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1년치 선결제가 ‘오디세이’와 무슨 상관?…오디세우스가 무사히 세이렌을 벗어난 이유[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콘텐츠입니다.
<오디세우스>와 율리시스 계약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인터스텔라’, 그리고 ‘은하철도999’의 원형은 무엇일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꼽을 수 있다. 오디우스의 노래라는 뜻의 <오디세이아>는 방랑과 귀향의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가족이 사는 이타케로 귀향하기까지 10년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
제공 유니버설 픽처스, 네이버 영화
그 여정에의 근간에는 모험, 유혹, 믿음, 배신, 성장, 기다림, 가족애 등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모험소설, 로드무비, 성장소설, 판타지 문학은 대개 <오디세이아>의 여정 구조를 계승하고 있는 평가를 받는다.
트로이전쟁을 노래하다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3세기초에 실제 벌어졌다고 추정된다. 당시는 마땅한 문자가 없었던 탓에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의 상세한 전말을 여덟편의 긴 노래, 즉 서사시로 만들어서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이중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두 노래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두 작품은 문자로 기록되는데, 기원전 5세기 이후 그리스와 로마는 이를 공식 낭송 작품으로 채택했다. 한반도에 신라.고구려.백제가 채 건국하기도 전이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암송하고 필사하고 주석을 달고 시험을 보는 교재가 됐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주인공 한스가 신학교 선발고사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하는 주요과목 중 하나가 오디세이아다. 두 작품은 서양의 언어와 문학, 사고방식, 가치관의 뿌리가 됐다.
영화 <오디세이>
제공=유니버설픽처스, 네이버영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이야기꾼이 악기를 연주하며 운율과 선율에 맞춰 노래하는 구전문학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창이나 판소리와도 구조가 유사하다.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실존 인물인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일설에 따르면 눈먼 음유시인이라고 하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의 형태를 호메로스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오디세이아>는 1만 2110행으로 이뤄진 긴 서사시다. 외눈박이 거인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키클롭스 이야기,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키르케 이야기,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이야기,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여신 칼립소 이야기, 그리고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 이야기 등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행동경제학, 세이렌을 만나다
그중에서 행동경제학이 주목하는 장면이 있다. 세이렌 이야기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이 노래하는 곳을 지나야 하는데, 만약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다면 노래에 홀려 배를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오디세우스는 병사들에게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지 않는다. 호기심에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 것이다.
대신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자신을 돛대다 꽁꽁 묶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자신이 놓아달라고 애원을 하더라도 그 말을 듣지 말고 더 세게 묶어버리라고 한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풀어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오디세우스
챗GPT 그림
마침내 배가 세이렌을 지나게 되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밧줄을 풀어달라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귀마개를 한 선원들은 그 말을 들수 없었고, 오디세우스가 앞서 명령한 대로 그를 붙들어맨 줄을 더 단단하게 조인다. 마침내 오디세우스의 배는 세이렌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는데, 여기서 유래한 용어가 ‘율리시스 계약(Ulysses Contract)’이다.
율리시스는 그리스어인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이면 바뀐 이름이다. 율리스시 계약이란 오디세우스 계약이라는 뜻으로 미래의 자신이 충동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현재의 자신에게 미리 제약을 걸어놓는 행위를 말한다.
헬스장 1년치 요금을 선납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의 선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작심삼일로 끝난다. 금연금주를 다짐하고도 며칠 못가는 사례도 흔하다. 손쉽게 중도포기를 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1년치 헬스장 사용료를 선결제해버리거나, 술담배를 하면 10만원을 주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하는 방법이 있다.
영화 <오디세이>
제공 유니버설 픽처스, 네이버 영화
율리시스 계약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부실한 자기통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종 언급이 되는데,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커미트먼트 장치(Commitment Device)라고 부른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의지에 기대는 것보다 자신을 속박하는 율리시스 계약이 더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미래의 나를 믿지 말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묶어두라는 것이다.
연명치료 거부를 사전에 신청하는 것도 일종의 율리시스 계약이다. 나중에 내맘이 바뀌지 않도록 미리 속박해버리는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는 현대 문명에 대한 경고
그렇다면, 오디세우스가 들은 세이렌은 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리로 오세요. 아름다운 우리 노래에 정제되어 담긴 이 세상 모든 지식에 귀를 귀울여요”
세이렌의 노래는 단순히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었다. 지적욕망에 대한 유혹이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는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고, 이같은 욕망이 과도할 때 자칫 자신이 가야햐는 길을 잃을 수 있다. 즉 세이렌의 노래는 통제력 잃은 과학기술이 인류를 자칫 파멸의 길로 몰고갈 수 있다는, 현대 문명에 주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영화 <오디세이>
제공 유니버설 픽처스, 네이버 영화
천신만고 끝에 이타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가 없는 사이 자신의 성을 점령한 외부인들로부터 아내인 페넬로페이아와 아들인 텔라마코스를 지켜야 한다.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이용해 마침내 외부인들을 몰아내고 귀향을 완성시킨다.
크리스토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1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서양 아니 현대 콘텐츠의 뿌리인 <오디세이아>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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