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 ‘돈벼락’ 맞은 나라들···호황 뒤에 숨은 두 얼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뜻밖의 경제적 혜택을 얻는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남미의 작은 원유 생산국 가이아나는 ‘석유 부자’가 됐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 제재를 틈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행 상품의 중계지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가파른 성장 이면엔 물가 상승, 불평등, 부동산 시장 과열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미·이란 전쟁에 ‘석유 부자’ 된 가이아나
지난 5월9일(현지시간)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에 지난해 개통된 바라트 자그데오 데메라라 강 다리 앞 아마조니아 몰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구 약 100만명의 남미 소국 가이아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석유 생산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규모 유전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현재 하루 약 9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산유국으로 탈바꿈했다. 생산량은 2030년 하루 17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뛰자 가이아나의 석유 수입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석유 수입은 약 65억달러로, 연초 전망치의 두 배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가이아나의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33%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을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도 약 3만2000달러까지 올라 중남미 최고 수준으로 진입했다.
수도 조지타운의 풍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거리에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차가 등장했고 고급 주택과 식당, 대형 음악축제, 호화 결혼식도 이어지고 있다. 석유 개발로 유입된 자금이 소비와 건설을 끌어올린 것이다.
가이아나는 미국에도 중요한 에너지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가이아나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에세키보 지역 앞바다에서 대규모 유전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도 에세키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지역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둘러싼 갈등도 한층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서반구의 에너지 자원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가이아나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러·우 전쟁 제재 피 ‘무역 허브’ 된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밖을 내다보고 있다. 뉴욕타임스 갈무리
인구 약 700만명의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맞았다. 키르기스스탄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1%에 달했다.
성장을 이끈 것은 서방의 대러 제재를 틈탄 ‘재수출’이다. 러시아가 직접 수입하기 어려워진 중국과 서방의 자동차·전자제품 등 각종 상품이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가는 물량이 급증했다. 소비재뿐 아니라 민군 겸용 장비까지 키르기스스탄을 경유하면서 교역 규모가 크게 늘었다.
러시아와 관세동맹으로 묶여 있어 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로 상품을 보낼 때 상대적으로 관세 장벽이 낮다는 점도 재수출 붐을 뒷받침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최근 4년간 키르기스스탄 경제성장의 30~40%가 재수출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최대 수출품인 금의 가격 상승도 성장세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가상자산·금융업 성장, 정부의 대규모 건설 투자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수도 비슈케크에서는 20층이 넘는 고층 건물과 대형 정부청사, 경기장 등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도로와 공항, 철도 등 인프라 건설도 활발하다. 과거 키르기스스탄 노동자들이 러시아 등 해외로 나가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건설 붐을 타고 남아시아 노동자들이 비슈케크의 건설 현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일부 개발업체가 아파트 계약금 대신 자동차나 가축을 받는 사례까지 등장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석유 대박·경제 호황의 이면···서민 삶은 제자리
가이아나에서는 석유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국민의 생활 여건 개선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이아나는 석유 생산국임에도 정유시설과 연료 인프라가 부족해 휘발유와 경유를 수입해야 한다. 올해 봄에는 일시적인 연료 부족까지 겪었다.
수도 조지타운은 하수 오염, 열악한 주거환경, 부족한 교통 인프라 등 기존 문제가 여전하다. 여기에 석유 개발을 등에 업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목조 건축물이 사라지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등 도시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키르기스스탄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 과열을 경고했고, 물가상승률은 11%까지 치솟았다. 식료품과 임대료 부담이 커지면서 경제성장의 혜택이 서민들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경제학자 아자마트 아케네예프는 “모든 성장과 배당금은 금융, 건설, 물류 분야 종사자들과 국가와 가까운 사람들, 즉 상당히 소수의 사람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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