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자 팔 때마다 손해”···‘명품 포도’ 출하 앞둔 김천 농가 ‘한숨’
지난달 30일 경북 김천시 양천동의 한 포도밭에서 유창우씨(69)가 봉지를 벗긴 샤인머스캣 송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현수 기자
“한 상자를 팔 때마다 2000원씩 손해인데, 우리 같은 노인보다 젊은 애들이 걱정이지 뭐.”
경북 김천시 양천동의 한 포도밭 주인인 유창우씨(69)가 지난달 30일 샤인머스캣 송이에 씌워놓은 봉지를 벗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가 건넨 포도를 먹어보니 제법 달았다. 그는 “이것도 아직 덜 익었다”며 “10월 중순은 돼야 당도가 더 오르고 식감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김천지역 샤인머스캣은 대부분 노지에서 재배돼 10월 중순쯤 수확 적기를 맞는다.
수확을 앞뒀지만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 샤인머스캣 한 송이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3000원이다. 2㎏ 한 상자에 세 송이가 들어가 적어도 1만원은 받아야 본전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유씨가 받던 상자 가격은 3년 전 6만원에서 지난해 3만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그마저도 올해는 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한때 ‘명품 과일’로 불렸던 샤인머스캣 출하를 앞두고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공급과잉에 덜 익은 과실 유통으로 수요마저 줄면서 판매가격이 생산비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농넷을 보면,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샤인머스캣 상품 2㎏ 상자의 평균가격은 6199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8468원)보다 27% 낮았고, 최근 5년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 평년가격보다는 44% 낮았다. 이날 집계된 평균가격은 6222원에 불과했다.
김천시 관계자들이 지역 포도농가를 대상으로 고품질 샤인머스캣 생산과 적기 출하를 위한 현장 지도를 하고 있다. 김천시 제공
샤인머스캣 가격 급락에는 단기간에 급증한 재배면적 영향이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전국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은 2016년 278㏊에서 2023년 6458㏊로 23배 넘게 증가했다.
유씨는 “초기에는 기존 포도보다 가격이 3배 높고 수확량도 2배 많아 같은 면적에서 6배 가까운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며 “문제는 ‘돈이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재배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품질 저하에 따른 수요 감축도 가격을 끌어내렸다. 샤인머스캣은 수확한 뒤에는 당도가 오르지 않는 비후숙 과일이다. 노지 재배 물량은 통상 10월 중순 이후 수확해야 당도와 식감이 충분히 올라오지만, 일부 농가는 추석 대목이나 출하량이 적은 8∼9월을 겨냥해 수확을 앞당겼다.
김천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김모씨(60대)는 “당도가 17브릭스는 돼야 제맛이 나는데, 10브릭스밖에 안 되는 과실도 시장에 나온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가격 약세가 이어지면서 재배면적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북지역 재배면적은 2016년 100㏊에서 2023년 4774㏊로 47배 넘게 늘었지만 2024년 4736㏊, 지난해 4693㏊로 줄었다.
그러나 품종 전환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포도나무를 새로 심으면 안정적인 수확량을 내기까지 3년 이상 걸린다. 묘목 비용과 수확하지 못하는 기간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유씨는 “나처럼 곧 농사를 그만둘 고령 농민은 그동안 번 돈으로 버티다 접을 수 있다”며 “시설과 묘목에 투자한 귀농 청년들은 가격이 떨어져도 당장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천시는 올해부터 일정한 당도와 상품성 기준을 충족한 농가에 인증표시를 부여하는 ‘시장 품질인증제’를 도입했다. 내년에는 10월 출하용 노지 포도에 항균 봉지 구입비를 지원해 조기 수확을 줄일 계획이다.
김천시 관계자는 “샤인머스캣에 편중된 재배 구조를 바꾸기 위해 국내 육성 신품종 시범 재배와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품종을 다양화해 출하 시기를 분산하고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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