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어, 보잘것없는 약속에 기댈 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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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같은 집을 일곱번째 나온 밤. 짐을 챙기는 손놀림이 능숙해졌다. 질린 표정의 상대가 희미하게 묻는다. “정말 이대로 나갈 거야?” 나는 침묵한다. 이 집과 관계, 당신을 벗어나고 싶다는 외침을 단호한 몸놀림으로 전달하고 있으니까. 현관문을 닫는다. 영영 사라지기로 마음먹은 순간, 당신도 내게서 사라진다. 우리는 서로의 ‘유령’이 된다. 얼마 안 가 당신에게 연락이 온다. 원망스러운 감정이 가라앉은 자리에 다정했던 잔상이 떠오른다. 지루한 일상과 지긋지긋한 관계 중, 우리는 미련하게 후자를 택하기로 한다. 아직 지긋지긋함이 조금 더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얼핏 떠나는 나를 당신이 붙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외로운 어느 밤에 당신은 데이팅 앱을 헤매다가 욕망을 투사할 대상을 만났다. 그게 나였다. 환상 속 나. 이 관계 속에서 이미 내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순간, 안타깝게도 나 역시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도미닉 페트먼은 ‘고스팅’(부제: 유령화 시대의 사랑)에서 이런 상황을 뼈아프게 말한다. 사랑받는 대상은 언제나 실재이면서 부재이며,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투사한다.” 다시 짐을 챙겨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행위가 멈추는 어느 날,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유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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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랑이 “19세기 중반의 가속 이후로 지금껏 점점 더 소외되는 세계의 보상물”이라며, “연애 상대는 이전 시대의 분산된 공동체가 하던 역할의 공백을 메워주는 존재”가 되었노라 말한다. 종교와 미래에 대한 굳은 약속이 사라진 세계에서, 개인은 오직 낭만적 사랑의 대상인 한 사람에게 기대려 한다. 과거 공동체 안에서 여러 존재가 서로 돌보던 방식을 좁은 관계로 제한하기에 “누가 참여하든 사랑 이야기의 도식은 비슷하다.” 책에 담긴 건조한 문장 속에서 나는 함께하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이유를, 사랑이 왜 이토록 끔찍한 시간을 만들기도 하는지 이해할 단서를 찾는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외로움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다는 문장을 곱씹으며, 서로를 오해하며 만나고, 이별로 서로의 유령이 되길 반복한 패턴을 추적한다.
그럼, 다 부질없는가. 저자는 비록 어떤 굴절로 시작된 관계일지라도, 그 속에서 우리가 시도하는 친밀감의 실천을 믿는다. 우리는 그저 함께하는 법을 계속 배우고 상상하며 실천할 수 있다고. 세상이 거대 자본을 동원하며 기만적 친밀감을 들이대도, 그 내용을 채우는 건 우리의 작은 몸짓과 대화라고. 그리고 어떤 관계에서는 기꺼이 먼저 떠나는 일이 옳을 수도 있다며, 단절의 윤리 역시 소개한다. 설명하지 않고 유령이 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순간도 있다고. 그러므로 이 책은 끝내 “(미)결론”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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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푼 자리에 당신과 나란히 앉는다. 여전히 어긋나고 오해하며 작은 약속을 한다. “싸울 때 욕하면 무조건 헤어지기로 해.”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서로를 함부로 해치지 않겠다는 보잘것없는 약속을 영원처럼 내민다. 그때는 꼭 헤어지자. 이것은 서로의 유령이 되기를 잠시 미룬, 우리의 세번째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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