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젓가락 ‘한벌 식사’는 한국인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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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숟가락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가 추가되어 있지만 원래 ‘수저’는 한자 숟가락 시(匙)와 젓가락 저(箸)로 이루어진 ‘시저’가 변한 말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가리킨다. 음식고고학자 오승환 박사가 쓴 ‘수저 인문학’은 그러니까 숟가락과 젓가락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책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같이 써서 식사를 하는 것은 한국인뿐이다. 젓가락이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공통된 식사 도구인 데 비해 숟가락을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물론 숟가락 역시 젓가락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비롯돼 한반도와 일본에 전래된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각각 우리의 숟가락에 해당하는 탕츠와 렌게는 숟가락이라기보다는 국자에 더 가까운 것이고 식사의 보조 도구 역할을 할 뿐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숟가락은 서양의 식탁에도 흔히 오르는 만큼 보편적이고 젓가락보다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숟가락 모양 도구는 러시아 쿠르스크의 아브디보 유적에서 발굴된 매머드 상아 재질 유물로, 2만~2만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 물건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숟가락이 실제 식사 도구로 필요해진 것은 약 1만년 전 신석기시대로, 인류가 흙으로 그릇을 빚어 음식을 끓여 먹기 시작하면서였다. 약 8천년 전 세르비아 유적에서는 초기 신석기시대에 소뼈로 만든 작은 숟가락이 여럿 나왔는데, 이유식 용도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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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일상의 식사 도구로 정착시킨 것은 고대 중국이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인 7천년~5천년 전의 여러 유적에서 옥이나 뼈로 만든 숟가락 또는 구둣주걱 모양 유물이 나왔지만 이것들은 밥을 먹는 용도는 아니었다. 기원전 771년 오랑캐의 침입으로 주나라가 뤄양(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왕실과 지역의 제후들이 밥이나 죽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나라(기원전 202년~서기 220년) 때에는 숟가락이 일상 도구로 대중화했고,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오면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 ‘한벌 수저’ 식사법이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난징을 수도로 건국한 명나라 지배층이 북쪽 베이징으로 천도한 뒤에도 젓가락만 사용하는 강남 식사법을 고집한 결과, 천년 넘게 지켜온 숟가락이 식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명의 뒤를 이은 청나라 왕실은 추운 북방 출신이어서 따뜻한 국물 요리가 필요했고, 숟가락을 대신해 도자기로 만든 국자 모양 탕츠가 이때 ‘재발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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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동물 뼈로 만든 숟가락 모양 도구가 나왔지만, 크기와 형태로 보아 개인용 식사 도구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에 진출해 세운 낙랑군의 지배층 무덤에서는 칠기 숟가락들이 나왔지만, 고조선 유민들이 숟가락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지은이는 적어도 삼국시대 초기까지 우리 밥상 위에는 숟가락이 올라오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숟가락은 필요에 따라 전 세계 어디서나 선사시대부터 자생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젓가락은 중국 상나라에서 발명한 매우 독창적인 식사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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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계에서는 기원전 5천년~3천년 무렵 유적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뼈 도구를 젓가락의 시초라 주장하지만, 음식 문화 발달 과정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후속 젓가락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그로부터 한참 뒤인 상나라(기원전 1600년께~기원전 1046년께) 시대에 와서야 그것도 식사 도구가 아닌 제사 도구로서 젓가락이 처음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휘어서 만든 집게가 젓가락의 기원이라는 설명은 흥미롭다. 젓가락질에 서툰 아이들을 위한 ‘에디슨 젓가락’과 비슷하게 꼭대기가 붙어 있는 이 도구가 젓가락의 시초라는 사실은 한자 ‘젓가락 저’ 자에 대나무 죽(竹) 부수가 들어 있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젓가락은 한동안 제사 도구로만 쓰이다가 춘추전국시대에는 왕과 귀족들을 거쳐 한나라에 이르면 모든 계층의 밥상에 오르게 되었다. 젓가락의 유행 비결로 지은이는 위생과 편리함을 드는데, 한의 왕 경제는 “교양 있는 사람만이 젓가락을 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숟가락 모양 유물이 한반도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지만 젓가락은 삼국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젓가락은 물론 숟가락도 없었던 시절에는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조개 껍데기나 나뭇잎 같은 다른 도구를 썼을 수도 있지만,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수식(手食)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식사 방식이고, 실제로 지금도 세계 인구의 40%는 맨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

삼국시대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한벌’로는 아니었다. 수저를 함께 쓰게 된 것은 당나라의 식사법이 한반도로 건너온 통일신라시대에 와서였다. 그러나 통일신라는 물론 고려시대 무덤에서도 수저가 한벌로 나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 사실을 근거로 고려 사람들이 숟가락만 쓰고 젓가락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놋숟가락에 나무젓가락이 한 쌍을 이루었는데 썩기 쉬운 나무의 특성상 유물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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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에서 그릇을 손으로 들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이 정착되면서 숟가락이 점차 자취를 감춘 반면, 조선에서 숟가락이 살아남은 까닭은 크게 두가지.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는 ‘예기’의 가르침을 좇으려는 소중화의식, 그리고 17세기 한반도를 강타한 소빙하기에 뜨거운 국물 음식을 찾게 된 기후적 요인이 그것이다. 어쨌든 물김치와 찌개 및 국, 그리고 온갖 국밥과 비빔밥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의 발달에 숟가락이라는 도구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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