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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5, 2026

[NGO 현장]‘죽음’과 ‘기억’으로 바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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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죽음을 겪은 유가족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특수한 역할을 해온 ‘유가족’이라는 존재가 개인과 사회의 경계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어야 할지 나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되묻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십년 전쯤 보았던 영화 <송환>의 ‘장기수’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유가족들이 물리적 감옥에 갇힌 것도 아니고, 대단한 신념도, 당연히 죄를 지은 것도 없지만, 평생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가슴속에서 부르짖는 고통과 자책감으로, 다른 인생으로 전향도 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는 점이 조금은 닮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소련은 망하고 북한의 세습통치는 강화되고 국제사회가 이념보다는 다른 갈등으로 전환됐다. 자본주의나 폭력적인 전향 강요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겠으나, 수십년 전 꿈꿨던 세상이 달라졌음에도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냉전을 모르는 내가 이들을 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유가족의 아픔의 골이 너무나 깊어서 함께하는 활동가와 시민들이 경계를 허물고 온전히 다가오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했다.

가령, 윤석열의 내란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민주화 열사들의 ‘유지’는 오늘의 시민사회에서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냉전 종식 이후에도 전향을 거부하는 장기수에 대한 나의 의문 부호처럼, 수십 년이 지나면 이 사회도 점점 더 유가족을 이해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세월호, 이태원, 산업재해 희생자 등 우리가 빚진 죽음들이 있다면, 적어도 그 기억이 시민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의미 있게 남도록 만들어야 할 텐데. 죽음이라는 기억을 매개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까지 조금은 책임지고 싶다.

방송 현장의 문제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난 나의 친형 이한빛 PD의 10주기를 앞둔 주된 마음은 ‘경계’이다. 고인의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그의 ‘과거’를 왜곡하지 않으려는 경계의 마음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건, 개인에 대한 추모가 아닌 방송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죽음’을 기억하는 일을 중심에 놓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족과 친구들이 기억하고 싶은 고인은 조금씩 내려놓고, 앞으로는 방송업계의 종사자들 면면이 한빛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왜곡하지 않겠다는 건 고인이 원했던 세상의 모습을 오늘의 나에게 맞춰 왜곡하는 행동에 대한 경계이다.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 위주로 남으니, 고인의 언어는 그의 옛 동료, 가족 등으로부터 전승된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기억하는 활동에서 본질의 왜곡은 과거가 갖는 의미마저도 퇴색시킬 수 있다.

전태일·박종철·이한열 열사가 꿈꿨던 세상은 무엇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 정치를 바랐을까. 사회적 죽음을 계기로 막막했던 세상이 조금씩 바뀌었기에 산 자들의 운동이 죽음에 기대어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정작 유가족이든 시민이든 죽음을 잘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토론은 부족했던 것 같다. 슬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세상을 대신 만들고자 했던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기에, 이제라도 논의를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더욱 성숙하게 그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26일을 기점으로, 개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 고인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으로 전환하고 형을 방송업계의 얼굴들로 보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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