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암만 늘려도, 거기까지 못가요…집 문턱도 버거운 노인들

거둥 불편해 집에 고립되는 노인들
시설 5년새 15% 늘어도 그림의떡
고령자 가구 38%가 1인 가구 현실
전문가 “이동지원서비스 확대 시급”
“그냥 집에만 있으니까 마음이 우울해서 아무것도 재미가 없어. 사는 것 같지가 않아.”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빌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계단은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한 층을 오르는 데도 발을 크게 내디뎌야 했다. 이곳에 혼자 사는 임정숙 씨(75)는 불편한 다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이날은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뒤 맞은 두 번째 노인의 날(10월 2일)이었다. 하지만 거둥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집 밖 세상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4일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202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650만7000가구 중 1인 가구가 247만6000가구(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매일경제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 3명을 만나 일상을 들여다본 결과 노인복지시설과 지원은 늘고 있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것조차 힘든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복지의 문턱이 높았다.
6년 전부터 고관절 상태가 악화된 임씨는 바닥에 앉으면 통증이 심해 집에서도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생활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갈수록 버거워지자 한 달 전 같은 건물 4층에서 2층으로 이사했다. 예전에는 매일 사우나에 갈 정도로 외출을 즐겼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것이 전부다.
외출이 줄면서 친구들과의 교류도 사라졌다. 임씨는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다 보니 전화 연락마저 다 끊겼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그림을 배우거나 스포츠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임씨는 “그림 그리기는 오래 앉아 있기 힘들고, 스포츠댄스는 절뚝거리는 모습을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망설여진다”고 했다.
한때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던 김근수 씨(87)도 이제는 통증 때문에 병원 진료 외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장구를 배우고 싶어 복지관을 두 차례 찾아갔지만, 다리 통증 탓에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 결국 포기했다. 김씨는 “하루 대부분을 혼자 집에 가만히 있으니 우울한 건 말도 못한다”며 “여행을 가보고 싶은데 가서 아플까 봐 생각만 한다”고 털어놨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고령자는 43.4%로 전체 인구보다 5.1%포인트 높았다.
노인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복지 기반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복지시설은 9만7232개소로 2020년보다 17.8% 증가했다. 이 중 노인의 여가·문화 사회활동의 거점인 노인복지관도 같은 기간 398개소에서 459개소로 15.3% 늘어났다. 서울시 역시 노인종합복지관 운영 예산을 2024년 444억원에서 올해 487억원으로 약 10% 늘렸다.
문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이런 시설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산악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복지관 노래교실에도 다녔던 홍성옥 씨(77) 역시 지금은 다리 통증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외출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사는 홍씨는 “계단을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며 “복지관 노래교실에 다시 다니고 싶지만 가까운 곳조차 가기가 쉽지 않고 먼 곳은 사실상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고령층의 여가를 가로막는 요인도 돈에서 건강 문제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202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령자가 여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은 비율이 10년 전보다 9.5%포인트 낮아진 반면, ‘건강과 체력 문제’를 꼽은 비율은 5%포인트 증가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노인의 외출을 돕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든 노인이 지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기존 노인돌봄사업을 통합·개편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통해 외출동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은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또는 기초연금 수급자 중 독거·조손가구 등 돌봄이 필요한 노인으로 제한된다.
서울시도 병원 방문 등을 돕는 건강동행 서비스를 시간당 6000원에 제공하고 있지만, 복지관 이용이나 취미·여가활동 등 일상적인 사회활동을 위한 이동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이나 장애 여부뿐 아니라 실제 이동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복지관 이용 실태조사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인이 많이 포착되기 때문에 실제 복지관을 이용하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노인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며 “장애 판정이나 취약계층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 서비스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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