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명절 막바지 별미, 배국수
‘새미네부엌’ 요리연구소 제공
추석이면 집 안에 과일이 하나, 둘, 늘어난다. 누군가 정성껏 골라 보내온 과일 상자부터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며 담아 온 과일까지. 그중에서도 유난히 존재감이 큰 것이 바로 배다. 큼지막하고 동글 반듯한 배는 선물 상자 안에서도, 차례상 위에서도 늘 한 자리씩 차지하니까.
그런데 명절이 지나고 나면 조금 난감한 것이 차례상에 올렸던 배도, 선물로 받은 배도 꽤나 남는다는 것. 냉장고 한편에 차곡차곡 쌓인 배를 볼 때면 이걸 언제 다 먹지 싶어지지만 사실 배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요리 재료’가 될 수 있다.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어도 좋고, 갈아서 음료처럼 마셔도 되지만, 오늘은 국수 한 그릇으로 만들어 보려는 바.
명절 음식은 대체로 따뜻하고 묵직하다. 기름에 전을 부치고, 갈비를 재우고, 잡채를 볶고, 갓 지은 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올려 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꽉 찬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시원하고 산뜻한 한 그릇이 당기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때 아주 찰떡인 배국수!
‘새미네부엌’ 요리연구소 제공
배를 곱게 갈아 요리에센스 연두와 식초, 설탕을 더하면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국물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삶아 차갑게 헹군 소면을 말아 넣고, 한번 데쳐 더 아삭해진 양념 오이를 고명으로 올리면 끝이다. 배 1~2개와 소면 한 줌이면 근사하고도 재밌는 한 그릇이 뚝딱 완성된다. 참 이상도 하지. 분명 배를 갈았을 뿐인데 국수가 된다니.
국물 속에 퍼져있는 배의 은은한 단맛과 식초의 산뜻함이 더해지면 입안이 한결 가벼워진다. 시원해진 소면은 후루룩 넘어가고, 오이는 아작아작 씹힌다. 기름지고 진한 명절 음식들 사이에선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가벼운 맛. 한 젓가락 먹고 나면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 햇볕에는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고, 낮에는 에어컨을 찾게 되는 추석 연휴. 하지만 한여름처럼 냉기만 찾기에는 계절이 조금씩 기울고 있으니, 그 애매한 계절의 틈에서 배국수는 또한, 딱 좋은 온도의 별미가 된다. 시원하나 차갑지 않고, 달콤하지만 무겁지가 않다.
선물 받은 배가 조금 물러졌대도 아쉬워할 필요 없다. 오히려 잘 익어 물러진 배일수록 곱게 갈아 국수의 국물로 만들었을 때 자연스러운 단맛이 살아나기 마련이니까. 차례상에 올랐던 배로 만드는 다디단 우리 집 별미.
어쩌면 명절 연휴의 음식이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우선 크게 차린 한 상을 먹어 치우고, 남은 음식은 다른 모습으로 바꿔 먹고, 냉장고 속 재료를 다시 바라보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이거 괜찮은데?” 하며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것. 그런 작은 순간까지도 명절의 추억이 되리니. 추석의 막바지 별미, 복작거렸던 식탁에 배 한 알을 더하니 가벼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배국수 상세레시피는 아래 새미네부엌 사이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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