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애요? 아이돌 아니고 총리” 젊은이들이 다카이치 덕질에 빠진 이유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일본 나라현에서 판매되고 있는 총리 굿즈. SNS 갈무리
총리 얼굴을 넣은 과자와 만주부터 양말, 스티커, 볼펜, 문구류까지. 일본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관련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나라현의 한 기념품점 온라인몰에는 ‘사나에짱 굿즈’라는 별도 분류 아래 상품 17종이 올라와 있다. 다카이치 총리를 친근하게 부르는 ‘사나에짱’을 내세운 쿠키와 초콜릿 당고, 라면, 책받침처럼 쓰는 클리어파일, 아크릴 열쇠고리 등이다. 총리 취임을 기념해 만든 홍백 만주는 기업이 3000개를 한꺼번에 구매했고, 판매를 시작한 호텔에서는 하루 만에 20상자가 팔리기도 했다.
아이돌이나 유명인을 응원하듯 총리를 좋아하고 관련 상품을 사는 현상에는 ‘사나카쓰’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다카이치의 이름 ‘사나에’와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관련 상품을 소비하는 활동을 뜻하는 ‘오시카쓰’를 합친 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1일(현지시가) 다카이치 총리 취임 1년을 돌아보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다카이치 총리의 행보를 분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첫 여성 총리로, 남성 중심의 정치권에서 기존 지도자들과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지지층을 넓혔다. 가디언은 그의 직설적인 화법과 적극적인 소셜미디어(SNS) 활동이 기존 정치인들의 아날로그식 소통에 실망한 젊은 유권자들과 접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개별 언론 인터뷰보다 엑스(옛 트위터·X)에 정책을 상세히 설명하는 글을 올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취임 첫 5개월 동안 엑스에 올린 게시물은 370건이었다. 같은 기간 전임 총리였던 이시바 시게루는 57차례, 기시다 후미오는 90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정치인의 메시지를 SNS에서 직접 접하고 공유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이런 방식은 기존 정치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젊은 층의 높은 지지는 올해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후지TV 계열 FNN과 산케이신문이 지난 17~18일 실시한 합동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전체 62.6%, 18~29세에서 70.7%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FNN 조사에서 18~29세 지지율이 92.4%였던 것과 비교하면 낮아졌지만, 젊은 층의 지지율이 전체 평균을 웃도는 양상은 이어졌다.
다카이치 총리가 젊은 세대의 관심을 얻는 방식은 일상적인 취향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언론과 블룸버그통신은 총리가 사용하는 가방과 분홍색 볼펜이 화제가 되고, 주문이 몰린 사례를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K팝 곡에 맞춰 드럼을 연주하거나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셀카를 찍는 모습도 온라인에서 주목받았다.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에 더해, 외교 무대에서 중국에 물러서지 않는 직설적인 모습과 SNS에서 드러나는 친근한 면모가 함께 소비되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관심을 젊은 세대의 일방적인 열광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재단이 지난해 5월 18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7.7%였지만, 정치가 신뢰할 만하고 공정하다고 평가한 응답은 항목별로 10%대에 그쳤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더라도 새로운 지도자에게 기대를 거는 현상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젊은 층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호감을 보이는 배경에는 친근한 이미지뿐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진지함도 자리한다. 24세 지지자 겐시로 가와사키(24)는 블룸버그에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을 마케팅하는 데 정말 능하다”면서 “젊은 세대는 정치인의 이미지 전략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지지자 미쿠 도베(28)는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편, 국가를 이끌 지도자로서의 의지도 보여주는 점이 젊은 층의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인을 아이돌처럼 소비하는 현상은 일본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뉴욕에서는 지난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조란 맘다니를 둘러싸고 젊은 지지자들이 직접 만든 ‘팬캠’과 팬아트가 온라인에 퍼졌다. 팬캠은 아이돌이나 유명인의 영상을 짧게 편집해 음악과 함께 공유하는 콘텐츠다. 미국 매체 와이어드는 지난해 11월 5일 맘다니의 선거운동을 분석하며, 그의 연설과 유세 장면을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뮤지컬 ‘해밀턴’의 노래, 팝 가수 찰리 XCX의 음악 등에 맞춰 편집한 영상이 SNS에서 확산했다고 보도했다. 이 콘텐츠의 상당수는 선거캠프가 아니라 지지자들이 직접 만들었다. 와이어드와 인터뷰한 디지털 미디어 연구자 애슐리 힝크 자비에대 부교수는 젊은 지지자들이 온라인 팬덤에서 익힌 경험을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영상을 편집하고 공유하던 방식이 정치인의 연설과 유세 장면을 알리는 데 쓰인 셈이다.
맘다니의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팬덤이 단순한 온라인 응원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와이어드는 맘다니 선거운동이 자체 제작한 영상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던 창작자들과도 접점을 넓혔다고 전했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관심은 자원봉사와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이어졌다. 젊은 지지자들은 후보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익숙한 음악과 편집 방식으로 재구성해 다른 사람에게 퍼뜨렸다. 단순한 굿즈 소비를 넘어 온라인 창작과 참여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 아이치슈쿠토쿠대의 구보 미나코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정치인과 아이돌을 응원하는 심리적 구조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좋아하는 대상을 검색해 정보를 얻고, 굿즈를 모으며, 관련 장소를 찾는 행위는 모두 ‘오시카쓰’의 일부라는 것이다. 특히 굿즈는 좋아하는 대상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구보 교수는 “SNS를 통해 정치인의 일상을 자주 접하면 친밀감이 커지고, 팬들 사이의 교류가 응원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이 된다”면서도 “다만 정치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투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호감에 그치지 않고 정치인의 생각과 정책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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