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안하니 불면증 환자 70%가 개선…잠 달아나게 한 뜻밖의 습관

단 한번의 60분짜리 대중 건강강좌를 듣는 것만으로도 불면 증상을 유의미하게 개선할 수 있다는 임상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치료 접근성이 떨어져 방치되기 쉬운 불면증 환자들에게 대중 강연이 효과적인 진입 장벽 완화 수단이자 ‘단계적 치료’의 첫 관문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첫 사례다.
윤창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불면증 공개강좌를 수강한 환자들을 4주간 추적 관찰한 결과, 최종 응답자의 72.4%가 불면 증상이 전반적으로 호전됐다고 응답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수면연구학회와 호주수면학회가 공동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슬립 어드밴시스’ 최근호에 게재됐다.
불면증은 성인 3명 중 1명이 겪을 만큼 흔한 질환이다. 임상 현장에서 가장 먼저 권고하는 1차 표준 치료는 수면제 처방이 아닌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다. 이는 잠에 대해 환자가 가진 비합리적인 불안과 왜곡된 믿음, 잘못된 수면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훈련받은 수면 전문의나 치료사에게 4회에서 8회에 걸쳐 집중 세션을 받아야 해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고 국내 전문 인프라가 부족해 실제로 이 치료를 받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에 연구팀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들을 수 있고 비용 부담이 거의 없는 공개강좌에 주목해 이러한 치료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이번 강연의 핵심 이론적 토대는 행동경제학의 결핍 이론이다. 결핍 이론은 돈이나 시간이 극도로 부족한 사람은 해당 결핍 대상에만 온 신경이 쏠려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고 합리적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개념이다.
윤 교수는 이를 수면에 최초로 접목했다. 사람이 하루 동안 가용할 수 있는 집중력과 판단력 등 정신적 대역폭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오늘도 못 자면 어쩌나’ 하는 잠 걱정이 마치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세금처럼 정신력을 사전에 떼어간다는 설명이다.
세금이 빠져나간 채 남은 여유로 하루를 버티다 보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데 이를 ‘어젯밤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자책하면서 밤이 되면 다시 긴장해 불면이 악화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연구는 지난 3월 분당서울대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불면증 강좌 참석자 182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연구 참여에 동의한 81명 중 강연 직전과 직후, 2주 뒤, 4주 뒤 등 총 4차례 추적 설문에 모두 성실히 응답한 29명(평균 연령 71세, 여성 72%)의 데이터를 최종 분석했다.
추적 관찰 결과, 참여자의 72.4%가 불면 증상이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하루라도 못 자면 다음 날을 완전히 망친다’와 같이 불안을 유발하는 잠에 대한 잘못된 믿음 점수는 강연 전 4.52점에서 4주 뒤 3.39점으로 25% 감소했다.
불면 증상 점수 역시 6.34점에서 5.07점으로 20% 줄었다. 잠 걱정으로 인한 정신적 부담은 5.38점에서 4.03점으로 25% 줄었다. 불안 완화와 함께 우울 증상 점수도 1.79점에서 1.10점으로 39%나 감소했다.
이러한 개선 폭은 수주 동안 진행되는 기존의 온라인 인지행동치료나 자가 치료 프로그램 연구에서 보고된 수치와 맞먹는 수준이다. 나이와 성별 변수를 보정하거나 중간 탈락자를 포함한 통계 분석에서도 효과는 일관되게 나타났다.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불면 증상 자체는 강연 수강 2주 뒤부터 호전되기 시작했으나 잠에 대한 고정관념과 믿음은 4주차에 접어들어서야 뚜렷하게 달라졌다. 단 60분의 교육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교정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강연 직후 조사에서 참석자들이 꼽은 가장 큰 깨달음은 ‘억지로 자려 하지 않고 지금 상태를 받아들이기(52.5%)’였으며 ‘걱정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보기(22.5%)’가 그 뒤를 이었다.
이번 건강강좌 영상은 누구나 언제든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분당서울대병원 공식 유튜브 채널에 전편 공개돼있다. 연구팀은 전문 의료진을 바로 찾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강연을 1차적으로 제공하고 이후에도 호전이 없으면 정밀 치료로 연계하는 ‘단계적 치료’의 출발점으로 이 강좌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연구팀은 대조군이 없는 단일 기관 예비(파일럿) 연구이고, 4주 추적을 완료한 인원이 첫 설문 응답자의 절반 수준(49%)인 데다 고령·여성 중심의 주관적 설문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연구팀은 현재 동일 환자군을 대상으로 6개월 장기 추적 조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향후 무작위 대조시험(RCT)과 수면다원검사 등 객관적인 생체 지표를 동반한 후속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 교수는 “오늘은 기필코 자야 한다는 노력과 강박 자체가 뇌를 각성시켜 잠을 쫓아낸다”며 “잠을 통제하려 들지 않고 잠이 오지 않는 지금의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불면 탈출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의 강연이 병원 전문 치료를 완벽히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치료 문턱 앞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불면증 환자들에게 실질적이고 유용한 첫 디딤돌이 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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