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앨리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오보, 요즘 바빠서?…김여정 군사분계선 시찰 날짜 틀린 듯
박정천 북한 국방성 고문이 지난 21일 남부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의 주요 지점들을 리일환 노동당 비서와 김여정 당 부장, 인민군 총참모부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시찰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오보는 전 세계 기자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불명예 중 하나입니다.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의 기자일지라도 오보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정도는 다르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날짜를 잘못 표기하는 오보를 냈다고 스스로 인정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통신은 북한의 국영통신사이자 대외 매체로,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을 북한 주민이 아닌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신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과 군 실세인 박정천 국방성 고문(인민군 원수)이 “10월 20일 남부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의 주요 지점들을 현지 시찰하였다”고 21일 오후 3시20분쯤 보도했습니다.
통신이 이로부터 4시간여 뒤 보도한 김 부장의 담화에는 “조선중앙통신은 보도기사를 발표하면서 날짜를 오기하였다. 나는 전날이 아닌 바로 오늘 21일 새벽에 국경의 여러 곳을 다녀왔다”는 대목이 담겼습니다. 김 부장의 담화에서 통신의 오보를 공개하고, 담화를 통해 오보를 바로잡기까지 한 것입니다.
한국군 당국은 지난 21일 김 부장의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현장시찰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 김 부장의 서부전선 현장시찰은 21일 오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부 당국자가 “날짜 오기 정정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조치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다만 첫 보도에서 통신의 날짜 오기가 의도적이었는지, 김 부장의 담화를 통해 날짜 오기를 왜 수정했는지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내 북한·군 전문가들은 여러 가설을 전제로 북한의 날짜 오기 정정 의도를 가늠해보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매체도 실수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체제에서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빈틈이 드러나는 일이 적지 않았고,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 이후 북한의 선전 매체 또한 업무가 많아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2020년 실세 중 한 명인 조용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사진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다”며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일종의 ‘방송사고’처럼 여겨질 만한 북한 매체의 보도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슈가 불거지면 일일이 남측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도 김정은 체제의 특징인데, 그러다 보면 북한 매체도 업무가 많아지면서 실수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 부장은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DMZ 지뢰 폭발 사고 이후 지난 22일까지 총 10차례 담화, 입장 등 대외 메시지를 냈습니다. 김 부장의 메시지는 대부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됩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또한 “북한의 정부 시스템 또한 완벽할 수 없다”며 “요즘 MDL 인근의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실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임 교수는 한국 정부에서 날씨 등 기상정보나 공개 가능한 군사정보를 근거로 “북한이 공개한 김 부장의 현장시찰 날짜가 사실과 다르다”고 언급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김 부장이 MDL 인근을 시찰한 것은 사실 지난 21일”이라는 식의 한국 정부 반박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통신의 날짜 오기를 “선전 라인이 그만큼 급하게 돌아갔다는 방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부장의 시찰이 그날 ‘적어도 두 곳’에서 있었던 경고사격과 같은 날임을 못 박아, 사전 연출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대한 당일 신속한 지도부의 대응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김 부장은 지난 21일 오후 7시30분쯤 낸 담화에서 “무장 괴한들은 오늘도 적어도 두곳에서 확성기 경고 도발 방송과 경고사격을 가하며 갈개였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김 부장의 시찰 날짜를 굳이 정정한 것은 한국군의 경고사격이 있던 날을 콕 집어 김 부장이 직접 현장을 찾았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가 접경지의 군사적 긴장 상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일각에선 북한의 메시지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하면 오히려 오판의 위험이 커질 수 있어, 통신의 이번 날짜 오기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두진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는 “북한 매체에서 나오는 주요 인사의 동향이나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며 “해석의 해석이 꼬리를 물다 보면 군 당국이나 정부가 북한의 움직임을 오판할 수 있는 위험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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