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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29, 2026

[이진송의 아니 근데]휴대전화·내비도 없이 GO!…좌충우돌 여정이 보여주는 ‘과정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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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중>의 한장면. 유튜브 갈무리

<풍향중>의 한장면. 유튜브 갈무리

악뮤(AKMU)의 이찬혁은 노래했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밈’을 여행에 적용하면, 이렇게도 노래할 수 있겠다. “어느새부터 여행은 안 설레.” 코로나 이후 쏟아진 여행 예능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고, 대형 여행 유튜버들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청년들의 배낭여행이나 퇴사 후 세계여행이 더는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지도 오래다. 한국의 해외여행 자율화는 1989년, 1가구 1차량 시대는 2001년에 이루어졌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동의 자유가 증대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가치는 반비례하는 듯하다. 흥행 중인 영화 <오디세이> 역시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듯, 현대인에게는 낯선 곳으로 떠나기보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기가 더 절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새로운 곳을 향한 호기심과 열망은 문득문득 본능처럼 고개를 쳐든다. 8월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뜬뜬’의 여행 콘텐츠 <풍향중>이 누적 조회수 2000만회를 넘으며 실제로 지역의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중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자 숏폼의 시대에 2시간에 육박하는 영상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풍향중>은 2024년부터 이어진 <풍향고>의 파생작이다. <풍향고>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의 주요 출연진들이 어플과 예약 없이 베트남을 여행하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끌었고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는 시즌 2까지 제작되었다. 연예인이 고생을 해야 재미있다는 야외 예능의 공식처럼, 지도앱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넘쳐나는 여행 예능과 차별화된다는 평을 받았다. 새로운 <풍향중>은 국내 여행을 선택했고 출연진은 <풍향고2>와 같은 지석진, 이성민, 유재석, 양세찬이다. 이들은 여행 당일 아침, 룰렛을 돌려 즉흥적으로 익산 여행을 결정하고 휴대전화와 내비게이션 없이 출발한다. 여행 비용은 출연진이 갹출한 사비를 쓰고, 고속도로 대신 국도와 지방도만을 이용하는 것 등이 또 다른 규칙이다. 이런 제약은 예능적 재미와 함께 낯설고 그리운 감각을 소환한다. 바로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전, 오랫동안 익숙하고 당연했던 삶의 양식과 거기에 스며든 정동이다.

처음에 축척별 지도책을 받았을 때, 양세찬은 낯설어 하고 이성민은 반가워한다. 과거 종이지도를 보며 운전했던 경력이 있는 이성민이 ‘MAP성민’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길을 찾는다. 사실상 <풍향중>은 이성민의 ‘지도 보는 능력’에 의존하여 가능한 기획이다. 이성민은 이제는 의미가 퇴색된 ‘조수석’의 의미를 충실히 수행한다. 종종 운전대를 잡은 유재석과 의견이 충돌하는 동안 뒤에 앉은 양세찬과 지석진이 표지판을 함께 읽으며 힘을 보탠다.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몸의 일부가 되었지만, 내비게이션과 지도앱의 기반인 GPS(위성확인시스템)를 미국이 민간에 개방한 것은 2000년이다. 국내에서는 2005년 전후로 휴대용 단말기가 출시되어, 자동차에 매립형 내비게이션이 쓰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장면에서 “그때는 그랬지”라는 향수를 느끼고, 누군가는 “저렇게도 다닐 수 있다니!”라는 문화 충격을 받는다. 풍향고의 인기 요인은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와 신선함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 데 있다. 그리고 이 낙차는 사라진 가치와 욕구를 되짚어보게 한다.

<풍향중> 포스터. 뜬뜬 제공

<풍향중> 포스터. 뜬뜬 제공

“GPS가 총총한 경로가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화살표가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에는 최단 경로가 우리를 인도한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풍향중>에서는 최선을 다해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도 난데없이 ‘발파 중’인 공사 현장에 도착하고, 바로 옆에 있는 도로에 합류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면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어느 길이 맞는지 함께 의논해야 한다. 이런 불확실함은 기술이 깨끗하게 제거해 버린 변수와 오류, 방황, 막막함, 의외성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 ‘원래’ 인간의 삶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제 지음,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2025)은 기술이 대화의 어색함과 신체적인 한계 같은 것을 “마찰 없이” 매끄럽게 만들고자 하지만, 바로 그 “딱 떨어지지 않는 경험의 조각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휴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휴가 그 자체가 아니라 휴가에 대한 기대였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알고리즘과 인공 지능, 별점 리뷰 등에 아웃소싱한다고 비판한다. 시간을 쉽게 채우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기다림은 설레는 기대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지연이 되었고, 이를 해결하거나 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161~164쪽)

