 빚어졌던 남로당 범죄사를 소설체로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 있게 읽히는 것은 물론 문헌적인 가치까지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가히 한국판 스파이 비화의 결정판”이라고도 했다.
암호문건 속에서 남로당에 가입한 제헌국회의원들의 이름을 해독해낸 경찰은 이후 해당 의원들을 모두 체포해 혐의에 관한 자백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다.
앞집 2층을 바라보니 아까 촛불을 켰을 적에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는데, 전등이 오고 보니, 단 세 사람뿐이었다. 박정휘와 전정환은 자리에 누워있고, 정재한만이 앉아서 무어라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이나 그들은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박정휘가 먼저 자는 셈인지 전정환이가 박을 깨운다. 그리고 이불을 덮고 자라고 한다. 박은 일부러 기지개를 피우고 이불을 쓰고 자리에 누워버리고 전정환과 정재한이가 둘이서 무어라고 속살거리더니, 전정환은 소변을 누러 가는지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전정환은 올라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정재한이가 벌컥 일어나더니, 조그마한 종이(문건) 뭉치를 치마를 뚫고 ‘드로즈’*속으로 넣는 것을 보았다.
김 경사는 긴장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속말로 ‘저놈이 비밀 문건이올시다. 저것만 우리 손에다 넣으면 모든 ‘프락치’들을 모두 잡을 수 있겠는데…’ 하고 말하였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흥분되어 못으로 박은 듯이 꼼짝 못 하고 정재한의 거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 문건을 월경대 같은 데다가 넣은 것 같이 보이었다. 정은 그 종이를 다 넣고서 옷을 벗지도 않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자고 만다. 그제서야 전정환이가 올라온다. 김 경사도 흥분된 어조로 ‘내일 저것을 가지고 개성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들도 필사적으로 저 문건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마 내일 개성 가서 2,3일 있다가 그 문건이 평양으로 갈 것입니다. 그 전에 압수하여야 남한 공산당 프락치를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자- 모든 것은 내일에 달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49년 11월 출간된 ‘한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국제간첩단 사건-일명 김호익 수사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경위였던 김호익은 김윤쾌 경사와 함께 정재한 체포조의 일원이었다. 오제도는 정재한에게 용변을 보게 해서 암호문건을 찾았다고 했는데, 김호익은 다르게 설명한다. 이미 전날 충무로 2가55(현재 53-9)에 위치한 남로당 공작원들의 아지트(이른바 ‘국제간첩본부’)에서 정재한이 속옷에 종이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김윤쾌는 ‘내일 저것을 가지고 개성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재한 검거는 충무로 아지트를 몇 달씩 감시한 끝에 올린 개가였다고 했다.
김호익***은 다음날 암호문건을 확보해낸 상황에 대해서도 ‘특별수사본부’와는 다르게 설명했다. “우리가 손을 대고 꺼낼 때까지 그러지 말고, 어서 당신 손으로 꺼내는 것이 어떠하냐고 설득한 끝에, 정재한이 ‘월경대’(생리대) 비슷한 기다란 주머니 속에서 모든 문건을 꺼냈다”는 거다.
두 가지 시나리오를 읽은 뒤, 당시 언론보도는 어떻게 돼 있는지 찾아보았다. 동아일보 1949년 7월23일자 ‘국제스파이 사건 진상’에선 제3의 시나리오가 나온다. 정재한이 실오라기 하나 안 남기고 옷을 벗도록 한 뒤 여의치 않자 용변을 보도록 했다는 ‘특별수사본부’와 달리 “치마는 입은 채 속옷을 벗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프락치 사건의 또 다른 검사였던 선우종원은 ‘사상검사’(1992년 증보판)라는 회고록에서 오제도와 동일한 주장을 되풀이한다. ‘용변 중 수색’(특별수사본부, 사상검사), ‘사전 감시 및 확인을 통한 설득’(김호익 수사일기), 그리고 ‘치마 착용 상태 수색’(동아일보)까지 엇갈리는 지점들은 이 시나리오가 엉성하고 자극적으로 연출된 게 아닌가 하는 강력한 의심을 품게 한다.
경찰에 검거된 정재한 등 공작원 3명은 6개월도 안 돼 영원히 사라졌다. 그것은 현대사의 거대한 미스터리다. 김호익의 책에서 공작원들의 아지트를 감시한 내용을 보면, 정재한(41)과 박정휘(24), 전정환(27)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재한과 전정환은 남로당 연락원이었고 박정휘는 연락부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제헌국회의원들에 대한 공작 내용이 담긴 암호문건을 작성하거나 운반한 핵심 당사자였으나 재판정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채 국회프락치 사건에 대한 7차 공판 다음 날인 1949년 12월6일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선고는 9월3일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내려졌다. 11월28일 사형집행 명령에 이어 8일 만에 형장의 이슬이 된 것이다. 국방경비법 32조 이적죄 혐의였는데, 정확히 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암호문건의 증거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인들을 모조리 다른 건으로 사형집행해 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증거1호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아닙니다. 이것은 남로당의 음모입니다.”
강금자의 아버지 강욱중은 1950년 2월13일 열린 결심공판 마지막 날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진언서를 제출한 (외군)철군제안은 “국민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고 그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노일환과 이문원이 남로당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자백했다는데, 저는 아무것도 자백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피고 김병회는 최후진술에서 “증거1호가 사실이라면 6년 형은 저에게 너무 가볍다”고 했다, “제가 반역자라면 사형으로 형을 변경해달라”고 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약수도 “증거1호는 남로당의 음모”라고 했다. 이문원은 “검사님의 증거물 1호에 대한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욱중과 여러 피고의 말처럼 증거1호는 과연 남로당의 음모인가. 아니면 대통령 이승만의 음모인가. 이승만의 음모라면 누가 이런 각본을 만들어냈을까. 음모의 기획자를 찾아볼 차례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드로즈’는 허벅지까지 밀착되는 상자형 팬티를 의미한다.
**신문에서도 ‘국제간첩단’이라고 명명했으나 공작원 중 외국인은 없다. 소련 국제공산당과의 연결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김호익은 1949년 8월12일 오후 가짜 명함을 가지고 서울시 경찰국을 방문한 괴한에게 권총 사격을 받아 병원에 후송된 뒤 절명했다. 수사당국은 범인이 남로당원 이용운이라고 했다. ‘김호익 수사일기’가 나온 시점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3개월 뒤였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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