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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16, 2026

중국, ‘암묵의 계약’으로 갱신되는 엔지니어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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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의 중국 과학굴기 너머 _04 중국 기술관료주의의 기원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만들어진 포스터로, 마오쩌둥 주석이 ‘홍위병’이라 쓰인 완장을 차고, 뒤에 홍위병들이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不到长城非好汉’(부도장성비호한)이란 구호는 ‘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란 뜻으로 마오가 지은 시가에서 나온 말이다.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만들어진 포스터로, 마오쩌둥 주석이 ‘홍위병’이라 쓰인 완장을 차고, 뒤에 홍위병들이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不到长城非好汉’(부도장성비호한)이란 구호는 ‘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란 뜻으로 마오가 지은 시가에서 나온 말이다.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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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미친 한국, 변호사가 다스리는 미국, 엔지니어가 다스리는 중국. 우리는 한국방송(KBS) ‘인재 전쟁’과 댄 왕의 ‘브레이크넥’ 등을 바탕으로 중국 과학기술을 이런 구도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수십년간 당 총서기와 총리 자리는 거의 예외 없이 이공계 몫이었다. 장쩌민은 전기공학, 원자바오는 지질학, 시진핑은 화학공학을 공부했다. 한국은 이런 중국이 부럽다. 중국은 왜, 어떻게 엔지니어의 나라가 되었을까.

한때 중국은 엔지니어의 나라이기는커녕, 엔지니어를 가장 미덥지 않아 하던 나라였다. 1957년 중국공산당 이론지 ‘학습’은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를 ‘엔지니어 독재’(工程師專政)로 옮기고 반동 이데올로기로 규정했다. 같은 해 과학자 첸웨이창은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끌 수 없다고 말했다가 우파로 낙인찍혔고, 칭화대학에서만 학생 403명과 교직원 168명이 처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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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씨앗은 역설적이게도 같은 시기에 뿌려졌다. 1958년 초 마오쩌둥은 ‘홍과 전을 겸비하라’(又紅又專)는 정식을 공식화했다. 홍(紅)이란 마음속 신념뿐 아니라 출신, 입당, 조직 활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혁명을 향한 충성이었고, 전(專)은 시험과 학위로 인증되는 전문 실력이었다. 물론 마오의 본뜻은 엘리트 육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겨눈 것은 정치를 외면하는 ‘백색 전문가’와 기술을 모르는 간부의 공허한 정치라는 두개의 편향이었고, 방점은 간부더러 기술을 배워 전문가를 감독하라는 쪽에 실려 있었다. 나아가 홍전겸비는 선발된 소수를 빛낼 훈장이 아니라 노동하는 군중 전체로 확산되어 종국에는 지식 소유와 통치의 자격에 관한 전문가의 독점 자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마오주의의 이상이었다. 이 구호를 비틀어 엘리트 인재 양성의 강령으로 벼려낸 이가 칭화대학 총장 장난샹이었다. 그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專)을 뽑아 정치공작(紅)을 맡기는 정치보도원 제도를 만들었고, 교수를 입당시키고 당원을 교수로 키워 “두 종류의 인간을 합일”시키는 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1965년 그는 신입생들에게 예언했다. 미래의 중국은 엔지니어가 다스릴 것이며, 언젠가 칭화 졸업생이 총리가 되리라고.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이 기획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홍과 전을 겸비한 간부야말로 소련을 수정주의로 타락시킨 ‘새로운 자산계급’이라는 것이 급진파(조반파)의 논리였다. 노동자 선전대가 칭화대학 캠퍼스를 접수했고 교수들은 농촌으로 추방되었다. 장난샹도 파면되었다. 학생들은 이제 ‘붉은 전문가’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각오를 지닌 교양 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대학 문은 시험이 아니라 추천으로 열렸다. 2년 이상 육체노동을 한 노동자·농민·병사만 입학할 수 있었고, 그 길로 칭화 화학공학과에 들어온 청년 가운데 시진핑이 있었다. 문혁은 옛 지식인과 당이 갓 길러낸 홍전겸비 간부들을 동시에 겨누며, 지식·학위·당성이 대중과 유리된 엘리트의 특권이 되는 길을 원천봉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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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천하도 1976년 막을 내렸다. 1980년 덩샤오핑은 선언했다. “전이 곧 홍은 아니다. 그러나 홍은 반드시 전을 갖춰야 한다.” 문구만 보면 간부에게 전문성을 주문한 마오의 뜻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마오에게 ‘전’이 혁명가가 전문가에게 통치를 위임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덩에게 ‘전’은 통치할 자격 그 자체였다. 홍전겸비는 대중 전체의 이상에서 엘리트 기술관료를 걸러내는 문턱으로 바뀌었고, ‘홍’은 삶으로 증명해야 할 혁명에의 헌신에서 당 노선에 대한 동의라는 형식 요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출신성분 제도(노동자·빈농의 자식이냐 지주·반혁명분자의 자식이냐를 따지던 세습 신분제)가 혁파되었고, 1980년대 전반에만 혁명 원로 137만명이 물러나고 대졸 간부 47만명이 지도부에 진입했다. 중앙위원 중 대졸자 비율은 1977년 26%에서 2002년 99%로 치솟았다. 그해 출범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아홉명 가운데 여덟이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장난샹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칭화 전기공학과 출신 주룽지가 총리가 되었고, 정치보도원 출신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이 되었다. 그렇게 중국은 노동자와 농민과 혁명가의 나라에서 당에 충성하는 엔지니어들의 나라로 변모했다.

