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취향]조각 보러 창원 가요···철길·한옥·시장 따라 걷는 가을 미술 산책
심문섭 ‘반추’(2026), 목재, 철재, 자개 상감 옻칠 공예 기법, 229 × 207 × 66 cm.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철길 옆에 회색 벽돌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경남 창원의 옛 진해역입니다. 승강장에 김수자의 신작 ‘연역적 오브제-더 그리드’(2026)가 들어왔습니다. 작가는 천을 짜듯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직조·바느질·보따리 작업으로 탐구해온 ‘짜기’가 건축적 차원으로 확장된 셈입니다. 길게 뻗은 레일과 침목의 반복되는 리듬은 벽돌의 격자와 맞물립니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면 오래된 역의 풍경도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작은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배 한 척이 기다립니다. 길게 다듬은 나무 위에 화려한 자개장이 돛처럼 서 있습니다. 통영 출신 작가 심문섭의 ‘반추’(2026)입니다. 조개껍데기가 겹겹의 옻칠과 연마를 거쳐 빛을 얻기까지, 그 긴 시간이 배에 실려 있습니다. 만남과 이별이 오가던 역에서 여러 시간이 포개집니다.
김수자 ‘연역적 오브제 - 더 그리드’(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군항과 근대 철도, 이동과 통신의 시간을 품은 진해역이 조각을 만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지난 9월30일 개막한 제8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성산아트홀과 창원의집·창원역사민속관, 진해역 일대, 마산어시장에서 74팀(81명)의 작품 약 200점을 선보입니다. 조혜정·장쥔 공동예술감독이 정한 주제는 ‘공명장’입니다. 인간과 물질, 작품과 장소가 만나 주고받는 울림을 뜻합니다.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이 놓인 공간과 맥락도 함께 살펴보자는 제안으로 읽힙니다.
조각으로 비엔날레를 연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마산에서 자라고 활동한 조각가 문신(1923~1995)이 있습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그의 예술을 기리는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2012년 시작한 국내 유일의 조각비엔날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각은 제법 너른 뜻을 가집니다. 영상과 소리, 실로 엮은 설치와 관객이 참여하는 작업까지 아우릅니다. 재료를 깎고 묶고 쌓는 일부터, 관객의 움직임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까지 조각의 범위에서 바라봅니다.
다음으로 발길을 옮겨볼 곳은 창원의집과 창원역사민속관입니다. 창원역사민속관 누각에는 조소희의 ‘…어디…’(2020)가 걸렸습니다. 노랗고 푸른 실을 엮은 커다란 그물이 기와지붕 아래로 늘어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손으로 실을 연결해 만든 구조물 사이로 빛과 바람, 보는 이의 시선이 드나듭니다. 창원의집 정자에서는 커다란 입술 세 개를 만납니다. 마날 알도와얀의 ‘내 말을 들어줘’(2026)입니다. 대숲을 배경으로 놓인 황동 입술은 두드리면 소리가 울립니다. 말하기와 침묵,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을 묻는 작품입니다.
조소희 ‘...어디...’(2020)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마날 알도와얀 ‘내 말을 들어줘’(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한요한·박가인 ‘창원을 봄’(2026) 창원조각비엔날레 제공
주전시장인 성산아트홀에는 본전시와 두 특별전이 모여 있습니다. 특별전 ‘조각 이전의 조각’에서는 김윤신·심문섭·박석원·주밍 등 동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을 깎기·비우기·묶기·쌓기라는 조형 행위로 살펴봅니다. 조각이 독립된 미술 장르로 자리 잡기 전부터 신앙과 의례, 공동체의 일상에 함께해왔다는 관점입니다. ‘창원조각아틀라스’는 올해 출품작과 역대 비엔날레의 공공조각을 위치 정보로 연결한 지도형 디지털 아카이브입니다.
본전시에서는 페드로 레이예스의 ‘핵무기 제로 I’가 버섯구름 형상으로 핵무기 폐기를 촉구합니다. 한요한·박가인의 ‘창원을 봄’은 백남준의 ‘창원의 봄’(2000)에서 출발해 영상과 소리, 일상적 사물을 결합했습니다. 다만 성산아트홀 본전시는 작품들을 잇는 맥락이 선뜻 잡히지 않아 ‘공명’하는 느낌은 덜해 아쉽습니다.
창원을 찾을 일이 있다면 마음이 가는 장소 한두 곳을 골라 들러보셔도 좋겠습니다. 옛 역을 걷고 누각에 올라 새로운 감각을 만나는 가을 산책입니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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