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다고 비싸게 샀는데” 해 뜨면 커튼부터 닫는다···애물단지 된 초고층 유리빌딩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와 도심 스카이라인. 위키피디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화려하게 수놓은 유리 빌딩이 기후변화 시대의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탁 트인 전망과 세련된 외관으로 도시의 부와 현대성을 상징해온 초고층 건물들이 뜨거운 햇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냉방 에너지 소비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유리 외벽이 넓어질수록 무조건 좋은 것일까.
두바이, 쿠알라룸푸르, 뭄바이, 자카르타 등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에서 유리 빌딩은 경제력과 현대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지만, 기온이 오르는 시대에는 건축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도시의 자부심에서 기후 과제로
초고층 빌딩 경쟁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도시의 풍경을 바꿔왔다. 미국 시카고와 뉴욕에서 발전한 고층 건축 양식은 중국과 중동, 동남아시아로 확산했다. 건축물의 높이와 외관은 도시의 경제적 위상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됐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에 따르면 높이 200m 이상인 세계 초고층 건물 가운데 84%는 2001년 이후 지어졌다. 2000년대 초반 이전에는 초고층 건축물이 드물었지만, 이후 건설 속도가 가파르게 빨라진 것이다. 200m 이상 건물의 연평균 완공 수는 1991~2000년 12개에서 2011~2020년 113개로 늘었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위키피디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8년 완공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후에도 고층 건축이 이어지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크게 달라졌다. 높이 경쟁에 더해 건물 외벽 대부분을 유리로 감싸는 디자인이 세계 곳곳에서 보편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로, 높이 828m에 이른다. 파리 에펠탑 높이의 약 2.5배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메르데카 118이 678.9m로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문제는 이런 건축 양식이 모든 기후에 적합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현지시간) 유리 빌딩이 경제력과 현대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지만, 지구가 더워지는 상황에서 냉방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건축 방식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유리창은 자연광을 실내로 들이고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그러나 벽체보다 열을 통과시키기 쉽고 햇빛으로 인한 열 유입도 크다. 외벽의 유리 면적이 넓을수록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더 많은 냉방 에너지가 필요할 수 있다.
NYT는 일반적인 유리창이 외부의 열을 차단하는 성능에서 단단한 벽체보다 불리할 수 있고, 햇빛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실내 열로 유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적도에 가까운 쿠알라룸푸르나 두바이처럼 연중 강한 햇빛을 받는 도시에서는 유리 외벽의 단점이 두드러질 수 있다. 겨울철 햇빛이 약한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유리창이 난방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더운 지역에서는 냉방 수요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유리 외벽을 둘러싼 공공청사의 냉방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서울 용산구청, 금천구청, 경기 성남시청 등 유리 외벽을 적용한 청사에서 여름철 실내 온도와 냉방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건물 외관을 현대적으로 만드는 데 치중하기보다 단열과 에너지 효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망은 탁 트였는데…햇빛 피하려 커튼 닫고 에어컨
유리 빌딩의 역설은 실제 거주자의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쿠알라룸푸르의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 아나스타샤 지먼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도시 전망에 매력을 느꼈지만, 열대의 강한 햇빛이 내리쬘 때면 창문에서 벽처럼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고 NYT에 말했다. 말레이시아 그린빌딩인덱스의 최고경영자이자 건축가인 사를리 아드레 사르쿰도 유리 외벽이 많은 건물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구매자들은 멋진 전망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커튼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망을 즐기려고 선택한 집에서 정작 햇빛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가려야 하는 역설이다.
한국에서도 유리 외벽을 둘러싼 생활환경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의 고층 주상복합 단지에서는 유리 외벽과 관련한 태양 반사광 피해 가능성이 분양 단계부터 고지됐다. 2023년 공개된 해운대 경동리인뷰 2차 입주자모집공고에는 일부 동에 적용된 ‘커튼월룩’으로 특정 시간대 인접 세대와 다른 주거지에 태양 반사광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커튼월룩은 건물 외벽을 유리로 감싼 커튼월처럼 보이도록 만든 외장 방식이다. 실내가 더워지는 문제를 넘어 화려한 외관을 구현하기 위한 설계가 주변 주거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고층 건축의 가치를 전망과 외관만으로 평가하기보다 에너지 효율과 빛 반사, 주변 거주자의 생활환경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냉방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2019년 학술지 ‘에너지 앤드 빌딩스’에 실린 미국 사무용 건물 약 1000곳 분석 연구는 창문이 외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냉방 에너지 사용량이 커지는 경향을 확인했다. 다만 창문 면적만으로 건물 전체의 에너지 소비를 설명할 수는 없었으며, 냉방 수요에는 기후와 건물의 다른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더운 지역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방 설비를 더 많이 가동해야 했다.
유리 대신 벽을 늘리면 해결될까
그렇다면 유리 외벽을 줄이는 것이 해법일까. 전문가들은 유리 사용량을 줄이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자연광을 충분히 확보하면 인공조명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고성능 유리와 외부 차양을 적절히 활용하면 열 유입을 억제하면서 전망을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켄 셔틀워스는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고층 건물인 거킨 설계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과거보다 유리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고층 건축 설계에 참여해온 건축가 고든 길(Gordon Gill)은 단순히 유리를 덜 쓰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건물의 외관과 성능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법으로는 건물의 방향을 조정해 직사광선 노출을 줄이거나, 외벽에 차양 장치를 설치하고, 열을 반사하는 코팅 유리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유리 외벽에 식물을 배치하는 방식도 대안 중 하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더운 기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에너지 효율과 자연광 확보를 함께 고려할 때 창문이 외벽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방향에 따라 약 20~30%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건축물의 환경 부담은 외벽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건물건설연맹이 발표한 2024~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건물의 운영과 건설은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32%, 이산화탄소 배출의 34%를 차지한다.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자재부터 냉방과 조명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전 과정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높이와 화려함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보여주던 초고층 빌딩은 이제 다른 질문을 받고 있다. 얼마나 높이 지을 것인가뿐 아니라, 그 건물이 어떤 기후에서 얼마나 적은 에너지로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을 향한 건축 경쟁이 기후변화 시대에도 지속되려면, 도시의 스카이라인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 부담까지 설계에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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