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깜깜한 밤하늘이 감춘 것
밤하늘은 왜 깜깜할까. 우주가 끝없이 넓고 영원하며 별이 고르게 흩어져 있다면, 어느 방향을 보든 시선은 결국 별에 닿을 테니 밤하늘은 한낮처럼 환해야 한다. 이 오랜 역설의 답은 우주에 시작이 있었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데 있다. 깜깜한 밤하늘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우주의 역사를 말해 주는 증거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는 더 큰 비밀이 있다. 별과 행성,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처럼 인간이 아는 물질은 우주의 약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우주 팽창을 가속하는 ‘암흑에너지’와 빛을 내지 않는 ‘암흑물질’이다.
우주 물질의 약 8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은 그 중력으로 초기 우주의 미세한 밀도 차이를 키워 은하와 별이 태어날 뼈대를 만들었다. 암흑물질이 없었다면 지구도,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암흑물질은 물리학의 ‘경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19세기 천문학자들은 천왕성 궤도의 어긋남을 확인하고는, 보이지 않는 행성을 계산으로 예측해 해왕성을 찾아냈다. 그러나 수성 궤도의 어긋남을 설명하려던 가상의 행성 ‘불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그 수수께끼를 푼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었다.
암흑물질도 이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입자일 수도, 중력 이론을 고쳐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할 발견이다.
당장 쓸모없는 연구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발견된 전자가 오늘날 반도체의 토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주탐사와 인공지능(AI)의 시대인 지금, 거대 망원경이 쏟아내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AI는 희미한 신호를 골라낸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떤 어긋남이 발견의 실마리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암흑물질 연구는 그 ‘질문하는 힘’의 최전선이다.
세계는 지하 검출기와 입자가속기, 중력렌즈 관측,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암흑물질을 쫓고 있다. 어느 한 가지 방법만으로 정답을 얻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얻은 결과가 맞물릴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확신도 깊어진다.
이 가운데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밤하늘의 배경보다 수천 배 어두운 빛을 잡는 ‘초극미광’ 관측이다. 최근 한국천문연구원은 초극미광 전용 망원경을 개발해 남미 국가 칠레에 설치했다.
또 국내 연구진은 은하 충돌로 떨어져 나와 은하단 안을 떠도는 별들의 희미한 빛이 암흑물질의 분포를 충실히 따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보이지 않는 바람을 읽듯, 희미한 별빛으로 암흑물질을 읽을 길이 열린 것이다.
국내 기술로 만든 초극미광 망원경과 국내 연구진이 축적해온 초대형 우주 시뮬레이션, 그리고 이론 연구 역량을 잇는 ‘K코스모스’ 사업이 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남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관측하며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나라가 되려면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이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눈앞의 성과만으로 가치를 판단하기보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오래 붙들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깜깜한 밤하늘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그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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