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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1, 2026

‘율리시스의 계약’은 항상 좋을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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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율리시스와 세이렌’(1891). 오디세우스는 더 많은 지식을 약속하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려 자신을 돛대에 묶는다. 하지만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일이 그에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 위키미디어 코먼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율리시스와 세이렌’(1891). 오디세우스는 더 많은 지식을 약속하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려 자신을 돛대에 묶는다. 하지만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일이 그에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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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 쪽에 여러 소식이 있었습니다만, 큰 화젯거리 중 하나는 역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였던 것 같습니다. 소위 “용아맥”(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며 예매 경쟁에 암표까지 나와 영화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지요. 또 많은 분석 영상이나 글이 이미 나왔기에,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내용을 접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원작 ‘오디세이아’를 현대적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 여러 부분 손을 댑니다. 칼립소의 역할이나 아테나의 위치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지요. 서사시에서 신의 시대를 닫고 인간의 시대를 시작하는 지혜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영화에서 자신의 파괴가 불러온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심지어 자신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는 전상 군인으로 다시 그려집니다. 다시 세계대전의 위기가 넘실대는 지금, 적절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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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선 서사시,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에 집중하여 의료인문학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그토록 유명한 세이렌의 노래 장면인데요. 어느 쪽을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도 세이렌의 이야기는 들어보셨지요. 매우 아름답고 유혹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요정, 세이렌 자매의 섬을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통과해야 합니다. 그 노래를 듣는 이들은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그대로 죽고 말았다고 하지요.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조언을 따라, 동료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 노를 젓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꽁꽁 붙들어 맬 것을 명령합니다. 그래서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지만 살아남은 자가 됩니다.

영화에선 세이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배경음악으로만 들려옵니다. 반면 서사시에선 그들의 대사가 등장하지요. 세이렌은 오디세우스를 칭찬하고, 자신의 노래를 즐기면 더 유식해질 것이라며 자신들이 대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영화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디세우스가 즐거워하거나 환각에 빠지는 대신 비통해하는 모습을 담아내는데요. 원전에서도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들이 트로이아에서 모두가 겪은 고통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죠. 영화가 트라우마에 대한 회한과 용서받을 수 없음을 담고 있기에, 노래를 듣는 오디세우스의 절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의료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장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로부터 유래한 ‘율리시스의 계약’이라는 개념 때문입니다. 자신이 유혹에 빠져 그릇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사전에 계약을 설정한 오디세우스처럼, 미래에 잘못된 일을 벌이지 않도록 우리가 미리 제약이나 법칙을 설정하여 이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의지박약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 수칙처럼 누리집에는 돌아다니고 있습니다만, 크게는 헌법에서부터 작게는 학칙까지 다양한 수준의 율리시스의 계약이 이전부터 존재해왔지요.

그리고 의료인문학에서 율리시스의 계약의 한 사례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아직 말기에 연명 치료를 받기 전, 합리적으로 여러 가지를 따져 결정할 수 있을 때에 치료를 계속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놓는 것을 말하죠. 말기에는 여러 상황이 급박해지고, 환자는 의사 표명을 하기가 어려우며,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감정적 격랑으로 치우친 판단을 하기 쉽다 보니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리 결정해두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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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l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5)
오뒷세이아 l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5)

확장해 보면 치매 상황에서 어떤 치료나 돌봄을 받을지도 미리 상의해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되면 기억과 판단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치매의 특성상, 그 상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 미리 결정해두면 도움이 될 거라는 건데요. 물론, 아직 법적 효력을 가지는 사전 결정 장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가족과 이런 상황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 둘 수 있겠지요.

좋은 접근입니다. 하지만 다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하나 생각해볼 것이 떠오릅니다. 먼저 결정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일까요.

다시 세이렌 자매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세이렌은 약속합니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 “유식”해진다고요. 지금 표현으로 옮기면, 많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세이렌의 노래는 자신을 돛대에 묶어두는 제약을 걸어둠을 통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노래를 들은 것이 오디세우스에게 좋은 일이었을까요. 호기심에서 선택한 일이겠으나, 오히려 당장 세이렌에게 달려가지 못하는 그는 불행하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영화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오디세우스가 큰 비탄에 빠짐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세이렌의 노래는, 많이 아는 일은 항상 바람직한 일일까요.

우리의 돌봄 상황에 빗대 봅니다. 우리는 아직 병이 깊어지기 전에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따라서 먼저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율리시스의 계약은 우리가 제대로 결정하지 못할 때, 우리를 제약하여 바른 선택으로 이끌 겁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잘 알고 있을까요. 내가 병에 걸린 상태를,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경험되는지를, 내가 그 상황에서 다른 이들과 만들고 나누는 것을 아프기 전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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