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앙상한 현실’에 도전하는 ‘장밋빛 비전’
20년 뒤에도 종이 신문이 존재할까? 이미 신문을 종이로 보지 않은 지 오래인 독자들로서는 무슨 생뚱맞은 질문인가 싶을 수도 있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필자가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1991년에는 아직 이런 질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 언론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됐다. 아직도 경향신문을 비롯한 종이 신문이 잘 버티고 있지만, 전통 언론이 처한 현실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하필 ‘20년 뒤’에도 종이 신문이 존재할지 물은 이유는 경향신문이 지난 6일로 8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각계 인사들의 축하 속에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 100주년을 향한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20년 뒤에 맞이할 100년, 나아가 그 이후를 향한 비전의 핵심은 경향신문이 ‘지식 창출 기업, 정보·데이터 해석 플랫폼’이 되어 ‘종합 지식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향신문 구성원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이 비전이 보란 듯이 성공하길 바란다.
독자들도 이런 도전이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전세가 녹록지 않다는 소문이 다 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제의 뿌리도 깊다. 전통 언론이 처한 이 앙상한 현실은 누군가의 사악한 음모가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미디어 소비 방식의 변화라는 시장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이 다양한 새로운 서비스를 가능하게 했지만, 전통 언론은 익숙한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불확실성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졌다. 포털이나 유튜브, SNS가 처음부터 지금 같은 거대한 벽은 아니었다.
언론과 미디어는 항상 그 시기의 가장 최신 기술을 활용한다. 기술과 미디어 서비스의 관계는 마치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파도의 일렁임에 올라타면 쉽게 헤엄칠 수 있지만, 파도에 맞서려 해서는 물속에 처박히기 십상이다. 물론 현실 속의 파도를 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팔리거나 아예 문을 닫은 언론사가 부지기수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많은 유력 언론이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잇따라 무너졌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경영적 문제로 문을 닫는 전통 언론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큰 사고를 쳐도 주인이 바뀌는 정도다. 지금껏 파도에 맞서기만 하면서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전통 언론이 더 훌륭하거나, 한국 언론 시장이 안정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언론 시장의 특이성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통상적이지 않은 시장 구조가 역설적으로 더 큰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항상 위기라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내몰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한국 언론은 본격적인 혁신을 시작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경향신문의 100년 미래 비전은, 그래서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앙상한 현실과의 타협이 아닌, 새로운 비전을 실천할 혁신 전략이 궁금해진다. 유사 언론과 사이비 언론이 판을 칠수록,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홍수 속에서 찾은 귀한 마실 물처럼, 정보 홍수 속에 믿고 볼 수 있는 언론 하나를 만드는 일을 경향신문이 마침내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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