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어른 되기, 함께하는 독서가 영향 주죠”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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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69, 70살이라고?’ 시니어 독서 모임을 취재하러 갔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속 노화’의 표본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젊음 유지의 비결을 물으니 “운동과 독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60~70살 시니어 10명이 2020년부터 7년째 한달에 두번씩 모여 ‘낭송 독서’를 하고 있다. 함께 책만 읽는 게 아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문학관과 동네 책방을 찾아다닌다.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한다. 오는 23~24일에는 자신들이 쓴 글과 그림으로 전시회도 연다. 안성 시니어 독서 동아리 ‘청미회’ 회원들 이야기다.
지난달 19일 모임이 열리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있는 일죽도서관을 찾았다. 오전 10시가 되자 회원들이 하나둘씩 문화강좌실에 모였다. 5명씩 두 조로 나눠 앉았다. 한 팀은 ‘최재천의 희망 수업’(샘터)을, 한 팀은 ‘쇼펜하우어 서재에서 훔친 인생 지혜 77선’(히읏)을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한 회원은 돋보기를 든 채 일어나 책을 읽었고,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며 서서 읽는 회원도 있었다.

이들은 왜 굳이 소리 내 책을 읽을까. “도서관 가면 쉿쉿 하니까 책 읽다 졸기도 해요. 낭독하면 졸 수가 없어요. 내 차례가 오잖아요.”(김명순) 웃음이 터졌다. 최용석씨는 낭독을 “귀로 하는 독서”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읽는 동안 귀로 들으며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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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의 낭독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희망 수업’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어요.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을 나눠볼까요?” 모임을 이끄는 조성일씨가 묻자 회원 마틸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이 소를 키우거든요. 몇달 동안 여름에 너무 더우니까 소가 사료를 남겨요. 900㎏이던 소가 못 먹으니 690㎏이 되는 걸 보고 기후위기를 체감했죠. 책을 읽고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비닐도 아껴 쓰고, 쓴 비닐은 깨끗이 닦아 말려 다시 써요.”
다른 회원들은 바이러스와 기후변화, 인간과 자연의 공생에 관한 생각들을 나눴다. 격한 논쟁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두런두런 나누는 분위기였다. 회원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생각이 달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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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회 회원 대부분은 서울·인천 등의 도시에서 살다 귀촌했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기 위해, 근무지가 바뀌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이곳에 왔다. 낯선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들을 이어준 것은 책이었다. 교육청에서 사서로 근무하다 은퇴 뒤 남편을 따라 안성으로 온 조성일씨는 “나이를 먹으면 건강, 외로움, 자존감 상실 같은 게 문제가 되는데,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런 어려움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한다.
“나이 든 사람끼리 모이면 자꾸 자식 자랑, 돈 자랑 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는 그런 게 없어 좋아요.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많이 웃고, 서로 위로해 줘요.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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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씨가 이어 말했다. “전두엽과 해마가 기억력과 관련된 뇌 부위라고 해요. 낭독이 그곳을 자극해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나이 들면 치매 걱정 많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낭독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똑똑해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88석 도서관 소극장에서 연극도 했고, 오카리나도 배워 작은음악회도 했어요”라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기자를 보며 “저희 조금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라고 물었고, 다른 회원들은 “언니도 참~” “왜 그래~” 하며 까르르 웃었다.
책 속의 어떤 구절들은 회원들이 내밀한 생각을 꺼내놓게 만든다. 김명순씨는 ‘쇼펜하우어의 서재에서 훔친 인생 지혜 77선’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결국 우리는 혼자다”라는 대목을 인상 깊은 구절로 꼽았다. ‘혼자’라는 말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퇴직하고 5년을 살아보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많이 맞추며 살았구나 싶었어요. 이제 나를 챙길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박현주)
혼자 있는 시간이 마냥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안동숙). 그러나 회원 백성호씨는 “혼자인 게 두렵다”고 털어놨다. “새벽 2~3시쯤 눈을 뜰 때가 있어요. 잠결에도 내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생각해요. 어차피 혼자 살다 가니까…. 처음 얘기하는 건데, 혼자 죽게 되는 공포가 있어요.” ‘혼자’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며 그 의미를 곱씹는 시간이었다.

책 모임은 수십년 함께 산 부부가 서로를 새롭게 발견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용석-박현주 부부는 청미회에 함께 나온다. 최씨는 16년 전 직장 때문에 먼저 안성에 왔다. 아내가 합류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집과 직장만 오가며 “수도승처럼” 지냈다. 책도 혼자 읽었다. 5년 전 아내를 따라 청미회에 올 때만 해도 “아내에게 맞춰준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잘 모르고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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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엔 목표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을 잘 몰랐죠.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같은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 이 사람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구나’ 알게 됩니다.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도 이해하게 되면서 갈등도 줄어들더라고요.”
최씨는 나이가 들수록 독서 모임이 필요한 이유를 ‘거울’에 비유했다. “나이 먹을수록 독서 모임이 좋은 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에 갇히기 쉽잖아요. 독서는 내 생각이 무엇인지, 또 다른 사람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알게 해, 열린 마음을 갖게 만들죠.”
이 말과 함께 그는 시니어 독서 모임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명징하게 정리해 주었다.
“자기주장만 하는 노인이 될 것인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마음을 열고 공감할 줄 아는 어른으로 인생을 마칠 것인가. ‘함께하는 독서’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청미회에 계속 참여합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한겨레와 재단법인 지관은 공동기획으로 책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독서 모임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사회적 독서’가 지닌 가치와 효능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함께 읽고 대화하는 독서 문화의 의미를 확산시키고, 일상 속에서 독서를 매개로 한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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