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만으론 안 돼”…공급망·인프라·인력 ‘반도체 생태계’ 뿌리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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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는 수도권과 멀어서 기업이 지역에 입주해야 할 명분이 큽니다. 수도권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지난 15일 전남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전남광주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방향’ 정책토론회에서 이승하 광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역발상’을 내놨다.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리적 여건이 오히려 지역의 차별화된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토론회의 핵심 화두는 단연 ‘생태계’였다. 단순히 첨단 공장 유치가 지역의 지속가능한 성장이나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절로 담보할 수 없는 만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공장만 있는 도시’를 넘어서려면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기업 공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지역 중소기업들이 저절로 성장의 결실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구마모토의 경우 티에스엠시(TSNMC)가 기존 대만 협력업체의 장비와 부품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카피 이그잭틀리’(Copy Exactly) 방식을 고수하면서 현지 기업들의 공급망 진입이 차단됐다. 전남광주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2024년 한국표준산업분류(KSIC) 기준 전남광주 내 반도체 기업은 180곳으로 전체 반도체 업체의 약 3.2%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원사 300여곳 가운데 전남광주에 핵심 생산 거점을 둔 기업은 단 3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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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 빈틈 노려야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지자체가 반도체 생산공정에 진입할 수 있는 ‘빈틈’을 찾아 지역 기업의 업종 전환과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승하 연구위원은 후공정과 유틸리티(팹 가동을 위한 에너지·원료·인프라 공급 설비망)를 집중 육성 분야로 꼽았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전남대와 운영하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공동연구소를 활용하고, 공조(공기조화) 분야에선 기존 지역 기업이 2·3차 협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기업의 공급망 진입에 필수적인 실제 양산 적용 실적(트랙 레코드)을 확보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맹종선 전남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연구교수는 “대전 국가 반도체 연구원에서 1조5천억원을 들여 시험 양산 팹을 만들고 있다”며 “전남광주도 같은 시도를 해야 지역 기업이 실제 품질을 검증받고 트랙 레코드를 쌓아 대기업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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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물과 전력 수급 등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의 갈등 관리와 대안 마련도 과제다. 팹 4기와 협력사가 사용할 용수는 하루 60만3천t에 달하지만 당장 공급 가능한 양은 30% 수준이라 정부는 전남광주시 화순군 동복댐 하류에 새 댐을 지어 하루 30만t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이 계획으로 화순군 이서면 서리마을 등 인근 지역 300여가구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 이미 세차례 수몰을 겪으며 주민 상당수가 떠난 서리마을은 선산과 고택마저 물에 잠길 상황에 놓였다. 오병식 동복댐 연합대책위원장은 “수몰 예정지 주민 대부분이 80대, 90대 노인들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보상과 이주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잦은 가뭄 등 최근의 기후변화 상황은 용수 공급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가뭄이 심해지면 식수와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황석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광주 시민의 식수원인 동복댐에 산단 공급까지 맡기면 극한 가뭄 때 식수와 산업용수 중 무엇을 먼저 줄일지를 두고 큰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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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의 경우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덕에 여력은 충분하지만, 전기가 남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정적 공급이 보장되지 않는다. 2034년까지 6.3기가와트(GW)로 급증할 전력 수요와 데이터센터 증설을 고려해 송·변전 계통망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송·변전망을 확충하는 추가 송전선로가 지날 지역과 보상 규모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

‘오퍼레이터’ 양성 정책도 시급
현장 맞춤형 지역 인력 확보도 시급하다. 정부의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호남 지역 21개 대학은 전문인력 10만명 양성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남광주시도 42개 교육기관과 10개 대학원에서 연간 6333명을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속도와 교육 내용이다. 15일 정책토론회에서 김운섭 조선대 첨단산학캠퍼스 본부장은 “우리가 유틸리티 라인을 놓치고 있다”며 관련 인력 양성을 강조했다. 이승하 연구위원은 “팹 한 개에 오퍼레이터(생산장비 조작원) 3천명 이상이 필요한데 지금 인력 양성 정책은 대학교 중심”이라며 고등학교와 폴리텍대학, 마이스터고와의 협업을 주문했다. 2029년 공장 완공에 맞추려면 2027년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지만, 실습용 ‘미니팹’은 2028년에야 가동된다. 광주 남구의 동일미래과학고 김문수 교장은 “고가 장비 구매나 교사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개별 학교 사정을 고려해 학교 밖 실습과 교사 연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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