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쌍둥이가 낯선 말레이시아에 던져진 까닭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가족은 한 없이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관계는 아닙니다. 뜻이 맞지 않아 싸우는 건 다반사고, 때로는 으르렁대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 가족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둘이나 셋, 그 어떤 숫자도 하나가 되는 기적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집니다.
김지영 작가의 책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는 엄마와 쌍둥이 두 아들이 6주간 낯선 땅에 뿌리내리며 함께 성장하는 기록을 실었습니다.
책은 ‘가족과 함께 떠나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행’을 다룹니다. 완벽한 여행이 아니라 실수와 한계까지 끌어안으며 가족이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
김지영 ㅣ 미다스북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바닥은 차가웠다. 불 꺼진 대합실 한 편에 세 식구가 쪼르르 누웠다. 배낭을 베개 삼은 쌍둥이 형제는 이내 코를 골고, 엄마는 천장만 올려다봤다. 낯선 나라에서의 첫 밤이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힘들거나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웃음부터 났다.
공항 노숙에서 출발해 6주 동안의 해외 체류기를 기록한 책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는 ‘매일 사고 치고 매일 자란 6주 해외 생존기’라는 부제처럼 시종일관 소란스럽다. 책장을 넘기면 그 왁자지껄함이 곧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저자 김지영은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속도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코로나 이후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의 삶을 살면서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마음을 먹는다. 곧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사춘기의 초입의 두 아들과 스무 살 독립 전까지 해외에서 살아 볼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를 고민했다. 그 계산 끝에 손에는 어느새 비행기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저자는 딱 6주로 계획을 세웠다. 그 답은 명쾌했다. 4주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6주라면 첫 한 주는 이래저래 알아 가다 흘러가고, 이후 4주는 적응하며 즐기고, 마지막 한 주는 아쉬움이 남지 않게 불태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행자의 시간과 생활자의 시간 사이 딱 그 어디쯤으로 6주는 적절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 생활 설명서다.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전제로 가볍게 떠났지만 6주 동안은 낯선 땅에 잠시나마 뿌리를 내리고 ‘그곳만의 일상’을 쌓아 간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어학원과 숙소를 구하고 매일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주말이면 버스로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로 건너간다. 싱가포르가 내 집 앞마당이 되는 시간이다.
목차만 훑어도 하루하루의 온도가 전해진다. ‘행운의 눕코노미’, ‘세계적인 기업 그랩과 맞다이’, ‘키즈카페형 어린이 영화관’, ‘시스템이 잠겼습니다’, ‘설거지를 하는데 발이 젖는다’ 등 쉬어갈 타선이 없다. 레고랜드 연간회원권을 두고는 “뽕 뽑기는 글렀다!”라고 했다가 3주 뒤 “진작 올걸! 뽕 뽑았다”로 돌아선다.
말라카에서는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을 만나고 반딧불이 날아드는 밤에는 말레이 민속 체험도 한다. 야쿤과 토스트박스 사이에서 벌인 토론은 이 가족의 첫 이틀을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이다.
여행이 늘 반짝이지만은 않았다. 4성급이라 믿고 예약한 호텔은 사진과 달리 “낡았고요, 늙었습니다”를 외치게 했다. 열이 펄펄 끓는 아들을 데리고 말레이 현지 병원을 찾아가던 날도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저자가 ‘멍청 비용’이라 부르는 값을 치른 날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책은 실수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는 콘텐츠, 시행착오는 성장의 증거라고 말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결제하기, 식당에서 스스로 주문하기, 지도를 보며 길 찾기 등은 물론이다. 엄마가 대신해 주던 일들을 아이들이 하나씩 가져갈 때는 놀라우면서 감동적이다. 엄마의 눈에 비친 아이들은 엉뚱하고 당황스럽지만 그 사이에는 소소하지만 기특한 순간이 끼어 있다.
국경을 버스로 넘던 어느 날에는 아이들이 “나라 사이도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왜 한반도는 못 갈까?”라고 물었다. 여행이 아이들의 질문을 샘 솟게 한 것이다. 넘지 못할 벽처럼 보이던 두려움도 버스로, 걸음으로 넘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다. 엄마가 얻은 것도 있다. 아이와 함께라서 더 강해졌다는 고백과 재취업을 향한 용기, 그리고 단단해진 자기효능감이다.
여행 책에 먹는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이 책에도 바쿠테와 딤섬, 오리엔탈 코피티암(커피와 토스트를 즐기는 현지 식당), 부킷인다 수요 야시장까지 입이 즐거운 날들이 이어진다. 저자가 꼽은 ‘원픽’은 단연 아보카도 주스다. 경험해 본 적 없는 형광펜 색을 띤 주스다.
망고는 흔하지만 망고주스는 ‘레어템’이라는 문장에서는 열대 과일 가게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과일 잭푸르츠와 인사하던 날의 표정도 떠올리게 된다.
현지 미용실, 스타벅스와 현지 주스커피 가게 비교, 싱가포리언들의 성지로 불리는 미드밸리몰까지 책 속의 장소는 관광 명소가 아니라 이 가족의 단골집이 돼 간다. 일몰 크루즈 위에서 두 나라 사이를 가르는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밤을 보내는 장면은 6주의 마침표로 더없이 어울린다.
실용서로서의 쓸모도 만만치 않다. 어학원과 숙소 고르는 법, 통신과 환전, 교통 선택법은 물론, 버스로 국경을 넘는 절차까지 꼼꼼히 담았다. 부록에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기본 정보, 국경 넘기 팁, 준비물 체크리스트, 6주 살기 비용표가 실려 있다.
저자는 책 끝에서 “부끄러움은 내 몫으로 남기고” 용기 내어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적었다. 그 부끄러움 덕분에 독자는 용기 한 스푼을 얻는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함께 버틴 매일이 가족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까짓것, 나도 해보지 뭐!”라는 힘을 건넨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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