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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23, 2026

부모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파친코’ 노아와 2026 청년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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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수는 ‘파친코’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에, 그 아들인 노아에게 한수를 극복하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미래였을지 모른다. 사진은 애플티브이플러스 시리즈 ‘파친코’ 시즌2의 한 장면.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고한수는 ‘파친코’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에, 그 아들인 노아에게 한수를 극복하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미래였을지 모른다. 사진은 애플티브이플러스 시리즈 ‘파친코’ 시즌2의 한 장면.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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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의 읽고사니즘

비전과 가치는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비방만 남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마침내 끝났다. 치열한 접전 끝에 새 당대표가 선출됐지만, 누가 승자가 됐느냐와 별개로 이번 전당대회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본선에 오른 김민석, 송영길, 정청래 세 후보 모두 전당대회 내내 민심보다 당심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입장이 그랬다. 시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명이 오가는 범죄 수사의 문제를 당내 선거에서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모으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에도 후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의 허점을 드러낸 장윤기 사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주목을 받으며 다수 민심은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로 기울었지만,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종래의 폐지 노선을 확고히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총리 시절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보완수사권 존치 입장을 가졌던 김민석 후보가 폐지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렇게 민주당 전대의 한복판에서 검찰 보완수사권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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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기에 이번 선거는 각 후보와 그 계파 구성원들에게는 정치적 명운을 가르는 중대 기로일지 몰라도, 그들의 ‘당심’에 포함되지 않은 다수 시민에게는 초록이 동색인 ‘686 계파 싸움’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을 ‘배신자’ ‘붕어 아이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민심보다 강성 지지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차기 여당 대표로서 이 사회의 미래를 지킬 후보가 아니라 ‘내가 진짜 이재명 대통령을 지킬 후보’임을 어필하려 어제의 동지를 적처럼 공격하고, 자기가 했던 말들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극단적 실용(?)의 선거를 보며 30대 후반의 원외 정치인으로서 암담함과 환멸을 느낀다.

다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여당이 미래 의제를 주도해야 하는데, 그 세대가 986까지 해 먹겠다는 마인드로 가면 다 망한다. 기득권은 물러나고 청년과 미래 세대 전문가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번 8·17 민주당 전당대회에 유일한 30대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보미 후보의 일갈이다. 김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지금의 686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정신에 투철한 기득권 꼰대’라고 거침없이 규정했다. 돈봉투 사건으로 탈당해 당권이 없던 송영길 후보에게 예외적으로 출마 자격을 준 당을 비판하며 ‘청년 박지현에게는 안 되고, 686 송영길은 되는 것이 공정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한 청년들도 모두 낙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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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좌절을 보면서 문득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노아다. 노아는 누구인가. 자신의 친부인 야쿠자 고한수가 만든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사람, 자신의 뿌리와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노아는 어린 시절부터 고한수가 아니라 고결한 목사인 백이삭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오사카에서 성장한 청년이다. 전쟁 중에도 책을 놓지 않는 영리한 모범생인 노아는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일본의 명문인 와세다대학에 진학한다. 고민이던 비싼 학비는 ‘좋은 아저씨’인 고한수의 후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품는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고한수의 친아들이고 그의 돈은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더러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깨달은 노아는 무너진다.

고결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했지만, 자신이 뿌리내린 현실이 그렇지 않음에 좌절한 노아가 선택한 길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도 이름도 버리고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가장하면서 오사카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떠나 파친코 관리인을 하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속인 채 일본인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리고 마치 죗값을 치르듯 선자와 고한수에게 익명으로 계속 돈을 보낸다. 그러나 도망은 영원하지 않다. 그의 뿌리는 집요하게 자신을 찾아온다. 그가 집을 떠난 지 16년이 되던 해에 고한수는 마침내 노아의 행방을 찾아내고, 선자는 아들을 찾아간다. 어머니를 만난 다음날, 노아는 권총 자살로 마침내 가족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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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읽고 나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노아는 왜 고한수와 싸우는 미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노아는 어머니 선자에게 따진다. “어떻게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만들 수 있겠어요? 당신이 내 삶을 빼앗았어요. 난 더 이상 내가 아니에요.” 일평생을 백이삭처럼 고결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뿌리부터 그 노력을 부정당한 노아의 깊은 좌절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고한수는 ‘파친코’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에, 노아에게 한수를 극복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꿈조차 꿀 수 없는 미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진정 다르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말이다. 고한수는 고한수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세상과 치고받으며 고한수가 되었다. 백노아에게도 백노아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고달픈 싸움의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나가 아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것은 686 기득권이다. 686 기득권이 만들어온 이 세계 위에서 태어난 많은 청년들은 그들을 냉소하거나 외면한다. 그렇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의 권력을 외면한다. 외면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도망치는 것은 때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나를 포함한 현재의 청년은 앞선 세대의 피땀이 만들어낸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거나 죽지 않고 당당히 맞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한수에게 당당히 맞서 그를 뛰어넘는 노아의 세계를, 우리는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강고한 기득권에 맞서 계속 싸우기를 선택하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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