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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28, 2026

“‘월성1호기’ 수사는 명백한 정치 보복… 공직자 제물 삼는 일 다신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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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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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1심 재판이 기소된 지 5년여 만에 종착지를 바라보게 됐다. 지난 9월15일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우근) 심리로 열린 71회 공판에서 피고인 쪽이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동의할 테니, 증인 신문을 줄이자’는 제안을 검찰에 했고, 검찰도 동의하면서 남은 증인이 60명에서 4명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11월 두 차례 변론과 12월8일 결심 공판이 끝나면 내년 초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검찰총장 윤석열’이 자신의 대선 출마 기반을 다지려고 검찰을 동원해 ‘검찰 쿠데타’라 불린 사건이다. 문재인 정권은 무리한 가동 연장과 잦은 고장으로 안전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월성1호기를 2019년 12월 영구 정지시켰다. 검찰은 이를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손해를 끼쳐 국가가 이익을 보았다’는 황당한 논리를 동원해 수사에 나섰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한 지 석달여 만인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한 ‘탈원전’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2021년 7월5일에는 ‘친원전’ 학자들과 만난 뒤 “제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결국 월성 원전 사건, 정부의 탈원전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다음날인 6월30일 곧바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기소해, 윤석열의 대선 출마에 힘을 실어줬다. 검찰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2023년 7월19일 별도로 기소했다.

이 ‘쿠데타’엔 검찰만 가담한 게 아니었다.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꿈을 꾸고 있던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도 나섰다. 그는 윤석열보다 먼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에 타격을 주려고 설익은 감사 결과를 발표하려다 감사원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제지를 받았다. 감사위원들은 감사 결과가 부실한 것을 문제삼아 퇴짜를 놨다. 최재형은 감사 자료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최재형도 2021년 6월28일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한 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2차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이 사건은 국가 최고 감찰·사정기관 수장들이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위해 공적 권한을 남용한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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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전 장관은 한양대 공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7년 7월 문재인 정권 초대 산업부 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반도체·에너지 재료 분야의 석학으로, 글로벌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가 해마다 집계하는 ‘논문 인용 횟수 상위 1%’에 드는 과학자다.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공직을 맡았다가 사법적 굴레에 갇히게 됐다. 지난 22일 한양대 공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국가 정책을 겨냥해 공직자를 재물로 삼는 것은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말했다.

―기소된 지 5년이 지났다.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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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로 있다가 공직을 맡아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운 국정과제를 법과 규정에 따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익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찰은 나를 대역죄인처럼 취급했다. 그로 인해 자괴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코미디 같다는 생각도 한다.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재판이 대전지법에서 열리는 바람에 서울에 사는 나와 변호사들은 재판이 열리는 날 하루 5시간 이상을 길에서 낭비한다. 변호사 비용도 교수 연봉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증인 신문을 대거 철회했다. 재판에 불리할 수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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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00명이 넘는 증인을 신청하는 바람에 재판이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40여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마쳐서 60명 정도가 남았는데, 핵심 증인들에 대해서는 신문을 다 마쳤다. 만약 증인 신문을 다 한다면 앞으로 2~3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래서 다른 피고인들과 상의해서 증인 신문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월성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 조작과 불법 가동 중단 지시를 수사했다고 주장한다.

“검찰의 논리는 ‘친원전’ 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경제성 평가는 이용률과 전망단가를 변수로 해서 이 수치가 변동하면 경제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마치 경제성 평가보고서가 특정 이용률과 전망단가를 전제로 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고, 이를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보고서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소한 것이다. 또 검찰은 과거의 평균단가(과거 특정 년도의 단가를 평균한 값)가 아니라 전망단가(미래에 예상되는 단가)를 사용하여 경제성을 평가한 것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은 미래를 예측할 때 전망단가를 써왔고, 과거의 평균단가가 미래의 전망단가와 일치한 적도 없다. 무엇보다도 한수원 이사회에서 위 경제성 평가보고서를 기초로 월성1호기의 폐로를 결정한 게 아니다. 이 원전은 이미 설계수명이 지났는데도 무리하게 가동을 연장해 고장이 잦아 이용률이 60%대에 불과했다. 다른 원전들은 80%대 초중반이다. 친원전론자들은 월성1호기도 80%대로 가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검찰이 이 주장을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발전단가도 원전마다 다른데, 월성1호기는 당시 10년 동안 1000억원의 손실을 낸 적자 원전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월성1호기 발전단가를 다른 원전의 평균단가로 계산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장관으로서 월성1호기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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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폐쇄는 경제성 평가뿐만 아니라, 지역 수용성,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당시 가동 중인 24기 원전 가운데 월성1호기는 고리1호기(2017년 6월 폐쇄) 다음으로 가장 노후한 원전이었다. 원래 2012년에 설계수명이 끝나 가동이 중단됐다가 2015년 수명 연장으로 재가동됐는데,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이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게 이유였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컸다.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 지진으로 원전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해 노후 원전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월성1호기 문제가 문재인 정권의 100대 국정과제가 된 배경이다. 또 당시 원자력 전문가 집단에서도 월성1호기는 폐쇄가 맞다는 의견이 있었다.”

―앞서 고리1호기 폐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 고리1호기도 당시 경제성은 있다고 봤지만, 지역 주민들이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자 수명 연장을 하지 않고 폐쇄 결정을 내렸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는 감사원이나 검찰에서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느낀 계기는 무엇인가.

