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궁궐서 왕처럼 걸어보고 … 익선동 야장에선 신나게 뛰어놀고

조선시대 왕이 일상생활을 보내던 공간 창덕궁 희정당이 활짝 열렸다. 전통과 현대의 미가 조화를 이룬 설치 예술 작품이 들어서며 마치 실제 꽃이 핀 듯 생기가 더해졌다.
흰 복숭아꽃이 하늘에서 내려와 핀 모습을 최성우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보유자가 우아하게 구현했다. 2000 송이가 만개하고 나비와 벌, 새들이 함께 해서 마치 마술처럼 공간의 기운을 바꿔놓았다. 방문자들은 궁궐 잔치에 주로 등장했던 벽도화(흰 복숭아꽃)를 보며 조선의 전성기를 떠올려 본다.
매년 봄과 가을 날씨가 좋은 계절이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궁중문화축전’을 개최한다. 올가을에는 7일과 11일 4대 궁과 종묘에서 전시와 체험,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평소 국가유산청 SNS를 따라가면 대부분 약 한 달 전인 9월초 시작되는 사전 예약을 잡을 수 있다. 궁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과 시식 프로그램에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입장권은 3000원. 궁 근처에 한복대여점이 많으니 흥을 더하려면 외국인들처럼 건룡포 등 한복을 빌려 입고 어슬렁거리는 것도 재미다.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니 말이다.
지난 9일 희정당에서 열린 특별전시 ‘조선 공간 미학: 백(白)의 질서’를 보기 위해 창덕궁을 방문해 보았다. 전시가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는 데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제한된 인원만 허용했다. 그나마 사전 예약이 아니라 당일 현장에서 대기 예약을 받는다기에 도전해 봤는데 이날 오후 1시 반경 도착했을 땐 현장 대기마저 마감이었다.
대부분 발길을 돌려 창덕궁 다른 전각을 보기 위해 흩어지는 분위기였다. 현장 운영자에게 물어보니 예약 링크에 들어가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하면 시간 대마다 취소 표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30분 남짓 지나니 진짜 취소 표가 한 장 나왔다. 시간이 임박할수록 하나둘 나오는 것을 확인하니 아예 입구 그늘에 앉아 한창 ‘광 클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희정당은 마지막 왕 순종이 거처하던 시절에 자동차가 들어오게 입구에 서양식 현관을 만들고 접견실과 귀빈실 등도 갖췄다. 세라믹 변기에는 화려한 푸른빛 무늬가 새겨진 점도 인상적이었다.
조선의 전통과 대한제국, 그리고 근대의 변화가 한 공간에 겹쳐 시간이 흐르는 공간 이곳을 천천히 거닐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운 좋게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들도 경탄하면서 둘러봤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건축상을 받은 백종환 WGNB 대표가 기획했다.
왕의 생활과 집무를 위한 자리였으나 화재 이후 재건되며 근대적 감각이 겹겹이 스며든 희정당을 무대 삼아서 목조 구조의 리듬과 공간의 축, 비례와 균형, 비워진 여백을 따라 조선이 지켜온 질서를 보여준다. 최고 장인들이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예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근대 한국화가 김규진의 작품 ‘금강산 총석정절경도’도 한쪽 벽에서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나중에 보니 희정당 안에 입장을 못하더라도 바깥으로 활짝 연 문을 통해서 전시의 분위기를 포착할 수도 있었다.
왕의 서재에서 책 읽기...후원 입장 경쟁 치열
창덕궁은 조선시대 4대 궁궐 중에서도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전통 궁궐과 왕의 정원을 경험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 예매는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줄이 형성된다. 마침 창덕궁 후원의 왕실 서재 ‘선향재’를 독서 공간으로 특별 개방하는 프로그램도 오는 18일까지 운영되고 있다.
선향재는 후원 연경당 동쪽에 자리한 왕실의 서재다. 평소에는 내부를 관람할 수 없지만, 행사 기간 후원 관람객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이곳에 들어와 안에 비치된 인문학·궁궐 관련 책을 읽거나 가져온 책을 펼쳐 볼 수 있다. 다만 후원 관람권은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후원 관람권 구매 자체가 쉽지 않아 원성도 나온다.
