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곳이던 공장, 이제 4곳만 남았다...치명적 전염병에 무너진 플로리다 오렌지

외래곤충에 따라온 세균 감염
생산량 95% 감소…업계 괴멸
유전자 편집해 저항력 수천배 높여
주 정부, 4400억 편성 보조금 지급
미국 플로리다주의 상징이자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오렌지 산업이 지난 20년간 이어진 ‘치명적 전염병’의 폭격을 딛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반격에 나섰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환경보호청(EPA)이 최첨단 유전자 편집 및 바이오 기술을 승인하면서, 붕괴 직전에 몰렸던 현지 농가에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실질적인 회복의 희망이 솟아오르고 있다.
플로리다 오렌지 산업을 파탄으로 몰고 간 주범은 일명 ‘시트러스 그리닝(Citrus Greening, 감귤 녹화병)’이다. 맹어지(외래 곤충)인 ‘아시아 감귤 나무이’가 미세한 세균을 옮기며 전파되는 이 병은 오렌지나무의 관다발계를 막아 수분과 영양분 공급을 차단한다. 감염된 나무의 오렌지는 익기도 전에 떨어지거나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지독한 쓴맛을 내게 된다.
이 병이 휩쓸고 간 지난 20년의 피해 규모는 가히 괴멸적이다. 플로리다 오렌지 생산량은 병이 창궐하기 전 대비 95% 감소했다. 지난해에만 전체의 26%에 달하는 6만 에이커(약 243㎢)의 과수원이 문을 닫았으며, 현재 약 50만 에이커(약 2000㎢)의 농지가 방치된 상태다.
연관 산업인 가공업체의 연쇄 파산도 문제다. 1980년대 54곳에 달했던 오렌지 착즙 가공 공장은 현재 단 4곳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오렌지 수송 열차가 끊임없이 오가던 프로스트프루프(Frostproof) 등 주요 생산 지역의 폐공장 부지는 현재 해체된 가공 설비를 파는 고물상으로 변했다. 농가들은 생존을 위해 블루베리, 대나무, 관상용 식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간신히 버텨왔다.
그런데 올해 미국 EPA가 승인한 두 가지 핵심 기술이 플로리다 오렌지를 구원할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
바이오 기업 ‘소일시아(Soilcea)’와 플로리다 대학교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감귤 녹화병 세균에 강력한 저항성을 갖는 뿌리줄기(대목)를 개발했다. 제출된 데이터에 따르면 이 나무는 기존 품종 대비 병원균 저항력이 수천 배 이상 높아 학술적으로 ‘미감염’ 상태에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상업적 목적으로 크리스퍼 편집 작물이 승인된 세계 최초의 사례다.
또 다른 바이오 기업 ‘실벡(Silvec)’은 나무 내에서 금방 분해되어 버리는 기존 항균 단백질(페타이드)의 한계를 극복했다. 식물에 해를 미치지 않는 바이러스를 매개체로 삼아 항균 페타이드를 지속적으로 생성하게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을 적용한 나무는 세균 수치가 90% 이상 감소했으며, 이미 감염된 기존 나무의 줄기에 붙여 치료할 수 있는 패치 형태의 기술도 시험 중이다.
플로리다주 정부는 농업 생태계 재건을 위해 2년간 총 3억 3000만 달러(약 440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편성하고, 저항성 묘목을 구입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미 아그로밀로라(Agromillora) 등 주요 묘목 농장에서는 100만 그루 이상의 신기술 묘목 생산에 착수했으며, 농가들의 사전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년 봄에 식재할 새 저항성 나무에서 수확한 오렌지가 착즙 공장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최소 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수십 년간 쇠퇴한 인프라와 농업 인력이 2년을 더 견뎌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소비자 이탈도 우려를 키운다. 오렌지주스 가격 급등과 대체 음료의 성장으로 인해 오렌지주스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생산량이 회복되더라도 냉담해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다시 사로잡아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술이 비단 오렌지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포도나무를 말라 죽이는 피어스병(Pierce‘s disease)이나 옥수수 괴사병 등 전 세계 농업을 위협하는 식물 전염병을 퇴치할 범용적 무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수십 년 만에 대반전의 발판을 마련한 플로리다의 오렌지 농가가 절멸의 위기를 딛고 부활할 수 있을지 전 세계 농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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