“감사원이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감사결과를 발표하려고 무리하게 서두르는 것을 보고 정치적 의도를 처음 의심하게 됐다. 당시 여소야대였던 국회의 요구로 감사가 시작됐는데, 1차 감사는 비교적 평이하게 진행됐다. 그런데 2차 감사 때 유병호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현 감사위원, ‘관저 이전’ 봐주기 감사 관련 혐의로 구속됨)이 감사를 맡으면서 감사관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나를 비롯한 산업부 직원들을 조사실 골방에 처넣고 압박했다. 감사 조서를 자기들 마음대로 편집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조서 문답 내용을 왜 순서대로 적지 않느냐’고 항의했더니, 감사관으로부터 ‘우린 군대 타이핑 병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감사원은 변호인 입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조사 때 변호인 입회가 가능한데도 내가 조사받을 때 안 된다고 억지를 부렸던 거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공무원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감사원에서 압박을 심하게 받아서 자기 뜻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심지어 한 공무원은 법정에서 ‘감사원에서 조사를 받다가 나가 있으라고 해서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이미 조서가 다 작성된 상태에서 서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경기도 구리역 광장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지난 2022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경기도 구리역 광장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검찰 수사는 어땠나.

“감사가 끝난 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시기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강하게 충돌한 때였다. 법원의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윤석열이 곧바로 지방 순시를 간 곳이 바로 이 사건을 수사하던 대전지검이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특활비를 대전지검에 몰아주면서 수사를 독려했다. 나중에 윤석열은 대통령에 출마한 동기가 월성수사였다는 말도 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보니 감사원에서 작성했던 문답서가 그대로 넘어와 있었다. 검찰은 처음에 산업부 공무원들이 범죄를 감추려고 원전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는 프레임을 걸어 문신학 당시 산업부 대변인을 포함한 3명의 핵심 간부들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관련 자료들을 다 산업부 서버와 정부 전자문서관리시스템에 보관했기 때문에 개인 피시에 저장한 자료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삭제했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검찰은 막무가내였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이들은 3년여 동안 재판을 받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

(문신학 등은 월성원전 자료 삭제·감사 방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2024년 1월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같은 해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감사 방해는 성립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원이 포렌식 과정 등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라고 판결했다.)

―문신학은 이재명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으로 복귀한 뒤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에 발탁됐다.

“정말 잘된 일이다. 문 수석을 비롯해 검찰 수사를 받았던 이들은 유능한 공직자였다. 그분들이 검찰에서 받은 피의자신문이 무려 18~20회에 달한다. 검찰이 애초 그린 그림대로 진술이 나올 때까지 계속 불러다 조사한 거다. 그분들은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로 명예는 회복됐겠지만,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다.”

―이 사건 수사가 공직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국가 정책에는 이해 집단 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공직자는 그런 갈등을 조정하면서 정책을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탈원전 수사로 인해 공직자들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주 작은 갈등만 있어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적극 행정’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예전에도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한 상태인 것 같다. 대표적 사례가 있다. 2025년 10월1일 정부조직 개편으로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됐다. 예전 같으면 산업부가 부처 위상과 권한 약화 등을 이유로 강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반겼다고 한다. 국가 정책의 대승적 차원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원자력 발전이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이관에 적극 찬성한 것이다. 월성원전 수사 이후 원자력 부문은 외국유학 우선 선발 등의 파격적 보상을 내걸어도 지원자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 지금은 아예 다른 부처로 넘기기를 바라는 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검찰 수사의 여파라고 본다. 정치적 의도로 시작된 수사가 공직 사회의 ‘적극 행정’ 의지를 꺾은 것이다.”

―재판으로 인해 연구 활동에 지장은 없었나.

“없을 리가 있겠나. 연구는 새로 나온 논문과 최신 정보를 따라가야 하는데, 재판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재판 초기 1~2년은 재판 기록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4만쪽이 넘는 기록을 봐야 해서 힘들었다.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으로는 연구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자칫 연구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회가 있을 때 더 열심히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연구 성과가 있었다.

“연구자에겐 논문이 다른 학자들에게 얼마나 인용되는지가 중요한데, 지난해까지 클래리베이트의 ‘최다논문인용연구자(HCR)’에 6년 연속 선정됐다. 또 영국왕립화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EES Batteries’의 편집장도 맡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다. 한국 공학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서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다. 재판 초기에는 출국금지가 걸려 있어서 해외 학회 참석에 큰 지장을 받았다. 법무부가 출국 하루 전날에서야 출금을 일시 해제해주는 식으로 애를 먹였다. 심지어 학회 기조강연을 위해 출국하는 것을 검찰이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판장에게 건의한 적도 있었다. ‘학회 참석을 핑계로 외유를 다니는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한 검사도 있었다.(웃음) 지금은 출금이 완전히 풀려 그나마 다행이다.”

―사법적 족쇄가 풀린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올해 학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재판을 받지 않았다면 진작에 시작했을 사업이다. 반도체 평탄화 공정 관련 소재를 생산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회사다. 교수 생활 35년째인데, 국내에서 기업과 협업을 많이 한 연구자라고 감히 자부한다. 동료 교수와 함께 창업했다. 일단 씨를 뿌렸으니까 제자들이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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