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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9, 2026

‘여순 항쟁’ 최초의 그래픽노블…김금숙의 ‘리얼리즘 살풀이’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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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작가의 신작 ‘흰 신: 여순항쟁 이야기’의 한 장면. 붓과 펜 이외의 ‘터치’가 드러난다. 창비 제공
김금숙 작가의 신작 ‘흰 신: 여순항쟁 이야기’의 한 장면. 붓과 펜 이외의 ‘터치’가 드러난다.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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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자유주의 국가에 의한 집단 학살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것이 ‘여순 사건’ 아닐까. 1948년 10월19일 발발한 지 올해로 79년째, 문학장 안에서도 여수·순천은 1980년 광주나 사건을 배태한 4·3의 제주보다 외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두달여 만에, 한반도 최초로 내려진 ‘비상계엄령’(48년 10월22일)이 겨눈 곳.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가운데 이승만 정부가 통과시킨 사형 명령. 여수시는 ‘여순사건1019’ 아카이브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과연 몇명이나 희생을 당했는지에 대한 통계도 제각각이었다”며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건 직후 정부와 전라남도가 진행한 조사도 5차례 모두 수치가 다른 가운데, 마지막치 전남도 조사 결과(1949년 10월25일)상의 희생자는 1만1131명이었다.

그래픽노블 ‘흰 신: 여순항쟁 이야기’는 더없이 불긋했을 그 가을을 흑백 수묵으로 독자 앞에 펼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주인공인 ‘풀’, 제주 4·3을 다룬 ‘지슬’, 한국전쟁의 이산을 그린 ‘기다림’ 등을 남긴 김금숙(56) 작가의 신작이다. 하비상 등 유수의 국제 만화상을 받은 그의 전작들로부터도 또 한발 나아가, 작가는 ‘흰 신’을 붓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7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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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을 매우 중시했어요. 픽션이지만 최대한 검증했고요. 읽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펜이나 붓 말고도 손과 발에 먹을 묻혀 직접 그리기도 했어요. 먹물을 피처럼 흘리듯 한 학살 장면, 맨발바닥 장면…. 순식간에 부모,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은 사라진 몸에 대한 몸의 기억이잖아요. 손이 묶인 채, 두건이 씌운 채 끌려갈 때의 공포도 상황 연출하며 체감하고자 했습니다.”

흰 신: 여순항쟁 이야기 l 김금숙 지음, 창비, 2만4000원
흰 신: 여순항쟁 이야기 l 김금숙 지음, 창비, 2만4000원

‘흰 신’은 작가와 비슷한 이력의 여성 상아가 아버지의 과거를 뒤늦게 만나가는 여정이라 하겠다. 늦둥이 딸이 대학 졸업 뒤 그림 공부하러 유학길에 오른 지 5년 뒤 아버지는 영면했다. 비극의 ‘역사’가 세대로 계승될 겨를이 없었음을 보여주거니와, 앞세대는 애써 파묻어 버리려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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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순천에서 막일하던 상아의 아버지 김학기는 친구가 입대하고 얼마 뒤 산하를 할퀴는 총소리를 듣게 된다. 제주 4·3 진압 출병을 명령받은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군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것이다. 며칠 만에 패퇴하고 고흥까지 숨어든 봉기군 잔병들에게 감자를 건넨 이가 학기의 누나다. 순천의 학기는 살고, 고흥의 학기 누나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죽는다. (고흥 팔영산 일대가 실제 대표적 학살지다.)

학기는 부모와 다름없던 누나의 생일 선물로 사 간 흰 고무신을 건네지 못했다. 그 학기가 40여년 지난 1990년 대학 입학한 상아에게 ‘데모하면 안 된다’며 사준 것이 또 흰 운동화다. 그러나 상아는 뜻밖에 대학 시위 현장에 있다 백골단한테 맞고 구금된다. “20대에 죽을 목숨이 운이 좋아 더 살”게 됐다던 그 학기조차 그리 치를 떨며 저 멀리서부터 우회하던 데가 경찰서였는데 “딸이 맞아 죽기라도 할까 봐 미친 듯” 찾아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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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봉기군이 여수를 점령하고 주민들에게 배급한 흰 신은 이후 점령군의 표적이 된다. 흰 신 신은 자가 ‘부역자’란 잣대였다. 작품 제목이 ‘흰 신’인 이유이고, ‘흰 신’은 21세기 입때 짓밟히곤 한다. 동시에 작가 후기대로 “주인을 잃은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신”이 상아 세대를 지나 지금 젊은 세대에게 건네지길 기다리는 ‘흰 신’이겠다.

‘시각적 리얼리즘’의 정본을 구축하고 있는 김 작가에게 인터뷰와 현장·자료 취재는 중추적이다.

―생존자가 없지 않은데 인터뷰가 어려웠다고 하셨다.

“주로 말하려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 얘길 듣기가 어려웠어요. (빨갱이, 성폭력 피해자 등으로의) 낙인이 더 심해 여전히 증언을 무서워해요. 인터뷰한 분들의 두가지 말이 자꾸 남아요. ‘죄 없으니 난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 이들의 말, ‘나서지 마라’ ‘없는 듯 살라’는 이후 그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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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작품은 픽션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과거 아닌 것이 드물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터. 게다 그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삶을 추적한 만화 ‘내 친구 김정은’(2024년, 이숲)으로 김 작가는 “작품 출간 뒤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 도서관이나 서점 책을 폐기하라는 항의가 뒤따랐고, 작가의 에스엔에스(SNS)도 혐오 댓글을 피하지 못했다.

김금숙 작가. 창비 제공
김금숙 작가. 창비 제공

―역사물·논픽션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부담이 없겠어요. 그래도 두려움과 흥분으로 어떤 이야기들에 끌려요. 잠을 못 잘 정도로 절 괴롭힙니다. 보면 역사 사건이고, 그 속의 여성, 아이들의 이야기예요.”

개중에서도 이번 ‘흰 신’을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이라고 덕살을 보이는 덴 이유가 있다. 2020년 순천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왜 정작 고향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루지 않느냐”는 청중의 질문을 받은 뒤로부터이겠다. 자료·증언집을 구해 읽고, 2022년 고향 고흥, 24년 여수·순천을 방문하고 인터뷰했다. 그곳을 직접 걸어야 했다. “24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는 동안 주말 없이 한순간도 쉬지 못했어요. 행사차 남미를 다녀온 다음 날도 작업을 했으니까요. 영혼이 항상 붙들렸다고 할까요.” 지난해 말 원고 마감하고선 지난 8월까지 작가는 수정을 더했다.

‘흰 신’은 미국, 스페인, 폴란드 등 6개국에 이미 판권이 팔렸고, 국내와 거의 동시라 할 14일(현지 시각) 프랑스어판이 출간됐다. 독일어판은 내년 초 나온다. 마침 ‘풀’ 독어판(‘Gras’)이 독일 도르트문트 만화상 제2회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2월 방문이 예정된 차다. ‘내 친구 김정은’은 이달 미국판이 출간 예정되어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했다. 35개 언어로 소개되고 한국 최초로 하비상을 받은 작품 “‘풀’로도 못해 본 인터뷰”라며 작가는 웃었다. 미국·캐나다 북투어도 계획되어 있다. 20일 출국길, 작가의 여행 가방엔 바야흐로 ‘여순항쟁 이야기’도 담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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