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지 않는 죽음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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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 성공회대 외래교수
2초.
국내의 숙련된 병아리 감별사가 암수를 판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부화기 문이 열리면 갓 깨어난 산란계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진다. 감별사는 한마리씩 병아리를 집어 뒤집고, 항문을 살짝 벌려 좁쌀 3분의 1 크기의 돌기를 찾는다. 그리고 수컷은 따로 분류돼 죽음을 맞는다. 수컷은 계란을 낳지 못할뿐더러 고기용으로 쓰자니 육계처럼 살이 찌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첫날 죽이는 게 경제적이다. 수평아리들은 분쇄기에 들어가 죽거나 질식사한다. 이러한 행위를 우리는 ‘도태’라고 하지만, 수평아리가 특별히 못나거나 병든 건 아니다. 건강한 동물을 사람 사정으로 죽이니 ‘살처분’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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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많이 죽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닭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통계로 2024년 한해 785억마리가 도축됐다. 그렇다면 두번째는? 또, 닭이다. 수평아리다. 어느 나라도 이 죽음을 축산 통계에 넣지 않는다.
지난 8월 미국의 동물보호 연구단체 ‘파우널리틱스’가 처음으로 나라별 수평아리 살처분 개체수를 추산했다. 일반적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암수 비율은 1대1이다. 산란계 농장에서 암탉은 1년 반쯤 알을 낳고 교체되는데, 암탉 한마리를 새로 들일 때마다 수평아리 한마리가 함께 태어나 죽는 셈이다. 여기에 이 단체가 산란 전후의 폐사율 등 변수를 고려해 계산했더니, 2024년 살처분된 수평아리가 78억3천만마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한해 도축되는 돼지의 5배, 소의 26배다.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는가? 그 1초 동안 수평아리 250마리가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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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아리 살처분을 금지한 나라가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다. 독일은 2019년 연방행정법원에서 “경제적 이유가 수평아리를 죽일 합리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결하면서, 2022년부터 수평아리 살처분 금지 조항을 넣은 동물보호법을 시행 중이다. 현재 독일에서 팔리는 달걀의 70% 이상이 부화 전 성감별을 거친 산란계가 낳은 것이다.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각각 2022년, 2023년에 살처분 금지 대열에 합류했고, 이탈리아는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스위스는 양계업계 스스로 살처분을 끝낸 경우다. 노르웨이도 지난 1월 이 나라 최대 축산기업 ‘노르투라’(Nortura)와 관련 협회 공동으로 내년 7월까지 병아리가 되기 전 배아 상태에서 암수를 감별하는 기술을 업계 표준으로 삼기로 선언했다. 비영리 싱크탱크 ‘이노베이트 애니멀 에그’(Innovate Animal Ag)는 지난 6월 낸 보고서에서 이미 유럽연합의 상업용 산란계 사육 두수의 40%가 부화 전 성감별을 적용받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수평아리 살처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부화 전 성감별 기술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가 자주 먹는 갈색란의 경우, 할로겐램프를 비추어 13일령 배아에서 96%의 정확도로 수평아리를 가려낼 수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계란을 찍어 수컷 생식기관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선별한 계란은 비료 원료로 쓴다. 유럽연합 말고도 미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에서도 관련 기술을 도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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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병아리 감별사를 길러내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동물자유연대 소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는 2024년 낸 보고서에서 한해 약 5000만 마리가 살처분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에서 도축된 돼지 1872만마리 그리고 소 106만마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동물보호법 제13조는 잔인한 도살을 금지하지만 수평아리에 대해서는 아무 규정이 없다. 보고서는 “수평아리 도태 규모와 부화장 실태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파우널리틱스는 살처분되는 수평아리의 70%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리더 국가인 우리나라 정부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감별사는 2초 만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데, 우리는 그 죽음을 세는 데만 2년 넘게 손을 놓고 있다. 오늘 당신이 먹은 삶은 달걀을 제공한 산업 뒤편에는 78억 수평아리의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그리고 변화는 당신에서부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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