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을 꺼내서 쓰면? [이창희의 국가, 기업, 조세]

비상장법인에서 자주 생기는 일로 법인이 대표자나 지배주주 등에게 회삿돈을 빌려주는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100% 지배주주라면 ‘어차피 다 내 것인데’라는 생각으로 상법이 정한 절차와 형식을 무시하고 회삿돈을 가져가기 쉬운데 그러면 횡령이나 배임의 죄책을 지게 됩니다. 나아가 개인소득세도 내야 합니다. 돈을 가져갈 권리는 없었더라도 현실적으로 마치 제 돈처럼 지배·관리하는 이상 과세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오랜 판례입니다.
나중에 회사에 돈을 물어내게 된다면? 그때 가서 세금을 돌려주거나 깎아줄 것인가는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회삿돈을 가져가면서 꾸는 형식을 취했다면 어떨까요. 소비대차 약정서, 차용증, 현금보관증 등을 남기고 회사에서는 이것을 채권으로 잡아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채권을 업무무관 가지급금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이 다룬 가지급금 사건
관련 판결이 하나 나왔습니다.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6두30419 판결. 의료법인의 이사이자 대표자인 원고는 자신이 소유하던 토지를 의료법인에 출연·증여하면서 토지에 설정된 근저당채무와 이자를 직접 부담하기로 약정했습니다. 그러나 근저당채무의 실제 상환은 법인의 돈으로 이뤄졌습니다. 국세청은 이 가지급금과 그 인정이자를 법인의 익금에 산입하고 원고에 대한 상여로 소득처분한 후, 원고에게 개인소득세를 부과했습니다. 원고와 의료법인에는 각각 회생절차가 개시됐으나, 의료법인은 원고에 대한 가지급금 채권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가지급금을 익금산입하는 이유
일단 무슨 말인지 얼떨떨하기 마련입니다. 법인세법 시행령은 업무무관 가지급금의 원금을 특수관계가 없어지는 시점에 법인의 익금에 산입한다는 묘한 글귀를 담고 있습니다. 익금산입(손금불산입)이라는 말은 매출액이 누락됐다든가 가공비용을 적어 뒀다든가 이런 경우에 소득을 바로잡는다는 말인데, 회사가 자산으로 잡아둔 가지급금을 익금산입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결론부터 적자면, 이 말은 특수관계인과 법인 사이의 관계가 단절된다면 그 시점에 특수관계인이 가지급금 원금을 안 갚으리라는 사실이 확정됐다고 보고 그 사람의 소득(위법소득)으로 과세한다는 말입니다. 특수관계가 소멸한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채권(가지급금)을 실제 회수할 가능성이 없으니 그 돈이 그 사람에게 확정적으로 귀속한 것처럼 과세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사정으로 이 사건 원고는 특수관계 법인으로부터 받았던 가지급금 원금의 확정적 귀속자로서 소득세 부과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이 원고에 대한 소득세 과세를, 채권자인 특수관계 법인이 가지급금 채권을 익금산입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요? 법인이 아직 채권을 자산으로 그냥 잡아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채권이 없어졌다고 보자면, 과세처분이나 세무조정 과정에서 일단 자산을 순자산감소액으로 적극적으로 떨어내야 합니다(손금산입). 그런데 특수관계자 가지급금을 못 받게 된 순자산감소액은 필요경비로 인정받지 못하므로 다시 같은 금액을 손금불산입(익금산입)해야 합니다. 이 손금불산입(익금산입)은 이른바 ‘소득처분’으로 이어집니다. 익금산입된 금액이 회사에 남아 있지 않고 귀속자가 가져갔다고 보는 것이니 귀속자와 회사의 관계에 맞춰 위법한 상여나 배당을 지급했다고 봐서 귀속자에게 소득세를 물리는 것입니다.
회생 면책돼도 과세는 그대로
특수관계 소멸 시점에 채권을 채무자의 소득으로 처분한다는 것은 채권 그 자체의 소멸이 당연히 소득처분을 일으킨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령을 보면 채권·채무에 대한 쟁송으로 채권을 회수할 수 없다면 익금산입하지 않는다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생계획인가로 채무자가 면책돼 못 받는 채권은 어떻게 될까요? 회수불가능한 것이야 당연하니 익금산입과 소득처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실제 이 사건에서 원고는 그런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원고 개인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돼 법인이 그 절차 밖에서 채권을 회수할 수 없었으므로 가지급금 미회수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중요한 것은 회수불가능 그 자체가 아니라 회수불가능하게 된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가라고 답합니다. 가령 법인이 임의로 채권을 포기했다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것이고 소득처분을 받아 마땅하며, 이 사건에서도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원고는 법인이 가지급금 채권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생계획인가가 이뤄져서 자신이 가지급금 채무를 면책받았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특수관계 소멸 시점에 가지급금 채권을 익금산입한다는 말은 그 시점에 채권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회생계획인가로 원고의 책임이 없어졌을 뿐 원고와 특수관계 법인 사이의 채권·채무 그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법을 안 배운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가령 채권이 시효 소멸했더라도 책임이 없어졌을 뿐 채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민사법 이론입니다(가령 시효 소멸한 줄 모르고 갚았다면 못 돌려받습니다).
채무와 책임의 구별까지 들여오면서 원고의 채무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법령이 특수관계 소멸 시점 현재의 채권원리금을 귀속자의 소득으로 처분한다고 적고 있으니, 채권이 있어야 소득처분이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채권이 이미 소멸했다면 귀속자에게 세금을 못 매기는 것일까요? 특수관계가 소멸한다면 앞으로 회수가능성이 없으니 그 시점에 과세하겠다는 말은 채권 소멸 시점에 귀속자에 대해 과세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 판결의 사실관계에서도 면책결정으로 채무 자체가 소멸했다고 보더라도 원고에게 면책받은 원리금만큼 소득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소득의 귀속시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수관계가 남아 있고 회사장부에 가지급금도 그대로 남아 있지만 민사법으로 따져서 채무가 과거에 소멸했다면 이미 개인소득세의 부과제척기간이 지나버렸다는 주장이 일응 가능합니다. 특수관계 소멸 시점에 익금산입한다는 법령의 의미를, 귀속시기에 대한 특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 자리도 있지만, 아직 이를 직접 판단한 대법원의 선례는 없습니다.
[이창희의 국가, 기업, 조세]에서는 조세정책과 기업과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슈를 다룹니다. 이창희 교수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로 대학을 떠나고서는 법무법인 세종의 기업전략과 조세센터를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석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공인회계사·외국변호사(미국)로 한미 양국의 회계법인과 로펌에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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