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앳부동산]서울 골목 어딜 가봐도 차로 ‘빽빽’ 왜?···도쿄와 비교해보니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골목에서 촬영한 건물 정면.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오동건 고려대 건축학과 석사 제공
서울의 주택이 가득한 골목을 걷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비슷하다. 건물 1층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오래 전엔 골목에서 화분이라도 보였지만 요샌 그마저도 드물다. 반면 도쿄의 주거지역 골목은 건물과 길 사이에 작은 나무와 화단이 자주 보인다. 큰 공원이 아니어도 ‘초록색’을 골목에서 마주할수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그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 지난 6월 올린 영상 ‘도쿄와 서울의 결정적인 차이’에서 이같은 내용을 다루며 해당 영상은 7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는 우선 “씁쓸하다”고 했다. 그는 도쿄 거리를 걸을 땐 “차가 많지 않고, 가게들도 볼 게 많고, 안전한 느낌이 든다”고 치켜세웠지만, 서울 거리를 걸을 땐 “자동차가 시야에 먼저 들어오고 건물이 그 뒤에 가려져 있다”고 아쉬워했다.
유 교수는 두 도시의 차이를 만든 배경으로 주차장 관련 법을 지목했다. 한국에선 건물을 지을 때 일정량의 주차장을 확보하도록 강제하는 반면 일본에선 그렇지 않고, 차를 살 땐 주차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일본에선 민간 소규모 차고지가 주차를 해결한다고 했다.
주차장 관련 법이라는 ‘한 끗 차이’가 두 도시의 큰 차이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남정민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논문 ‘두터운 경계: 서울과 도쿄 저층주거지 접점공간의 제도적 문법’(오동건·이동훈 공저)에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9월 건축 월간지 <SPACE(공간)>이 주최한 논문 국제공모에서 선정되기도 했다.
도쿄도 메구로구 나카메구로 골목에서 촬영한 건물 정면. 남정민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제공
일단 연구진 역시 주차장 제도를 서울과 도쿄의 차이를 만든 원인으로 꼽았다.
연구진은 “서울은 거의 모든 건축물에 부설 주차장 설치 의무를 부과해 1층이 주차에 잠식되기 쉽다”며 “필로티를 유도하는 제도적 혜택과 맞물리며 필로티형 주차장이 일반화된다”고 분석했다. 필로티란 벽체 없이 기둥만으로 구획해 비워놓은 지상층으로, 다세대·다가구 주택에서 주로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을 가리킨다.
저층 주거지의 1층이 주차장으로 본격 채워지기 시작한 때는 2002년부터다. 전용면적 15~85㎡ 주택에 ‘1가구 1주차장’ 기준을 적용한 해다. 골목마다 심각한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 ‘3가구 2주차장(1가구당 차량 0.7대를 기준으로 설정)’ 규정을 강화했다.
유인책도 마련했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려면 땅을 파는 비용이 많이 들다보니 1층을 필로티형 주차장으로 만들 경우 1층에 넣지 못한 집을 건물을 한 층 더 올려 채울 수 있게 했다. 1층엔 기둥만 있고 2층부터 벽체로 둘러싼 집이 있는 전형적인 도심 빌라가 우후죽순 생겨난 배경이다.
반면 일본에선 차량 구매 시 주차장이 집에서 2㎞ 이내에 있어야 한다. 차량 구매 수요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차를 사더라도 집밖에서 주차할 곳을 구하면 되니 굳이 집의 다른 면적을 줄이면서까지 주차장을 반드시 마련할 이유가 없다. 여러 집이 함께 쓰는 형태의 주차타워 등 민간 서비스가 많은 이유다.
연구진은 주차장 외 다른 배경도 찾아냈다. 남 교수는 경향신문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주차장 제도의 영향이 크지만, 그 이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조경”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땅값, 도심 접근성, 용적률·건폐율, 용도지역, 도로 폭 등 조건이 비슷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도쿄 메구로구 나카메구로를 선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한국의 조경 관련 규정은 단순히 일정 면적을 확보하라고만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세세한 규정으로 다채로운 조경 연출을 유도했다.
대표적으로 메구로구에서 주거용 건물의 경우 건물과 골목이 맞닿는 길이의 60% 이상에 조경을 하도록 규정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건물 정면의 가로폭이 10m라면 6m 이상을 나무나 화초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반드시 지표면이 아닌 반지하층부터 지상 2층까지 다양한 높이에 조경을 해도 60% 기준 안에 포함하면서 녹지를 더욱 다채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진은 “(메구로구는 건물의 조경 공간이) 가로(골목)에서 인식되고 가로 환경에 기여하는지를 바탕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조경 기준은 단조로운 편이다. 일단 주택 가로폭의 일정 길이 이상으로 나무를 심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사실상 없다. 건물마다 나무와 화초를 일정 면적 이상 심어야 하지만 골목을 걷는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토교통부 고시 ‘조경 기준’엔 ‘폭 20m가 넘는 도로에 접하고 2000㎡가 넘는 대지 안에선 조경 면적의 20%를 길가에 맞닿게 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보통 ‘골목’에 위치한 저층 주거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저층 주거지 골목의 이면도로의 폭은 대체로 4~8m이며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짓는 대지 면적이 2000㎡를 넘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울에선 서울시 건축 조례에 따라 ‘200㎡ 넘는 대지에 연면적 1000㎡ 미만의 건물을 짓는다면 조경 면적은 대지면적의 5% 이상이어야 한다’는 최소 면적에 관한 기준만 지키면 된다.
연구진은 도쿄와 달리 서울에선 나무를 심을 위치까지 세밀하게 지정하진 않기 때문에 골목변이 아닌 대지 안쪽 어딘가에 조경 면적을 확보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봤다.
식재에 관한 규정도 영향을 미쳤다. 메구로구는 나무의 키에 따라 나무를 심는 공간의 최소폭을 20㎝, 40㎝, 1m 등 서로 다르게 할 수 있게 했다. 반면 서울시는 나무의 크기나 종류에 상관 없이 최소폭을 1m로 정하고 있다. 무조건 1m를 확보하다 보면 차와 사람의 통행을 막을 수도 있으니 건물 앞면엔 작은 나무도 심기 어렵게 된다.
연구진은 결국 주차대수나 조경면적의 최소치만 획일적으로 제시하는 법규를 바꾸면 저층 주거지의 환경도 개선될 수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차로 가득찬 필로티층 대신 골목길을 따라 다양하게 생긴 녹지가 계속 이어지는 저층 주거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남 교수는 건축·조경 관련 규정이 대부분 대규모, 대로변 위주로 마련돼 있고 소규모, 골목 등 이면도로는 그 수가 훨씬 더 많은데도 관련 규정이 부족한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저층 주거지를 두고 대규모 재개발과 현 상태 유지 중 하나만 택할 필요는 없다”며 “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건물과 골목을 세심하게 가꿀 기준을 마련하고, 개별 건물의 작은 변화가 골목 전체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4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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