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일할 수 없는 몸’? 산업화 시대의 주술이었다 [.txt]

광고
세상이 바뀌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과 제도들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나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마음도 커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사회 곳곳에서 흔하디 흔한 풍경이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세라 에프(F). 로즈의 ‘장애의 발명’에 따르면, 장애를 “비생산성, 시민으로서의 자격 미달, 공적 지원 또는 자선 지원에 대한 의존”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통념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시대의 조건들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하나의 발명”이라고 지은이는 명토 박는다. 여기서 말하는 ‘한 시대’는 184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다. 이 시기 노동시장은 고도화되었고, 장애는 “일할 수 없는 몸”과 이음동의어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장애인) 상당수”가 주류 노동시장과 가족경제 두 곳 모두에 통합되어 있었다.

1870년대까지도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 등에 설립된 ‘공립 백치수용소’의 목표는 교육생들을 “유용한 노동자로, 적어도 일상적 자기 관리에 도움이 덜 필요한 상태로 농촌의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대개의 가족은 단지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또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나 구빈원에 버리지 않았다.
광고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지나며 상황은 급변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가족구조의 변화 등과 함께 각종 공공정책이 부작용을 낳은 탓이다. 1870년대 이후 수용소의 목표는 가족으로의 복귀가 아닌 ‘보호수용’으로 가닥을 잡았다. 집 밖에서 임금노동을 하며 백치인 가족 구성원을 돌볼 수 없었던 탓이다. 1870년대 뉴욕주립백치수용소에 입소한 전체 교육생 중 4분의 1이 가족 해체를 경험했다. 이 시기 전국 각지의 수용소장들은 정신박약인 사람들이 수용시설 밖에서는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예산을 더 확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는 장애를 인식하는 하나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논의가 선천적 장애의 영역이었다면, 이 시기부터는 “후천적으로 다양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대폭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후천적 장애의 원인은 잦은 전쟁과 산업재해의 여파다.
광고
광고
20세기가 밝았지만, 장애인들은 임금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어둠을 겪어야만 했다. 고용주들은 “온전하고 완전히 기능하는 신체”를 가진 생산적인 노동자들만을 원했다. 하지만 생산적인 노동자들 역시 각종 산업재해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이 시기 세계 각지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은 “더욱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하며 장애를 걱정해야만 했다. 산업의 기초를 쌓던 시기, 손가락 하나를 잃는 정도의 경미한 장애가 오히려 “풍부한 현장 경험을 입증”한다고 했던 철도산업은, 1880년대에 이르자 경미한 신체 및 감각 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거부했다. 20세기가 되자 “해당 노선의 안정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대중의 우려를 핑계로 철도에서만 잔뼈가 굵은 “불구자들”을 내쳤다.
광고
설상가상,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미국 43개 주에서 제정된 ‘산재보상법’이었다. 산재보상법은 장애를 가지게 된 노동자들의 “작지만 소중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문제는 산재보상법에 보험사들과 고용주들이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배제하게 하는 경제적 유인책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용주들은 신체검사를 통해 장애 노동자 고용을 사전에 차단했다.

산업재해는 가뜩이나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가족의 삶 자체를 위협했지만, 고용주들은 ‘고용주책임제도’ 뒤로 숨었다. 기본적으로 고용주책임제도는 행정 제도가 아닌 사법 기반 제도였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소송하기도 어려웠고, 소송을 한들 고용주들은 ‘동료 책임, 기여 과실, 위험 감수’ 등 각종 구실을 앞세워 피해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법은 돈 앞에서 무력하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하며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를 도울 기회를 만들자는 시도도 있었다. 1936년 설립된 굿윌인더스트리가 대표적이다. 굿윌인더스트리는 “장애 노동자를 주류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고 자립하기 어렵게 만드는 산재보상법 등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궁극적으로는 장애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도덕적 미덕을 함양”시키고자 했다.
뜻이 높다고 결실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굿윌인더스트리마저 “성과급제 도입과 효율성 제고” 등 주류 고용주들의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굿윌인더스트리 등 보호작업장들은 단지 선의만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장애인들을 “주류 노동시장에서 밀어낸 급격한 경제적 변화, 그리고 잘못된 공공정책들로 인해 생겨난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편 지은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장애를 갖게 된 퇴역군인의 직업재활이 “장애의 복잡성과 가변성을 반영”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장애와 재활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광고

이 책을 번역하고 해제를 쓴 김승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일터’임을 분명히 한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기준 15살 이상 등록 장애인의 고용률은 34%로, 같은 기간 전체 인구의 고용률 64%와 견줘 현저히 낮다. 누가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식별’하고 그것을 따라 ‘고정관념’을 갖는 세상을 김 교수는 저어한다. ‘우리’와 ‘그들’이 분리되는 순간, ‘나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각심은 사라진다.
김 교수는 ‘그들’ 장애인은 “사회적 지위 상실 및 차별”이 일상화된 세계를 살며 사회적 폭력까지 맞닥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번역자가 해제에서 밝혔듯, 세라 로즈의 ‘장애의 역사’와 겹쳐 읽으면 장애에 대한, 아니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꽤 넓은 안목과 태도를 갖출 수 있다.
김 교수는 해제의 마지막 대목에 이렇게 썼다. “현실에 겹겹이 누적되어 있는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볼 때, 앞선 시대의 시행착오에서 배우지 않은 채 손쉬운 해결책을 찾을 때, 장애는 낙인으로 다시 한번 발명될 것이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