창덕궁 후원관람은 사전 온라인 예매가 관람일 제외 6일 전 오전10시 선착순으로 가능하지만 금세 마감돼버린다. 당일 입장권 구매도 매일 아침 8시도 되기 전부터 대기열이 형성되는 편이다. 주말보다는 평일 이른 아침에 가보길 권한다. 참고로 명절 때 4대 궁 무료 개방을 하더라도 후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표본으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창덕궁 후원 관람은 해설사 안내로 진행되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 더욱 인기 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바로 연결될 뿐 아니라 종묘와도 연결될 수 있도록 2022년 복원됐다. 일제강점기 돈화문 앞 도로(현 율곡로)가 생기면서 분리됐던 것을 터널 상부에 녹지를 조성해서 공원길처럼 연결한 것이다. 상부 녹지 위에 율곡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아주 호젓해서 좋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궁궐 석재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세계인의 명소 서순라길·익선동 먹거리도
창덕궁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바로 종묘로 건너가면(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 종로3가 대로로 이어진다.
창덕궁을 나서면 요즘 글로벌 명소로 거듭난 서순라길을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조선시대 순라군이 종묘 서쪽 길을 순찰하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종묘 담장을 끼고 종로3가역으로 내려가는 길과 익선동 등으로 연결되는 이 길은 낮보다 밤에 더 활짝 꽃피어 골목길 낭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창덕궁과 안국역 주변은 저녁이 되면 컴컴하고 한산해지는 것과 대비된다.
서순라길에서 인기 많은 장소는 복고풍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멕시칸 식당 ‘비틀비틀 비틀스 타코’다. 이 지역과 괴리된 이색 음식 덕인지 항상 대기가 많아 전화번호를 등록해 놓고 주변을 산책해도 괜찮다. 오랫동안 터줏대감 같은 노포 ‘순라길’도 있다. 더 좁은 골목길은 익선동으로 연결되는데 의외로 이탈리아 일본, 호주, 벨기에 등 다국적 식당과 카페가 많다. 낮에는 ‘담멍(담을 바라보며 멍때리기)’하기 좋은 카페에 2030 손님들이 참새떼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종종 사진 촬영을 하는 패션피플도 눈에 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익선동과 서순라길 일대 외국인 카드 소비액은 2022년 상반기 20억9400만원에서 올 상반기 392억7100만원으로 18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익선동과 서순라길이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서울시가 2018~2020년 서순라길과 돈화문로 등 도로 1.9km를 정비하며 본격 떴다. 종묘 돌담을 바라보면서 맥주 등 음료를 마시는 낭만적인 장소로 변신한 것. K드라마 등에 자주 등장하며 더욱 외국인들을 끌어모았다. 인근에 주얼리 소공방도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북촌보다 저렴한 숙소를 찾는 젊은 외국인들을 겨냥한 게스트하우스도 익선동 등에 몰리는 유인이 되고 있다. 한옥 구조를 빌려 디자인한 카페와 루프톱 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아예 종로3가 역 출입구쪽으로 가면 낙원상가 주변으로 거대한 포장마차촌이 형성되어 2030에게는 을지로 못지않은, 야장 성지가 됐다. 익선동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빽빽한 가게들 사이에서 구이집이 즐비하다. 이런 야장이 종로3가역 큰길 가로도 뻗어나가 불야성을 이룬다.
종로3가역 인근 야장 불야성
애초 익선동은 1920년대 국내 최초 디벨로퍼로 꼽히는 건축왕 정세권이 북촌보다 앞서 지은 도시형 한옥 집성촌이었다. 상당히 좁은 골목길이 묘미인 이곳은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추진되다 2014년 무산되며 새로 거듭났다. 리테일 상권 전문가 신지혜 STS 상무에 따르면 초기에 젊은 디벨로퍼 익선다다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갔다가 매력적인 레트로풍 카페와 식당 등을 개발해 생기를 불어넣는 실험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궁궐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음미하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서순라길로 들어서 차분한 산책을 이어가거나 종로3가와 익선동 구이집에서 단백질을 보충하며 떠들썩한 분위기로 변신해보는 것도 좋다.
다만 익선동과 서순라길에 들어서면 2030이 압도적으로 많다. 종로3가쪽으로 대로변으로 나서면 좀 더 시끄러우면서도 외국인과 중장년층이 섞여 다채롭다.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인근 송해길을 비롯해 대체로 노년층이 찾는 저렴한 식당 상권도 있는데 요즘 이곳에 젊은이들도 많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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