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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13, 2026

대만 TSMC가 호남의 롤모델?…노동 쥐어짠 ‘반도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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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관신촌 전경. 티에스엠시 본사와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들이 밀집한 신주과학단지와 매우 가깝다. 신주시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국 1위다.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관신촌 전경. 티에스엠시 본사와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들이 밀집한 신주과학단지와 매우 가깝다. 신주시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국 1위다.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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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읍’(豐邑), ‘부우’(富宇).

지난달 13일 대만 신주시 동구 푸딩리의 30층 높이 주상복합아파트 상단엔 한자 간판이 걸려 있었다. ‘풍요로운 고장’, ‘부유한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대만 최상위 수준의 부촌”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티에스엠시(TSMC)의 본사와 신주과학단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화려한 이름표 뒤편에서, 대만 반도체 신화의 실상은 노동자들의 육체와 정신을 갈아넣은 ‘과노동의 그늘’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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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정말 ‘롤모델’인가?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계기로 연구개발직의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신제품 설계나 공정 개발 과정에서는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실험과 성능 검증을 반복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에 묶여 연구가 끊기다 보니 글로벌 경쟁사보다 속도전에서 밀린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티에스엠시를 비롯한 대만 전자부품 기업들의 장시간 노동은 숫자로 확인된다. 대만 행정원 주계총처(통계청)가 지난 8월에 공개한 ‘2026년 6월 노동자 1명당 월평균 노동시간’ 자료를 보면, 전자부품 제조업의 월평균 연장노동시간은 28.7시간으로 대만 노동자 전체 평균(9.1시간)의 3배를 넘어섰다. 47년 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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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 티에스엠시 혁신박물관.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 티에스엠시 혁신박물관.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업계 대표 기업인 티에스엠시도 2023년부터 2026년 9월까지 연장노동 한도를 위반해 총 14차례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대만 전기전자정보산업노동조합은 한겨레21과 만나 “(이 과태료 처분이) 실체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인사 불이익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암묵적인 초과근무 강요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역시 한국처럼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이며, 노사 합의 시 월 연장근무를 최대 54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다.

티에스엠시가 발간한 ‘2025 지속가능보고서’에도 과노동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보고서는 2025년 한해 동안 5899명이 업무 부담에 따른 중·고위험군 직원으로 분류됐고, 이 중 1361명에게 의사의 권고에 따라 ‘노동시간 제한 또는 업무 조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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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학과 전문의로 2020~2024년 티에스엠시에서 ‘사내 의사’로 근무했던 천위쉬안(가명)은 한겨레21에 “티에스엠시가 ‘노동시간 제한 또는 업무 조정’ 조처를 하는 기준은 월 연장노동 80시간이었다. 결국 1361명이 한달 동안 야근을 80시간 넘게 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약에 의존해 버티는” 기업도시

신주과학단지 종사자는 17만7천여명으로, 신주시 인구(46만명)의 절반 가까이가 반도체 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한다. 문제는 이 기업도시를 움직이는 동력이 ‘과노동’이라는 점이다.

이런 과노동이 신주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만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2024년 신주현과 신주시의 항우울제 사용 인원은 각각 3만8691명, 4만1006명으로 집계됐다. 대만 본토(도서 지역 제외) 기준으로 2018년과 견준 증가율 순위를 보면, 신주현이 92%로 1위, 신주시가 43.7%로 2위다. 전국 평균 증가율은 31.8%였다. 같은 기간 신주에서 ‘불안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 등으로 외래 치료를 받은 환자는 7만4810명으로 약 43% 증가했는데, 이 역시 전국 평균(약 13%)의 3배를 넘어섰다.

양광레이 대만국립과학기술대학 산학혁신단장이 지난달 12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양광레이 대만국립과학기술대학 산학혁신단장이 지난달 12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신주에서 15년간 진료해온 마카이의학대학 우이청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많은 반도체 노동자들이 약에 의존해 일터에서 버티고 있다”며 “특히 티에스엠시 직원 다수는 퇴근 기록만 남기고 일하는 ‘스텔스(숨겨진) 노동’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신주의 거리 곳곳에서 대형 심리상담센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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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던져진 질문

티에스엠시의 과노동과 이로 인한 사회문제는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해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국가 기획형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티에스엠시 성공 전략은 ‘24시간 3교대 연구개발’이었다. 전략의 마지막 퍼즐이 ‘세계 최고의 가성비’로 무장한 고학력 노동력이었다. 미국·일본에 견줘 기술과 자본이 빈약했던 대만이 ‘반도체 굴기’를 이뤄내는 데 장시간 노동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중심으로 반도체가 성장한 한국 역시 ‘근면 성실하게 일하며 노력하려는 문화’가 정착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메모리든 파운드리든 24시간 돌아가는 팹은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데, 이를 위해 노동자는 헌신해야 했다.

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에 티에스엠시 팹20(F20)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팹20은 2나노미터(㎚) 미세공정 양산 핵심 기지이다. 차세대 초미세 반도체 생산의 전초기지다.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13일 오후 대만 신주시 동구 신주과학단지에 티에스엠시 팹20(F20)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팹20은 2나노미터(㎚) 미세공정 양산 핵심 기지이다. 차세대 초미세 반도체 생산의 전초기지다. 신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처럼 통계와 보고서는 과노동의 그늘을 여전히 짙게 가리키고 있지만, 이대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 속에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겨레21이 만난 티에스엠시 전현직 노동자들은 모두 “과거의 24시간 연구개발은 사라진 문화”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연구개발 과정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불필요한 업무가 줄었다고 한다. 2023년 티에스엠시를 떠나 외국계 반도체 기업으로 옮긴 천이샹(가명)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개인의 문제 해결 능력이 개선되어 노동강도는 줄고 1인당 업무 처리량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만 전기전자정보산업노동조합은 “티에스엠시 현직 노동자들을 만나 보면 ‘그래도 (과로 문화가) 개선됐다’고 말한다”며 “이유는 이직률 때문인데, 지금 같은 노동조건으로는 좋은 엔지니어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노동을 바라보는 인식도 내부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8년차 티에스엠시 품질 엔지니어인 차이청루이는 “야근을 길게 하는 직원은 능률이 낮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양광레이 대만국립과학기술대학 산학혁신단장은 “미국·일본 등으로 공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부지런함으로 재능을 보완하던 야근 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티에스엠시는 높은 이직률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 도입과 업무량 조절 등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목표 달성 압박과 인사상 불이익 우려가 노동자들을 여전히 ‘스텔스 노동’으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과노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겨진 관행’으로 형태를 바꾼 실정이다.

왜 과로 문화만 배우려 하나?

티에스엠시가 과거의 성공 방식을 바꾸려는 사이, 한국은 되레 과거의 티에스엠시를 소환하는 중이다. 특히 대만 반도체 기업의 장시간 노동은 일부 언론과 경영계가 줄기차게 요구하는 ‘주 52시간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인다.

패키징 엔지니어로 티에스엠시에서 5년째 일한 장웨이치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성공 기반에는 인재와 자본, 공급망, 산업 클러스터, 기술 축적 등 다양한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며 “‘대만 엔지니어가 한국 엔지니어보다 더 오래 일한다’는 식으로 대만의 경쟁력을 단순화하면, 정작 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본질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있다”고 짚었다.

양광레이 단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제조 분야를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조는 정해진 공정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연구개발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영역”이라며 “연구개발에서는 지식과 경험, 효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의 과로 문화를 무턱대고 따라 했을 때 한국의 노동조합이나 밀레니얼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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