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7년 최무선이 제작?…국내 가장 오래된 화약 무기 나주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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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년, 고려국 최고의 군사기술자였던 무신 최무선(1325~1395)은 사상 처음 국산 화약무기 제조에 성공한다. 고려 해변을 노략질하던 왜의 도적떼(왜구)를 단숨에 격멸하는 비법을 찾겠다는 사명감으로 원나라 화약을 입수해 독학하며 연구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자신의 집요한 제안으로 고려 조정이 병기창 용도로 신설한 화통도감에서 그는 국산 화약을 장착한 화살, 탄알 발사무기 10여종을 개발해 실전배치했다. ‘대장군포’ ‘이장군포’ ‘화전’ ‘화통’ 등의 이름이 붙은 무기들은 오늘날 야포와 대전차포 같은 것으로, 병사들이 야전에 설치하거나 함포로 쏠 수 있었다.
최무선이 직접 운용한 신무기들은 만든 지 3년 만에 막강한 위력을 내뿜었다. 1380년 충남 서천 근처 진포로 쳐들어온 왜구들의 함대 500척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뭍으로 도망친 왜구들은 지리산 근처 황산에서 조선 태조가 되는 이성계의 토벌작전으로 소탕됐다. 1383년 남해섬 관음포로 대선단을 꾸려 처들어온 왜구들도 최무선 화포가 작렬하면서 17척이 가라앉고 2000명 이상이 전사하자 패주했다. 이후 왜구 노략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4세기 말 최무선의 화약무기 개발 직후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 실물이 전남광주 나주에서 발견됐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소장 조미순)는 2023년 나주 금성산 기슭 땅속에서 ‘황자화통’(黃字火筒) 이름이 새겨진 고려 말~조선 초 화약 발사무기를 수습했으며, 그 뒤 무기 몸체에 새긴 한자 글자 28개를 판독한 결과 만든 시기, 명칭, 무게, 감독자 관직·이름, 장인 이름 등이 확인됐다고 21일 발표했다. 연구소 쪽은 “국내 화약무기 유물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제작됐고, 실물이 거의 없는 고려 말~조선 초 화기류들 가운데 출토 장소, 제작 시기, 제작 주체가 확인되는 유일한 희귀 유물이라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화통’은 화약을 터뜨려 화살이나 탄알을 쏘아보내는 무기류를 일컫는 말이다. 14세기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직후인 15세기 초반까지 쓰였으며, 세종 이후 ‘총통’(銃筒)으로 바뀐다. 오랜 주력 무기 활보다 사거리·파괴력 등을 혁신적으로 높인 당대 첨단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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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황자화통’은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으로, 개인이 휴대 가능한 소형 화기류다. 2023년 11월, 금성산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지뢰 탐지 작업을 하다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연구소는 수습한 ‘황자화통’ 유물을 3년간 과학적 기법으로 분석하고,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명문을 판독하면서 유물 진위와 제작 시기, 역사적 가치 등을 밝히는 연구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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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를 보면, ‘황자화통’은 손잡이 나무를 끼우는 말미 부분 ‘모병’(冒柄)에 6열 27자, 총부리에 1자의 오목새김 명문이 남아있다. 모병 명문은 ‘丁巳十二月日 鍊 黃字火筒 重一斤十四兩 監造錄事安休甫 匠人石’(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으로 판독된다. 한글로 풀면 ‘정사년 12월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 1근 14량. 감독자는 녹사(錄事) 안휴보(安休甫), 장인은 석(石)’이란 내용으로, 제작 시기와 명칭, 무게, 감독자 관직과 이름, 장인 이름 등이 줄줄이 확인된다. 총부리에 새긴 ‘八’(팔)은 화기 제작 번호 또는 관리 번호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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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표기인 ‘정사’(丁巳)년은 국내 화약무기 역사에 얽힌 문헌 기록 등으로 미뤄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으로 볼 수 있다. 1377년은 최무선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기구에서 처음 화약무기를 생산한 해다. 1437년은 화약무기 개량 작업이 활발하던 세종대 시기로, 새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한 1445년보다 시점이 앞선다. 연구소 쪽은 “비교 사료가 드물어 1377년과 1437년 중 특정해 실제 제작 연도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화약무기 실물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류로 거론된 유물은 경희대 박물관에서 1968년 구입해 ‘고총통’으로 이름 붙인 2점이 있다. ‘황자화통’과 형태, 크기, 명문 등에서 상당 부분 닮았지만, 제작 연대나 출토 장소, 제작 주체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정체는 불분명했다. ‘황자화통’ 발견으로 경희대 소장품들도 고려 말~조선 초기 비슷한 계열의 화기류란 점이 분명해졌다.
실제 유물의 모양새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황자화통’은 약통 안이 둥근 얼개다. 화약과 발사체를 한 통에 넣어 쏘는 초창기 화기의 특징을 지녔다. 격목(擊木: 화약 폭발력을 발사체에 전하도록 약통 앞부분에 끼운 나무 마개)을 써서 발사 효율을 높인 세종대 개량 화기의 약통 얼개와 달라 개량 이전 형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 이름 ‘황자화통’에서 ‘황’(黃) 자는 천자문 글자 순서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던 고려·조선시대 분류 체계에 따라 붙인 것이다. 명문 중 ‘감조’(監造)는 제작 감독자, ‘녹사’(錄事)는 관서 실무를 맡던 관직이다. 무기 제조와 관련해 고려 말 병기 제작 등을 맡은 관청 군기감(軍器監)에 배치된 기록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도 군기감 소속 녹사가 무기 주조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등에서 확인된다. ‘감조’ ‘녹사’ 명문은 당시 국가가 무기의 감독과 제작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분석 결과도 눈길을 끈다. 연구소 쪽은 “황자화통은 구리(Cu), 주석(Sn), 납(Pb)을 주성분으로 하는 청동 주조품으로, 주석 함량을 10wt% 이내로 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동 강도와 연성을 확보해 화약 폭발력으로 화통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 한 의도로 보이는데, 전통 화약무기 성분 조성과 일치한다”고 짚었다. 연구소는 또 “미세조직 관찰 결과 제련 과정에서 남은 황(S), 규소(Si), 은(Ag) 등 불순물 성분들도 검출됐다. 정련 기술 한계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전통적 청동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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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쪽은 21일 오전 10시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황자화통’ 발견의 의미와 명문·재질 분석 성과 등에 대한 언론 공개 설명회를 연다. 이어 23일부터 11월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물속보전을 마련해 ‘황자화통’ 실물과 분석 내용, 복원도 등을 내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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