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혈우병 ‘원샷’ 치료제, 2년째 급여 지연…“수천 번 주사 고통 없게” [건강한겨레]
유전 질환으로 인한 혈액응고인자 부족
매주 정맥주사로 보충하면서 살아와
치료제 ‘헴제닉스’ 국내서 2년 전 허가
한 번에 치료되지만 높은 가격에 급여화 ‘미적’
“평생 치료비 생각하면 신속등재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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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아픈 것도 서러운데 치료받기 위해 또 아파야 할까요?”
강원 지역에 거주하는 B형 혈우병 환자 김아무개(48)씨는 기존 혈우병 치료 방법의 한계를 이렇게 토로한다. 돌 무렵 첫걸음마를 떼다 무릎 관절 내출혈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혈우병 진단을 받은 그는 중학교 1학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35년 넘게 스스로 혈관을 찔러 약을 투여해왔다. 수천 번의 바늘을 꽂아 넣은 손등과 손목의 피부는 검게 변했을 뿐 아니라 이젠 새로운 주사 자리를 찾는 일 자체가 또 하나의 고통이다.
김씨는 “이미 관절 출혈로 극심한 통증을 겪는 상태에서 혈관을 찾지 못해 바늘로 서너 번씩 찌르다보면 눈물이 핑 돈다”며 “어린 시절엔 이런 처지가 서럽고 자괴감도 수없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복된 관절 출혈로 망가진 관절을 교체한 인공관절만 네 군데에 달할 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에선 편견과 오해 섞인 인식으로 ‘약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혈우병 환자의 인생은 주사 맞는 날을 중심으로 계획이 짜인다”고 자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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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은 피를 굳게 하는 ‘혈액응고인자’가 선천적으로 부족해 한번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 유전 질환이다. 부족한 응고인자의 종류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나뉘는데, B형 혈우병 환자는 전체의 20% 정도다. 응고인자 활성도가 정상의 1% 미만인 중증 환자는 가벼운 충격은 물론 특별한 이유 없이도 몸 곳곳에서 출혈이 생긴다.
치료는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정맥 주사가 널리 쓰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피부 아래에 주사하는 피하주사제도 개발됐다.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치료법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반복적인 주사 치료와 예상치 못한 출혈 및 관절 손상을 완전히 막기가 어렵다는 한계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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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최근 단 한 번의 투여로 반복 주사 치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성분명 에트라나코진 데자파르보벡)가 나왔다. 국내에선 2024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지만, 2년 넘게 국민건강보험 급여 등재 논의가 멈춰 있다. 현재는 40억원에 달하는 투여 비용 탓에 ‘그림의 떡’이다. 환자들의 급여화 요청도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 역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상황이 지적됐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 한 번 투여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혁신 신약이 허가된 지 2년이 지나도록 급여화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며 “돈 앞에 굴복하면 복지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단기 약가에 얽매이지 말고 환자 중심에서 치료 효과와 삶의 질을 고려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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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해당 치료제에 대해 두 차례 급여 신청을 받아 심의했으나 높은 약가 등으로 구체적인 기준 설정이 어려웠다”면서도 “현재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에 공모 지원한 상태인 만큼 전문가들과 검토해 신속 트랙으로 급여화하는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치료제가 고가이긴 하나 비용 효과성을 따져볼 만하다. 현재 국내 B형 혈우병 환자 치료에 매년 약 607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평생 치료받아야 하는 질환 특성상 누적 비용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선 해당 유전자 치료제의 장기적인 치료 가치와 재정 절감 효과를 인정해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한 상태다. 최근 대한혈액학회 혈우병위원회가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는 등 전문가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박영실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중증 혈우병 환자들은 지금도 평생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치료제를 투여받고 있으며, 이는 이미 건강보험이 부담하고 있는 비용”이라며 “여기에 돌발 출혈로 인한 응급실 방문, 입원, 관절 수술 비용이 평생 누적된다. 단 한 번의 치료로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상당한 상쇄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은 약제를 우선 등재해 환자를 치료하고 사후 평가를 통해 약값이나 기준을 조정하는 제도”라며 “혈우병은 응고인자 수치와 출혈률이라는 객관적 지표로 치료 효과를 즉각 검증할 수 있어 사후 관리에 가장 적합한 질환”이라고 제언했다.
<a>박 교수는 “ 한번 망가진 관절은 되돌릴 수 없다. 언제 치료받느냐에 따라 환자의 남은 삶이 좌우되는 만큼 급여 논의가 더 지체돼선 안 된다”며 “정부와 제약사, 의료계가 열린 자세로 머리를 맞대 부담과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만든다면,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치료 기회를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적극적으로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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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의원은 “평생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일수록 환자에게 제공되는 장기적인 편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치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혁신 신약이 2년 전 허가됐음에도 급여 논의가 지연되면서 환자들을 희망 고문하는 현재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다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업계에 따르면 헴제닉스 개발사인 시에스엘(CSL)코리아 역시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다양한 재정 분담 방안을 검토하며, 정부와의 신속등재 논의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씨 또한 눈앞의 1년이 아닌 환자의 평생을 바라봐달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어린 환자들이 나와 똑같이 관절이 망가지고 학업과 꿈을 포기하는 삶을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단기적인 약값 지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제때 치료받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일하고 세금을 내며 국가에 기여할 삶 전체를 함께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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