익산행 여정이지만 “익산은 이용당했다”라는 놀림이 있을 만큼 다양한 지역이 <풍향중>에 등장한다. 출연진은 아산에 들러 점심을 먹다가 시민에게 추천을 받고 신정호를 구경하러 가고, ‘수박주스’라는 현수막에 홀려 공주의 수국 축제에 들른다. 표지판을 보고 공세리 성당과 강경에 방문하고, 식당이나 카페는 지역 주민의 추천이나 느낌으로 고른다. 유명하다는 짬뽕을 먹으러 군산에 와 놓고 간짜장을 시킨다. 매 순간 즉흥적인 결정을 하며 출연진은 “약속 있어? 만날 사람 있어?”를 외친다. 여행이니까 쫓기지도, 얽매이지도 말자! “속도보다 풍경이, 목적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빠르게 보면 못 보는 것들” 같은 자막이 따른다. 이 자유로움이 <중향중>의 매력이자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기로 유명한 한국인의 여행 방식에서 슬그머니 이탈하는 맛이다. 여행의 생산성이란 유명한 곳을 얼마나 봤는가, ‘인생샷’을 찍었는가, 자아를 찾았는가(?),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을 먹어봤는가 같은 항목을 포함한다. 책을 출판하거나, 유튜버가 되는 후속 활동도 염두에 둔다. 소위 한국식 여행 스타일에는 맥락이 있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된 효율 최우선주의, 과도한 노동 시간 대비 부족한 여가를 보상받으려는 심리, 고립된 지역성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많은 이동 시간 등이 영향을 끼쳤다. 국내 여행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것도 이런 ‘볼 것 없음, 할 것 없음’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효율과 생산성 외의 선택지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음을 <풍향중>은 잔잔하게 보여준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며 함께 빵과 커피를 먹는 순간을 출연진이 좋아하듯 말이다.

디지털 기술의 배제로 차별성을 확보한 <풍향중>이 여행 예능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부분은 멤버들의 관계성이다. 즐겁게 편집했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또 여행이다. <풍향중>에서도 길을 잃으며 예상 도착 시간은 자꾸 늘어나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파는 식당은 문을 닫았고, 관광지 관람 시간은 끝나버린 일이 이어진다. 그래서 출연진은 더욱 요란하게 웃고 떠들며, 확실하게 역할 분담을 해서 서로의 고충을 덜어주려 한다. 이성민이 지도를 보고, 유재석이 운전하고, 양세찬이 총무와 잔심부름을 맡고, 지석진이 중간중간 엉뚱한 노래를 부르며 휴대전화 없는 지루한 시간을 채운다. <1박 2일>(KBS),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MBC), <꽃보다 청춘>(tvN)처럼 여행 예능에는 권위적이지 않은 연장자,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중간, 빠릿빠릿한 막내 역할이 필요하다. 출연진은 또한 함께 고생한 제작진도 세심하게 챙긴다. 변수와 시행 착오가 가득해서 힘든 여행도 ‘망한 여행’이 아니라 즐거운 추억으로 만드는 과정의 미학이다.

이처럼 <풍향중>의 인기에는 익숙한 관계성을 향한 친밀감, 과거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사람 간의 ‘접촉’과 ‘대면’을 갈망하는 욕구, 효율과 생산성 중심의 여행에 질린 피로감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런 여행에는 자원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숙지해야만, 특정 여행 스타일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풍향중>은 콘텐츠고, 출연진은 연예인이고, 우연히 들른 곳이 모두 맛집이고 관광 명소였다는 행운이 따랐다. 비슷한 시기 <나 혼자 산다>(MBC)에서도 전현무가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났는데, 이는 그가 여러 방송을 통해 혼자서 즉흥적으로 여행한 경험이 많고 카메라가 따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적당한 지점에서 선망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며 자신에게 맞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정도면 족하다.

여정이 모든 서사의 기원인 이유는 결국 인간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이소라 ‘Track 9’) 불리며 처음인 인생을 좌충우돌 경험한다. 모든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죽음이기에 인생의 의미는 얼마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달렸다는 평범하고 진부한 진리. <풍향중>의 특별하지 않은 여정이 많은 이들에게 소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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