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것을 깨닫게 한 결정적 계기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현실에서는 누구나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힘든 일이 있을 겁니다. 각자 그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한 방법 또한 다를 텐데요. 상당수는 해답을 못 찾아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여책저책은 고된 현실을 여행이라는 힘으로 이겨낸 작가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윤숙 작가는 자신의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에서 상실의 슬픔을 안고 떠난 브라질에서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여행이 고통을 없애주진 않지만 다시 살아갈 마음을 회복시켜준다는 의미를 함께 들어봅니다.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
이윤숙 ㅣ 미다스북스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뒤 느끼는 상실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일상은 이전과 같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은 자꾸 닫혔다.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만 홀로 멈춰 있는 듯했다. 그러다 받아든 한 장의 초대장에 낯선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는 이윤숙 작가가 브라질로 떠나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땅에 서면, 오래 멈춰 있던 마음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작가는 그 시간을 억지로 떨쳐내려 하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작가가 처음 마주한 것은 거대한 풍경보다 사람들의 태도였다. 느긋하고 다정한 일상, 서로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는 관계, 조금 늦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와이파이 연결이 늦어져도 초조해하지 않고, 약속한 시간이 조금 지나도 여유롭게 기다리는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금 곱씹었다.
브라질의 풍경은 작가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카피바라는 서두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고, 늦게 찾아온 노을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때 돌을 깎아내던 채석장은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살아났고, 꽃으로 채워진 거리에는 일상의 온기가 흘렀다.
작가는 이 풍경들을 바라보며 삶을 다시 돌아봤다. 깎여나간 자리에서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고,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으며, 잠시 멈춰 있는 시간 역시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카피바라는 책 전체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작가는 그 앞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를 존중하는 것 역시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이 책의 여행은 빠르게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과 거리가 멀다.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바라보고, 음식과 문화를 경험하면서 그곳의 리듬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마음의 속도를 되찾는다.
책은 ‘낯선 땅을 향하다’ ‘다른 리듬 속에서 살아가다’ ‘서로를 지나 돌아오다’ 등 세 부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브라질이라는 낯선 공간을 향하지만 여행이 깊어질수록 시선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나아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나 식탁에서 나누는 음식과 웃음,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주고받는 순간들 속에서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다시 발견한다. 결국 자신을 회복시키는 힘 역시 사람에게서 온다는 사실이다.
여행은 상실을 지워주지 않는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준다. 작가가 브라질에서 경험한 회복 역시 그런 것이었다.
작가는 “같은 풍경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말한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슬픔이 가득했던 풍경이 돌아올 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끝처럼 느껴졌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책 속 ‘마음이 머무는 자리’와 ‘마음의 정원 노트’는 이 여정을 독자의 삶으로 이어준다. 브라질에서 작가가 던졌던 질문을 독자 역시 자신의 마음에 건네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여행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에서 브라질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상실 이후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공간으로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자신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 마음의 정원으로 남는다.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삶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삶. 이 책은 그 길의 끝에서가 아닌 다시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필요한 따뜻한 문장들을 건넨다. 결국 떠난 것은 여행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다시 살아가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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