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없는 교실, 화장실 휴지도 없다”…프랑스 고교생들의 ‘혁명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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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동부 리옹의 에두아르에리오 고교 정문 앞에는 8일(현지시각) 아침 7시께부터 수십명 학생이 모여 쓰레기통과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이들은 경찰의 최루탄에 대비해 목에 스카프를 둘렀고, 일부 학생들은 팔에 변호사 연락처를 적었다. 자녀가 연행될까봐 부모들이 적어준 번호였다. 한 1학년 학생은 르몽드에 “도시 외곽순환도로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학생들(교육 여건)은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고발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전국을 3주째 휩쓰는 고등학생 시위의 배경엔 대도시 부촌과 가난한 교외의 ‘교육 불평등’이 깔려있다. 대통령을 여럿 배출한 파리 명문고는 노련한 교사가 체계적인 입시 준비를 시키는 반면, 외곽 공립학교에는 담당 교사가 없어 수업이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학생들은 “진학할 대학과 진로가 출신 동네에 따라 이미 정해진다”고 호소한다.
수업중 정전, 화장실 휴지도 없어
학생들은 교육 환경의 격차가 교실 환경에서부터 드러난다고 입을 모은다. 파리 교외 장마세 고교 학생 잘리카(16)는 리베라시옹에 “2000명이 다니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화장실이다. 쓸 수 있는 여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몇 년 째 문을 닫아놓았다. 그 한 곳도 휴지, 비누조차 없어 비위생적”이라고 전했다. 이 학교에선 책걸상도 부족해 체육 수업 등을 나간 교실에서 빌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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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쪽의 서민 주거지 센생드니 폴엘뤼아르 고교의 빌랄(17)도 “건물이 낡아 유리창 깨진 창문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있다”며 “정전도 계속돼 철학 수업을 듣다가 불이 꺼지고 시험을 치다가 교실이 깜깜해져 시험이 취소된다”고 말했다. 빌랄은 “우리 학교는 감옥 같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학교 시설 개선은 중앙 정부가 아닌 시·도청 몫이다. 세수가 적으면 학교 개보수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일부 부유한 지방자치단체를 빼고는 50년 넘은 건물을 방치하게 된다.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고교 건물은 지어진 지 평균 61년 됐다. 2015년 이후 새로 지어졌거나 개보수된 학교는 15%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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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없어 수학 수업 3달 멈춰”
학생들은 선생님이 없어 수업을 멈추는 학교에도 분통을 터뜨린다. 크레테유 생텍쥐페리 고교의 셰이크(17)는 리베라시옹에 “대체교사 없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며 “올해부터 수학 내신 성적이 대입에 반영되는데 개학 뒤부터 학교에 수학 선생님이 없다. 고1 때도 3달 동안 수학 선생님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다. 파리 중심가 학생들은 선생님이 올 때까지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쥘게드 고교 학생 테스도 메디아파르에 “중학교 땐 새 프랑스어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2년 동안이나 그랬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재정 긴축을 위해 교사 수를 줄인 결과다. 지금 고1 학생들은 프랑스 출생아 수가 역대 최대였던 2010년에 태어난 이들이다. 프랑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올해 중·고교생 수는 558만명으로 2008년보다 25만명 많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17년부터 중·고교 교원을 수천명 줄였다. 프랑스 교육부는 2024∼2025년 고등학교 전체 수업시간의 10%가 교사 부족 등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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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교사들이 근무를 꺼리는 교외에선 ‘선생님 구인난’이 더욱 심각하다. 메디아파르는 프랑스 공공정책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해 프랑스 고교에서 경력 8년 이상인 교사 비율은 50%이지만, 센생드니에서는 37%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이곳에서는 교사 28%가 경력 2년 미만 ‘신참’이다.
프랑스 시앙스포의 교육경제학 교수 엘리즈 위이에리는 교육전문 매체 에뒤크프로에 “사회적·학업적으로 취약한 학생이 더 많은 고등학교에는 교사들이 덜 지원한다. 충분한 인사 점수를 쌓고 경력이 어느 정도 되면 가르치기 ‘더 수월한’ 학생들이 있는 학교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업도 못듣는데 ‘입시 스펙’까지 요구”
여기에 마크롱 정부 들어 바뀐 입시 제도가 학생들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교육부는 2018년 대입 지원·심사 온라인 플랫폼인 ‘파르쿠르쉬프’를 도입했다. 고3 학생은 파르쿠르쉬프에 원하는 대학·전공과 함께, 내신 등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대입 시험(바칼로레아) 성적을 입력한다. 각 학과 심사위원회는 이 정보를 종합해 지원자 순위를 매기고 합격자를 통보한다. 이전에는 바칼로레아만 잘 보면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교 3년 내내 입시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런 시스템이 열악한 학교의 학생들을 입시에서 더욱 뒤처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교과 진도도 ‘자습’으로 해결하는 마당에, 과외 활동과 자기소개서까지 챙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잘리카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좋은 성적과 학생부를 만들라는 건가? 방과 후 활동이 (입시에) 중요하다고 늘 듣지만 그건 도대체 언제 하라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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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올리비에 갈랑은 르몽드에 “(파르쿠르쉬프는) 진로 선택에 엄청난 불만과 불안을 만들어낸다”며 “일부 청년들은 자기가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고, 막다른 진로로 밀려날까 두려워한다”고 진단했다.
최근 집회에는 대도시 부촌의 ‘명문고’ 학생들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면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6일 파리의 유서 깊은 사립학교 생미셸드픽퓌스 학생들이 6일 시위에 나섰고, 샤를페기 고교 학생 200명도 같은 날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7일 파리 바스티유광장 시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고3 학생 엘리(17)는 “나는 비교적 특권적인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센생드니의 모든 학교를 위해 나왔다”며 “(사회는) 우리에게 기회의 평등을 약속하지만 학교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더 이상 전혀 못 한다. 사회적 지위 대물림이 점점 심해진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돈이 없어”
마크롱 정부에서 교육 불평등 문제가 불거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감사원은 마크롱 임기 둘째 해인 2018년 보고서에서 “사회적·학업적 (계층) 혼합 정책이 후퇴하고 있으며, 특정 학교를 (학생·교사가) 회피하는 현상으로 인해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해법이 없는 건 나라 곳간이 비어가기 때문이다. 위이에리 교수는 교육 서비스 질을 회복하기 위한 교사 충원과 교육 인프라 개선 등에 120억유로(18조원)가 든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6월 말 기준 프랑스 국가부채는 3조5955억유로(5418조원)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 이후 최고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며 공적 연금에 들어가는 재정이 불어난 데다, 중공업 등 제조업이 국외로 떠나며 경제 기반이 부실해진 결과다. 이에 마크롱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까지 재정을 졸라맬 예정이다. 르몽드에 따르면 12일부터 하원이 심의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도 수십억유로 규모의 재정 절감안이 포함됐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7일 저녁 학생들을 달래고자 “고등학생들이 호소하는 불안에 누구도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예산상 ‘운신의 폭’은 극히 작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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