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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6, 2026

[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 마음의 병엔 '사회적 처방'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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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함께하는 마음 건강 부산' 축하공연

(부산=연합뉴스) 강선배 기자 = '2024 함께하는 마음 건강 부산' 기념식이 열린 8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시민공원 다솜광장에서 축하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행사는 자살 예방의 날(9.10)과 정신건강의 날(10.10)을 기념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와 인식개선을 위해 마련됐다. 2024.10.8 sbkang@yna.co.kr

건강을 이루는 세 기둥이 육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 안녕이라면, 우리 사회가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일까. 가장 아픈 지표는 자살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개인의 병으로만 다뤄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펴낸 '한눈에 보는 건강 2025'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2명으로 38개 회원국 평균인 10.7명의 두 배를 웃돈다. 한국은 2003년 이래 이 부문에서 줄곧 1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별로 보면 격차가 더 뚜렷하다.

남성 자살률은 10만 명당 33.9명, 여성은 14명으로 두 성별 모두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가 퇴원한 뒤 1년 이내 자살하는 비율에서도 한국은 비교 대상 15개국 중 1위였다. 연령 구조를 보정하지 않은 실제 수치는 더 무겁다. 지난해 국내 자살률은 10만 명당 29.1명으로, 2011년 31.7명 이후 13년 만의 최고치였다. 다행히 올해 잠정 집계에서는 자살 사망자가 전년보다 7.4% 줄어 3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2018년 자살률을 10만 명당 17명까지 낮추겠다는 행동계획을 내놓았지만 달성하지 못했고, 이제 2034년까지 17명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를 다시 세운 상태다. 풍요를 좇는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건강한 연결은 황폐해졌다.

마음의 이상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조울증과 망상증, 조현병과 우울증, 치매와 수면장애, 알코올·마약 중독, 사이버 중독과 노이로제가 그것이다. 그중 우울증은 가장 흔하면서도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병이다. 이런 마음의 이상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사사로운 병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문제를 키운다.

◇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섰나

병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달려온 길이 보인다. 경제 제일주의와 편리성을 앞세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초경쟁 사회를 질주해 온 것이다. 그 청구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오남용, 세계 최고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튀르키예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은 항생제 사용량, 분노조절장애의 만연, 그리고 자살률 1위가 그 목록이다.

여기에 2011년 세상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빼놓을 수 없다. 1994년부터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공식 사망자만 1천843명, 정부가 피해를 인정한 사람은 6천48명에 이른다. 편리함을 택한 대가가 이렇게 컸다.

질병의 유형도 이 흐름을 따라 변해 왔다. 전염병에서 생활습관병으로, 다시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새로운 병도 태어난다. IT의 발달은 게임 중독과 가상·현실의 혼돈이라는 낯선 질환을 낳았고,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게임 이용 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새로운 질병으로 올렸다. 이렇게 보면 병은 원인 인자와 체질만이 아니라 환경, 곧 공기와 물과 식이, 교육과 가정과 국가가 함께 빚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음의 이상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사회적으로 대처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ption)이라 부른다. 지역사회의 활동과 모임, 서비스에 사람을 연결해 건강과 안녕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사회적·정서적 필요를 채우는 접근법이다. 영국은 국가보건서비스(NHS)를 중심으로 각 지방정부가 '링크 워커'라 불리는 연계 인력을 두어, 만성질환자나 정신건강 문제, 고독감을 겪는 이들을 지역 자원과 이어준다.

사회적 격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제도다.

핵심은 소통을 적극 권장하고 사회화를 북돋우는 데 있다. 공동체 안에서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구체적 방법이다. 축구와 테니스, 잔디볼링과 게이트볼, 파크골프 같은 스포츠, 원예와 노래교실, 봉사활동과 시민대학이 그 무대가 된다. 각자가 가진 재능을 나눌 기회를 열어주는 일도 포함된다. 사람을 홀로 두지 않고 관계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 그것이 처방의 뼈대다.

◇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건강하게 장수하는 길을 추적해온 연구가 이 대목에서 다시 울림을 준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팀은 1938년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과 보스턴 빈민가 소년 456명 등 724명을 뽑아, 80년이 넘도록 이들의 삶을 추적해 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재산이나 명예, 학벌보다 인간관계의 질이 노년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강하게 예측하는 요인이었다.

50세에 주변 관계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일수록 80대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했고, 원치 않는 고립에 놓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이 더 빨리 나빠졌다. 오래 건강하게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사귀었으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사회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는 데 있다.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는 확실한 비법이 없다. 다만 순환을 개선하는 운동, 호흡을 가다듬는 명상, 그리고 사회적 활동이 그 길을 넓혀준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이 사라지듯, 의식은 기억에 기반을 둔 우리 몸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 배려에서 시작되는 회복

코로나 사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 사건이었다. 100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희생됐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4천만~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인구 약 1천678만 명 가운데 742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그중 13만9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이러스는 수시로 유전자를 바꾸며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내고, 앞으로도 새로운 유행은 예고돼 있다.

그 앞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원칙은 의외로 소박하다. 배려하고 더불어 살며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손을 씻고 기침 예절을 지키는 일상의 습관조차 결국 타인을 향한 배려에서 나온다. 마음의 병을 사회의 병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회복의 실마리도 사회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16일 09시04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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