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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15, 2026

세상을 향해 처음 던진 56초간의 말 [금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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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위원회가 입주한 곳이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위원회가 입주한 곳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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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여사님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필연이었다.

그날 오후 3시에 간담회가 잡혀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기로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S와 반민특위 강제해산 사건 유족들이 만나는 자리라고 했다. 3월24일, 포괄적 과거사 조사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 3기가 새로 출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서울 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 5·6층.* 그곳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있었다. 이 위원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 피해를 구제받는 곳이다. 피해 신청을 받아 위원회 조사관들이 사건을 조사하고 사실이 확인되면 ‘진실규명’ 판정을 한다. 이 판정을 받으면 법원에서 배·보상을 받는 데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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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상설 기관이 아니다. 특별법을 만들어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그래서 위원회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나는 사회부 기자로서 이 위원회를 4년째 출입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 출입기간이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젊은 신참 기자들은 금방 출입처를 순환했으나, 나는 그러기 힘든 형편이었다. 그러니까 여사님과는 어차피 언젠가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처음 위원회를 출입하기 시작하던 2023년 4월에는 위원장이 K였다. 그는 대통령 윤석열이 지명해 임명한 사람이었다. 윤석열의 임기는 2027년 5월까지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1000명 넘는 군인들을 그곳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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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원회를 오가며 만난 사람들은 농담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이 가장 잘못한 일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일이다. 윤석열이 가장 잘한 일은 비상계엄을 어설프게 선포해 정권을 내준 일이다.” 윤석열이 그렇게 허망하게 물러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가 지명한 사람이 위원장 자리에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을 계속했다면 반민특위 유족들이 위원회를 찾아와 위원장과 만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후 3시가 되기 전 6층에 있는 위원회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유족 10여명과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앉아있었다. 위원장은 매일 이렇게 하루에 한두 번씩 사건 조사를 요청하는 피해자나 유족들과 면담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갓 출범한 위원회는 국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평생 잊지 못하던 이들에게 크나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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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친위 쿠데타 사건이라고 저희는 규정합니다. 12·3 내란의 뿌리가 반민특위 해체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반민특위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인 L이 인사말을 했다.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준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친일파 청산의 깃발을 내걸고 제헌국회 내에 설치된 기구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가만두지 않았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목을 졸랐다. 12·3 비상계엄 역시 행정부가 입법부의 목을 조른 사건이었다.

진실화해위원장 S도 인사말을 했다. “반민특위는 1945년 이후 최초의 과거사위원회라 할 수 있어요.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된 것은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반민특위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뿌리였고, 반민특위 해체는 12·3 비상계엄의 뿌리같았다.

여사님은 유족들 가운데 말없이 앉아있었다. 사회를 본 위원회 직원이 “다른 분들도 한 말씀씩 해달라”며 청했다. 여사님이 앞에 있는 마이크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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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는 정말로 억울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요. 그 당시에 아버지는 납치당해 가셨고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찾아왔다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아기를 업은 어머니를 연행해 갔습니다. 아버지의 행방만 물어보고 곧 돌려보낸다고. 우리가 울면서 따라가니깐 금방 올 거니까는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왔는데 한 2~3일 지나고 아기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3살부터 19살까지 우리가 7남매인데 아버지도 안 계신 상태에서 어머니까지 그렇게 돼서 정말 지옥 같은 세상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억울한 일을 지금이라도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발언 시간은 불과 56초였다. S가 물었다. “어떤 분 따님이신가요?” L이 대신 답했다. “아, 강욱중 의원 따님이십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민특위 사건 유족은 아니었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진실화해위원회는 현재 같은 건물에서 층을 옮겨 19·20층에 입주해 있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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