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래퍼 출신 네팔 총리, 정치적 시험대···강진 덮친 베네수·콜롬비아의 엇갈린 초기 대응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비두르시의 돌발 홍수 피해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래퍼 출신 정치인인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가 취임 5개월 만에 홍수 대재난으로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 등에서 홍수가 발생한 가운데 네팔 당국은 1만3000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과 구조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홍수로 지역 교통망과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서 피해 지역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샤 총리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홍수 피해를 입은 바그마티주 누와코트를 찾아 홍수 및 산사태 피해 지역의 상황을 확인했다면서 실종자 수색 및 긴급 구호 등에 “최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샤 총리는 “상황은 여전히 매우 어렵지만 국가의 모든 대응 체계가 최대한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샤 총리는 네팔과 인도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지만 미국 유명 래퍼들의 영향을 받아 네팔 언더그라운드 힙합 무대에서 래퍼 겸 작사가로 활동했다. 노래에는 부패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음악으로 드러낸 변화에 대한 열망은 정치 참여로 이어졌다. 2022년 카트만두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큰 표 차로 당선된 그는 재임 기간 폐기물 관리와 의료서비스 개선, 부패 방지 등 도시 행정 개혁을 추진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지난 3월 네팔 자파 지구 다막의 총선 개표소에서 당선증서를 받은 발렌드라 샤가 승리의 V자 손짓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적 입지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한층 확대됐다. 샤가 직접 작사하고 부른 ‘네팔 하세코(웃는 네팔)’가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리면서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이후 지난 1월 RSP에 입당해 중앙 정치에 뛰어들었고, 총선 도전을 거쳐 3월 총리에 올랐다.
디플로맷에 따르면 샤 총리는 취임 후에도 심야 SNS 게시물과 파격적 발언으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정치 스타일을 이어갔다. 비판론자들은 이런 행동이 논란이 된 행정명령, 무토지 주민 문제, 예산 논란 등 핵심 국정 현안에 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전략이라고 본다. 특히 총리의 가벼운 SNS 발언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강경 조치가 총리직의 권위와 행정 절차를 훼손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지 온라인 매체 네팔뉴스에 따르면 샤 정부는 반부패 수사 강화, 공무원 조직 개편, 정치권 영향력이 강했던 공무원 노조 해체, 1200여개 정치적 임명직 정리, 정부 부처 축소, 디지털 행정·자산 조사 확대 등을 추진했다.
정부는 이를 과감한 행정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상당수 조치가 국회 입법이 아니라 행정명령 방식으로 추진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직 총리 KP 샤르마 올리 등 전·현직 유력 인사들을 잇달아 체포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졌다. 정부는 반부패·법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부 피의자가 보석으로 풀려나거나 정식 기소가 지연되면서 적법절차를 무시한 정치적 보복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총리의 비선에 가까운 참모진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 바그마티강 인근 무허가 정착촌 철거 과정에서 충분한 이주 대책이 없었다는 인권 비판, 언론 자유 위축 우려, 전자여권 조달과 전기차 세제 개편을 둘러싼 잡음도 이어졌다.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슐리에서 26일(현지시간) 돌발 홍수가 발생한 가운데 한 생존자가 중장비를 이용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는 취임 5개월째를 맞은 샤 총리의 위기 대응 능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됐다. 개혁과 정치적 논란을 둘러싼 평가와 별개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재난에서 정부의 구조·구호 체계를 얼마나 신속하게 가동하느냐가 당장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중남미에서도 정권 출범 초기 대형 자연재해를 맞은 지도자들의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발생한 연쇄 강진에 대한 정부 대응을 둘러싸고 비판을 받았다. 라과이라 주민들은 경찰과 군이 구조 작업에 소극적이었다며 항의했고 현장에 투입된 장비와 구조 활동도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SNS를 통해 구조 성과를 홍보하고 로드리게스 권한대행이 피해 지역 방문 당시 고가의 의상을 착용한 것을 두고도 위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제구조위원회(IRC)도 정부의 대응 규모가 인도주의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은 지진 발생 일주일 뒤 외신 기자들에게 “우리는 하루나 이틀, 사흘을 기다리지 않았다. 즉시 대응에 나섰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부 대응이 늦고 혼란스러웠다는 비판을 “선전 공장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 “이 같은 인도주의적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이 취임 사흘 만인 지난 10일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했다. NBC뉴스에 따르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지역 상당수는 대선에서 우파 지도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으로 분류되는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에게 압도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던 곳이었다.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은 지진 발생 약 1시간 만에 비상대응 지휘본부 설치를 발표하고 직접 대응을 지휘했다. 몇 시간 안에 크레인과 굴착기 등 중장비가 투입됐고 대통령도 36시간 안에 주요 피해 지역을 방문하는 등 초기 대응은 비교적 신속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미국을 제외한 해외 구조팀의 지원을 대부분 거절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국제 지원 조정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으며 산악 지형과 열악한 기반 시설, 통신 장애로 사망·실종자 집계가 지연되는 문제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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