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 시대,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들어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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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사람 l 한국-아프리카 행사 여는 이석호 소장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도움을 호소하는 엔지오의 텔레비전 광고가 아니면 경제 및 개발 협력 대상이라는 실용주의적 인식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인문학적 담론 차원에서 한국과 아프리카가 좀 더 깊게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미국 중심 일극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중심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 담론이 부상하고 있고 그 핵심이 아프리카인데, 그에 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죠.”
11~12일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열리는 제4차 한국-아프리카 인문·예술 교류 행사를 주관하는 (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 이석호 소장의 말이다. 이 행사에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같은 책으로 잘 알려진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딸인 미레유 파농(프란츠 파농 재단 이사장)과 주킬레 자마 남아공 웨스턴 케이프 대학교수를 비롯한 외국 학자 및 활동가들과 국문학자 고인환·이명원 경희대 교수와 고명철 광운대 교수, 철학자인 이정우 소운서원장 등 국내 학자 및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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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16억 범아프리카와의 만남’을 부제로 내건 이 행사는 ‘아시아-아프리카 폴리타니즘’ ‘포스트-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퓨처리즘’이라는 세 분과로 나뉘어 진행된다. 비전문가에게는 낯설고 까다롭게 다가오는 이 개념들에 대한 설명을, 지난 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이 소장에게 부탁했다.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주창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아프리카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게 아프로폴리타니즘(Afropolitanism)입니다. 칸트의 세계 시민이란 유럽 백인 남성을 보편적 인간의 기준으로 삼고 다른 인종을 타자로서 주변부화하는 관점이라 보고, 아프리카 흑인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그것을 보편적 차원으로 넓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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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반둥’은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나라 대표들이 모여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을 꾀한 반둥회의 이후에 대한 고민을 담은 표현이다. 이 소장은 “반둥회의는 근대적 국민국가들 사이의 연대 틀에 머물렀던데다, 동서 냉전 체제의 부산물이라는 한계 역시 지니고 있었다”며 “아시아 중심이어서 아프리카가 소외되었던 당시와 달리 이제는 아프리카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새로운 연대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은 백인 남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 기존의 에스에프(SF)를 거부하고 흑인의 경험과 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외계인들이 쳐들어와서 지구인을 납치하는 식의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15세기부터 벌어진 백인들의 흑인 노예사냥과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경험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21세기 글로벌 사우스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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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의 설명을 듣다 보니 미레유 파농의 발표문 한 대목이 떠올랐다. ‘파농과 그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이 발표문에서 그는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힘에 의해 기업들은 갑자기 인간성을 부여받은 반면, 특정한 몸들, 특히 인종화된 사람들과 저주받은 자들의 몸은 다시 상품으로 전락하고 모든 권리를 잃게 된다”며 “탈식민적 투쟁성은 ‘저주받은 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정신적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파농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미레유 파농이 한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번역하기도 한 이 소장은 2018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레유 파농을 만나고, 그의 소개로 아버지 파농이 의사로서 근무했던 알제리와 튀니지의 병원을 답사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파농 재단이 주최하는 국제회의에 초청되고 서면 연락을 주고받는 등 신뢰를 쌓았다. 한편 주킬레 자마는 이 소장이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학에 유학했을 때 같이 공부한 동문이다. 한국외대에서 탈식민주의 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듬해인 1997년에 유학을 떠났다.
“국내에서 탈식민주의로 박사 논문을 쓰다 보니 그게 서구의 윤색을 거친 엉터리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렇다면 식민지 경험을 가장 악랄하게 겪었던 아프리카 현지로 가서 제대로 된 탈식민주의 공부를 해 보자 하는 생각에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5년 반 만에 아프리카 문학 연구로 두번째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그 뒤로도 2006년까지 아프리카 전역을 답사하며 일종의 필드 워크(현장 연구)를 이어갔다. 아프리카 연구자 1세대로서 그는 귀국한 뒤에도 1년에 한번씩은 현지를 방문하며 아프리카와 관련한 연구와 번역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론과 근대성’과 ‘아프리카 만인보’ 등 두권의 저서와 ‘지도’(누르딘 파라), ‘정신의 탈식민화’(응구기 와 시옹오), ‘조작된 아프리카’(V. Y. 무딤브) 등 30여권에 이르는 번역서가 그 결실이다. 저서와 번역서의 상당수는 자신이 2007년에 설립한 출판사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그는 또 2000년 외교통상부 산하로 등록한 사단법인 아프리카문화연구소를 기반으로 연구와 포럼, 공연 등의 활동을 펼쳐 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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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열등하고 야만적이라는 서구의 인종주의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우리 안에도 내면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담론은 아프리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사우스 시대를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아프리카와의 만남에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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