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8월 연세대…말하고 싶은, 말할 수 없는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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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996년 5월 전북대에서 열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4기 출범식은 축제였다. 캠퍼스를 물들인 펼침막과 각종 문화행사, 음악회에는 도지사와 국회의원, 전주 시민과 환경미화원이 함께했다. 전국에서 온 대학생 4만여명이 참석한 행사는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석달 뒤 연세대에서 열린 7차 범민족대회와 통일대축전 역시 비슷하게 시작됐다. 해마다 열리던 행사와 축제.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르게 전개되었다. 정부의 원천 봉쇄와 주최 쪽의 개최 강행. 학생들의 캠퍼스 진입은 간간이 허용되었지만 공식 행사가 종료된 8월14일 이후 나가는 이들은 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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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이 막힌 학생들은 이후 이과관과 종합관 두곳으로 토끼몰이 당한 뒤 고립되었다. 헬리콥터 11대가 형광 최루액을 분사하며 이들을 위협했고, 최루탄은 45도가 아닌 직사로 발사되었다. 17일부터는 종합관에 전기와 물이 끊겼고, 음식물과 의약품 반입도 차단됐다. 19일 한겨레 김진수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경찰에 가로막혀 생리대 상자를 부여잡고 우는 엄마들이 보인다. 19일 경찰은 실탄 사용 방침을 발표한다.
20일 진압 뒤 연행된 학생은 총 5848명. 역대 단일 시위 최대 연행자 기록이다. 학생들은 검거 과정에서 엄청나게 맞았고, 여학생 다수가 성추행을 당했다. 진압 중 시위대가 던진 보도블록에 머리를 맞아 전경이 사망했다. 고 김종희 이경도 96학번, 청주대 사회학과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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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연세대 사건은 김영삼 정권이 다음해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학생들의 폭력성과 학생운동 내 종북 세력의 존재를 강조하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유도한 사건이다. 하지만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도 “한총련은 해산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고, 국정감사에서 경찰의 조직적 성추행을 지적했던 초선 추미애 의원의 발언은 여당 의원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언론도 학생들을 외면했다. 불타는 신촌과 남총련의 폭력성을 강조한 보도는 선정적이고 지역 차별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왜 학생들이 연세대에 남아 시위를 계속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한겨레만이 그나마 인권유린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지만, 이 역시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취재기자들의 증언 등을 종합했을 때 손석춘 기자 등 편집국 내부에서도 ‘정부의 색깔몰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총련 노선에 찬성할 수 없다’는 기자들의 견해가 우세하며 거리를 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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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뒤 지난 13일, 연세대 종합관 옆 건물에서는 연세대 사건을 다룬 첫 학술 심포지엄 ‘말하고 싶은, 말할 수 없는’이 열렸다. 행사를 기획한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연세대 사건에서 낙인과 고립의 폭력이 개인적인 침묵과 망각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해당 사건을 지워지고 소거된 상태로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침묵이 다양한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학생운동이 이후 망했다’는 담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6년 이후 기존 학생운동은 붕괴했지만, 이 시기 여성주의 물결과 더불어 대학 내 성소수자 운동, 장애 인권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학생운동이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기성세대가 우리를 버렸다’는 담론도 그렇다. 당시 연행된 학생은 1986년 건국대 사태보다 훨씬 많았지만, 구속된 학생 수는 훨씬 적었다. 소신 있는 법관들의 영장 기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한 연세대 교수는 1996년 9월2일치 배포 금지된 연세춘추에 “학생들이 자진 해산을 하겠다는데도 끝까지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방법을 통해서 진압을 해야만 했는가”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박물관 직원들은 현장에서 학생들이 쓴 일기와 편지, 펼침막과 대자보를 빠짐없이 모아 상자에 넣었다(박물관 전시는 다음달 12일까지 계속된다).
연세대 사건의 90년대 학번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과 달리 정치적 정당성을 쉽게 주장할 수 없었고, 승리의 경험을 공유할 수 없었기에 ‘우리’가 아닌 ‘나’로 존재했다. 김 교수는 이런 모호함이 단일 서사로 수렴되는 폭력성을 극복할 힘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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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청중에는 30년 전 연세대에서 연행된 96학번 동기도 있었다. 끝나고 백양로를 걸으며 그가 말했다. “내게도 96년 8월은 우울과 패배로 남아 있었어. 뭘 모르는 신입생이 거기까지 가서 갖은 고생을 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왔거든. 그게 나의 서사인 거지. 1996년의 나를 안아주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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