요컨대 개혁개방 이후 붉은 엔지니어의 지배가 굳어진 것은 의도된 기획이 매끄럽게 성공한 결과라기보다 계급 없는 사회라는 이상주의의 실패가 초래한 역설적 결과에 가깝다. 문혁이 민국 시기 이래의 지식인·전문가 집단과 공산당 집권에 공을 세운 간부와 그 자제들을 동시에 공격한 탓에, 학술 권력과 정치권력은 오히려 서로 결속했다. 그로부터 태어난 포스트 마오 시대의 지배계급은 대중적 혁명 정치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했고, 박해로 단련되었으되 견제로 길들여진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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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급 없는 이상 사회의 꿈이 기각된 자리에서 체제 내에서의 질문 없는 효율이 추구되었다. 1989년 천안문(톈안먼)에서 ‘과학’과 ‘민주’의 결합의 가능성마저 상실된 뒤 통치의 기술관료화는 한층 가속되었다. 이의제기는 당과 과학에 대한 반역으로 묵살되곤 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중국의 붉은 기술관료주의는 두개의 조건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급진적인 지적·사회적 평등을 향한 마오주의 혁명 정치의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토론과 견제를 우회하는 권위주의 정치의 건재함이다. 미-중 기술 경쟁과 반도체·인공지능(AI) 자립의 시대에 베이징은 여전히 엔지니어들을 요직에 발탁하고, 딥시크의 젊은 공학도들은 국가의 영웅으로 호명된다. 엔지니어의 나라는 갱신되고 있다. 정치적 질문은 품지 않는다는 암묵적 계약과 함께.

중국 현대사에서 전문가 권력에 질문을 던진 힘은 두 방향에서 나왔다. 평등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마오주의는 제어되지 못한 폭력으로 내파했고, 민주의 이름으로 목소리를 낸 1989년의 광장은 탱크 아래 짓밟혔다. 질문들이 소거된 이후 남은 선택지가 곧 통치의 효율을 하향식으로 극대화한 기술관료주의였다. 한국은 이런 중국이 부럽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부러워하고 있는 걸까. 그저 엔지니어를 더 우대하는 나라인가, 아니면 질문 없이 결정할 수 있는 나라인가.

이종식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사학, 과학기술학(STS), 과학기술정책학을 교차시키며 현대 중국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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