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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7, 2026

[홀리한 구석] 요거트의 나라 그리스, 요거트 안 먹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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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트 브랜드 파예는 그릭요거트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LF제공

요거트 브랜드 파예는 그릭요거트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LF제공

[홀리한 구석] 요거트의 나라 그리스, 요거트 안 먹는 날도 있다

믿음이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들. 먹고 마시며 다니다가 마주치는 뜻밖의 성스러움.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에 숨어 있는 작고 거룩한 순간들을 만나봅니다.

요즘 그릭요거트의 인기가 아주 높아졌어요. 편의점이나 마트에는 다양한 제품이 있고 그릭요거트만 전문으로 파는 매장도 꽤 있어요. 꾸덕한 질감 덕분에 식사 대용으로도 활용되지요.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그릭요거트 시장은 2023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3년 사이에 223% 성장했습니다.

그릭요거트, 즉 그리스식 요거트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잠시 의문이 들지 않나요. 예전엔 요거트하면 불가리아를 떠올렸어요. 부드럽게 마시는 유산균 음료, 장건강에 좋다면서요. 불가리아의 장수비결이 요거트에 있다는 이야기도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요거트의 대표적인 수식어가 불가리아에서 그리스로 바뀐 걸까요.

먼저, 불가리아가 요거트로 유명해진 데는 과학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1905년 불가리아 과학자 스타멘 그리고로프가 요거트 발효에 관여하는 유산균을 발견했어요. 이 균에는 불가리아의 이름을 딴 ‘불가리쿠스’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이후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가 불가리아 농민들의 장수와 요거트 섭취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요거트는 세계적인 건강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는 어떨까요. 그리스 역시 오래전부터 요거트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옥시갈라’라는 발효유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다만 요거트가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요거트라는 말 자체도 튀르키에어에서 유래했으니까요.

오늘날 인기를 끄는 그릭요거트의 특징은 만드는 방식에 있습니다.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요거트에서 유청을 걸러내 수분을 줄이는 것이지요. 그렇게 만들면 훨씬 진하고 꾸덕해집니다. 같은 양이라면 일반 요거트보다 단백질도 많이 함유돼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이를 ‘걸러낸 요거트’라는 뜻의 ‘스트랑기스토’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런 농축 발효유를 그리스에서만 만들어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지중해와 서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비슷한 음식을 먹어 왔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음식을 세계적인 인기 상품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주역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유제품 기업 파예(Fage)입니다.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은 이 회사는 아테네의 작은 유제품 가게에서 출발했습니다. 회사 이름부터 재미있습니다. ‘파예’는 그리스어로 ‘먹어라’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창업자의 두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며 사용한 ‘필리포우 형제 유제품 회사’라는 그리스어 명칭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기도 합니다. 1975년 파예는 커다란 용기에서 덜어 팔던 요거트를 작은 밀봉 용기에 담고 브랜드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음식을 현대적인 브랜드 상품으로 바꾼 것이지요.

이후 파예는 해외로 눈을 돌렸고 영국과 이탈리아를 거쳐 1998년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초창기엔 그리스에서 만든 요거트를 비행기에 실어 뉴욕까지 운송했지요. 파예의 설명에 따르면 완제품 1㎏을 만드는데 우유가 약 4ℓ들어간다고 합니다. 꾸덕한 질감을 얻기 위해 그만큼 우유를 농축하는 것이지요. 파예를 수입하는 LF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실 최현진 매니저는 “그릭요거트는 독특한 식감과 풍부한 단백질 덕분에 세계적인 인기식품으로 성장했다”면서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그릭요거트의 매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 파로스섬 알리키의 한 식당에 차려진 2인용 부활절 식탁. 요거트로 만든 전통 소스 차지키와 양상추 샐러드, 꼬치에 구운 양고기, 와인 등이 놓여 있다.  위키피디아

그리스 파로스섬 알리키의 한 식당에 차려진 2인용 부활절 식탁. 요거트로 만든 전통 소스 차지키와 양상추 샐러드, 꼬치에 구운 양고기, 와인 등이 놓여 있다. 위키피디아

그릭 요거트를 세계에 알린 파예의 이름이 ‘먹어라’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요거트를 먹지 않는 기간을 지키는 오랜 종교적 전통도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정교회의 금식기간입니다. 그리스정교회는 성탄절을 앞둔 11월15일부터 12월24일까지 40일의 금식기간을 지킵니다. 부활절을 앞두고도 긴 금식기간이 있습니다. 금식이라고 해서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 규율에 따라 육류와 달걀, 우유, 치즈 같은 동물성 식품을 삼가는 것입니다. 요거트도 예외가 아니고요.

이런 금식 전통은 한국정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정교회 대교구는 홈페이지에서 금식의 강도를 네 단계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고기부터 유제품과 달걀, 생선, 기름과 포도주까지 단계적으로 금식대상을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절기와 날짜에 따라 적용되는 규율도 달라집니다. 올해 2월15일자 한국정교회 주보에는 한 주 동안 육류를 금하고 생선과 달걀, 유제품은 허용한다는 안내가 실렸습니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예외도 있습니다. 마침 설 연휴와 겹치면서 2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은 금식을 해제한다고 안내한 것입니다. 오래된 종교적 전통이 한국의 명절 앞에서 잠시 융통성을 발휘한 셈이지요.

정교회에서 음식을 구분해 금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제품이 몸에 해롭거나 부정한 음식이어서가 아닙니다. 금식은 식욕을 절제하고 기도와 나눔에 집중하기 위한 종교적 실천입니다. 평소 즐기던 음식을 잠시 멀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자는 것이지요. 무엇을 먹지 않느냐보다 왜 먹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랜 금식 전통은 그리스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콩 수프 파솔라다, 쌀과 허브를 포도잎에 싼 돌마데스, 문어와 오징어 요리가 대표적인 그리스요리로 자리 잡은 데도 이런 전통이 한몫했습니다. 그리스 식당에서는 지금도 금식 기간에 맞춘 메뉴를 따로 선보입니다.

금식 기간에는 삼가야 하지만 축제 때가 되면 요거트는 다시 식탁에 오릅니다. 특히 부활절에는 구운 양고기에 요거트를 곁들여 먹거나 요거트로 만든 전통 소스 차지키를 함께 즐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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