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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0, 2026

조선 실학자들의 ‘토지개혁’,종이쪼가리에 그친 까닭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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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일대의 김제평야.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일대의 김제평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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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소작농 급증에 ‘경자유전’ 대책 속출
이익 ‘균전’, 박지원 ‘한전’, 정약용 ‘여전’론
경화세족 지주들 탁상공론뿐…지금은?

조선 후기에는 3, 4년마다 한번씩 기근이 들었다. 가뭄과 홍수 등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기근이 들면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살던 곳을 떠났다. 이른바 유민(流民)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걸식을 하다가 굶어 죽었고, 일부는 떼도둑이 되어 약탈에 나섰다. 세상이 불안해졌다. 조정은 유민에게 먹을 것을 조금 주고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유민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익은 ‘성호사설’의 유민환집(流民還集)이란 글에서 “시골의 의식(衣食)이 넉넉한 사람을 보았더니 때를 잃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이득을 보기 위한 계획이 아주 치밀하여 흉년도 그를 해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비록 두세해 걸러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든다 해도 먼 앞날을 생각하고 먹을 것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해 살아갈 방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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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홍수, 기근에도 굶어 죽지 않고 살던 곳을 떠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경작할 땅이 있는 자작농이었다. 살던 곳을 떠났던 백성들은 모두 토지 없는 농민이거나 영세한 소작농이었다. 박지원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에 의하면, 소작농은 논밭에서 생산한 것 중 70% 이상을 지주와 국가에 뜯겼다. 이런 상황에서 기근이 들면 자기 소유의 토지가 조금 있다 하더라도 당장 목숨을 잇기 위해 지주를 찾아가 팔고 소작인이 되었다. 대지주는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9월30일 전북 남원시청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읍면동 이·통장 대표 대상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9월30일 전북 남원시청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읍면동 이·통장 대표 대상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민이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을 막으려면 그들에게 토지를 돌려주어야만 하였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익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토지를 농민에게 균등하게 나눠 주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 토지를 ‘영업전’(永業田)이라고 한다. 영업전은 사거나 팔 수 없다. 사거나 판 사람은 처벌한다. 영업전을 산 것이 발각되면, 즉시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한다. 모든 농민에게 영업전을 균등하게 나눠 준다는 이익의 아이디어를 균전론(均田論)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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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도 아이디어를 내었다. 예컨대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2027년 1월1일부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상한선을 5천평으로 정한다. 다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5천평 이상의 토지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현재 토지 소유를 인정하되, 앞으로 새로 토지를 소유하려는 사람은 5천평을 넘길 수 없다. 넘길 경우, 넘긴 그 부분은 몰수한다. 현재 대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수만평의 토지는 몇대를 지나면 상속과 매각 등을 통해 저절로 흩어질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천평 정도의 땅을 갖게 될 것이다.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정하자는 이 아이디어를 한전론(限田論)이라고 한다.

정약용의 아이디어는 사뭇 달랐다. 그는 이익이나 박지원처럼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토지의 공유를 주장했다. 오랜 시간 농민이 살아온 지역공동체인 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일정한 토지가 있기 마련이다. 토지는 마을의 소유다. 사람들은 마을의 토지를 같이 경작하고 노동시간에 따라 수확물을 분배받는다. 사람들은 분배를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에 따라 수확량도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굶주릴 염려가 없고 살던 곳을 굳이 떠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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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한자로 ‘여’(閭)라고 한다. 토지를 마을이 공유한다는 정약용의 아이디어는 ‘여전론’(閭田論)이 된다. 깊게 따지고 들면 균전론, 한전론, 여전론은 모두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수 지주가 토지를 광점(廣占)하는 것을 반대하고 경작하는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준다는 생각 자체다. 21세기로 바꾸어 생각하면 국민에게 삶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 곧 직업과 주택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지난 9월30일 충북 충주시 용두동 인근 농지를 찾아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현장 의견을 듣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농지법 개정이 현실을 무시한 졸속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지난 9월30일 충북 충주시 용두동 인근 농지를 찾아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현장 의견을 듣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농지법 개정이 현실을 무시한 졸속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이른바 실학자인 이익과 박지원, 정약용이 내놓은 토지개혁론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그러면 이들의 개혁론은 조금이라도 실현될 수 있었던가? 아니, 전혀 없었다. 모두 종이쪽 위 문자의 행렬이었을 뿐이다. 이들은 공히 개혁의 아이디어를 실행할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생각을 퍼뜨리고,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을 만들고, 실제 실험해보고, 왕과 조정을 설득하거나 압박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익과 박지원, 정약용은 기득권의 일원이었다. 이익과 정약용은 노론에 비해 정치적으로 열세에 놓인 남인이었지만, 이들 역시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박지원은 최고의 벌열(閥閱)인 반남 박씨(潘南朴氏)다. 이들은 모두 지주였다. 만약 균전론과 한전론, 여전론을 실행에 옮긴다면, 이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친족집단의 토지부터 내놓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이들이 용납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이것은 아이디어를 종이쪽에 쓰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범민(凡民)은 일상의 일과 직업에 종사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그 생각’을 선거를 통해 정치인에게 맡긴다. 그런데 말이다. 이들 정치인 나으리들은 무슨 아이디어를 갖고는 계시는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세상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으니, 이분들 역시 과거 조선시대 경화세족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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