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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6, 2026

호르무즈 파병, 명분도 실리도 없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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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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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최근 청와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검토하고, 나아가 이미 현지조사단 파견 등 실무적 준비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처음에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번 정권은 아무리 (진보라기보다는) 중도 보수 성향이라 하더라도, 집권의 가장 큰 명분은, 전쟁 도발까지 서슴지 않았던 내란 세력의 진압과 민주 질서의 복구였다. 그런 이재명 정권이 윤석열의 내란 세력과 본질이 흡사한 미국·이스라엘 극우 정권의 불법 침략 전쟁에 한국을 연루시키고 다수의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백해무익한 파병을 감행한다면 이는 최악의 자기 배신이자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좋은 침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태껏 한국이 불행히도 연루됐던 미국의 침략 전쟁들은 적어도 미국 내부의 법적 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 비록 미 행정부가 왜곡해서 보고한 ‘통킹만 사건’에 의거한 것이었지만, 형식적으로는 1964년 8월7일 미 의회 상·하원 공동결의안을 통해 군사력 사용이 승인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역시 온갖 거짓에 의거한 제국주의 침략의 전형이었으나, 형식상으로는 미 상·하원에서 무력사용 권한 위임안이 통과됐다. 즉, 한국이 파병을 통해 연루된 과거의 가장 대표적인 두 침략은 적어도 미국 내 삼권분립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감행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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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는 최소한의 제도적 정당성마저도 없다. 베트남·이라크 전쟁이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 전쟁이었다면, 이번 이란 침략은 국제법은 물론 미국의 국내법마저 무시한 위헌적 독주에 가깝다. 미 의회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란 전쟁 수행을 승인한 바가 없으며,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군사행동을 감행함으로써 헌법상 권한을 넘어선 월권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상당수 미국 법률가들의 해석이다. 즉, 트럼프의 이란 침공은 미국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정부의 초법적 도발에 다름 아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상황상 막지 못했을 뿐 찬동한 적도 없는 미 행정부의 폭거를, 민주 질서 회복을 집권 명분으로 삼아온 한국 대통령이 앞장서서 거들어준다면 이 얼마나 심각한 자가당착인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이 한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했듯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트럼프 정권의 지지율은 현재 33% 정도에 불과하며, 이란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 역시 약 31%에 그친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사실상 수세에 몰리면서 전쟁과 트럼프의 인기는 동반 하락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든 그 후임자든 이란과의 타협을 모색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미 몇차례 나왔던 타협안만 보더라도 그 결과가 이란 쪽에 훨씬 유리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란의 정권 교체, 중동 내 저항 세력 지원 중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등은 이번 침공의 목표였지만 단 하나도 달성된 게 없다. 반면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통제와 지역 내 미군 기지 공격 등을 통해 미군 시설 파괴부터 유가 상승 유도를 통한 미국 등 서방 경제에의 압박까지, 자신들의 전술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베트남이나 이라크 전쟁도 오늘날 미국에서 다수에게 ‘오류’ 내지 ‘범죄’로 인식되는 판국에, 미국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는 이 이란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마도 “미 제국 몰락의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이 패배해 가는 침략 전쟁을 한국이 도울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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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권이 호르무즈해협 파병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경우, 그 결과는 대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가히 재앙적일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정권의 지지 기반이 심각하게 분열되거나 심지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내부에서도 현재 파병 반대 여론이 55%에 이르는데, 만에 하나 파병 후 2004년 김선일 피랍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거나 파병 군인의 인명 피해가 난다면 이재명 정권은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당해 철저히 고립될 것이다. 그렇다고 강경 보수 지지층이 파병 결정 하나로 이재명 정권을 지지해 줄 리도 만무하다. 결국, 파병 결정으로 정권은 허공에 뜨는 신세가 될 것이고, 다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다시 집권할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국외적 재앙은 어쩌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란을 적으로 돌려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을 더욱더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문제지만, 이란이 결코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란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고, 북한은 이란과 오랫동안 무기 거래 등을 이어온 나라다. 대이란 전쟁에 한국이 사실상 참전하는 순간, 중국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한국이 ‘균형 외교’를 통해 양쪽에서 실리를 챙길 기회를 완전히 상실한다. 호르무즈에 파병한 한국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졸’로 전락할 것이다. 결국 한국은 균형 외교가 아닌 대미 종속 외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관계 강화’ 등의 카드마저 잃은 한국은 얼마든지 수탈해도 좋은 ‘호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미국의 통상 압박부터 강탈적인 투자 강요까지,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온갖 폐단들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 대북 관계 개선 또한 파병 순간 아예 포기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의 ‘졸’에 불과한 나라와 대화하느니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설령 파병한다 한들, 향후 대북 대화에서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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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안은, 현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유폐무리(有弊無利) 결정이 될 것이다. 내부에서는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한국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미국 국내법마저 위반하며 침략 전쟁을 벌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위해 한국이 구원투수로 나선다면, 이 국가적 명분의 상실은 그 어떤 ‘케이(K)-컬처’의 위상으로도 상쇄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피땀으로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이 졸지에 국제 범죄행위의 종범국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파병 검토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의 부끄러움을 후대에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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