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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23, 2026

호주서 51년 태권도 외길, 75살 사범…“새 기술 개발해야 산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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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에서 51년째 태권도를 지도해온 사범 김명만씨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서수진 제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51년째 태권도를 지도해온 사범 김명만씨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서수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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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시드니의 외곽 마을에 그가 처음으로 태권도 수업을 열었을 때 주민들 대부분은 그게 뭔지조차 몰랐다. 주먹을 쓰는 무술에 익숙한 이들에게 공중에 발을 뻗는 태권도는 낯설기만 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인기를 끌던 쿵후 사범이 대련을 신청해 왔다. 뜨내기 무술인이 얻어터지는 꼴을 보려는 사람들로 장내가 떠들썩했다. 상대는 그보다 덩치가 큰 쿵후인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십킬로그램은 더 나갈 것 같았다. 상대가 큰 몸을 움직이다 지치기를 기다렸다. 빈틈을 노려 다리를 직선으로 꽂았다. 그의 뒤차기에 배를 맞고 넘어진 상대가 일어나자마자 돌려차기로 머리를 가격했다. 그는 몸집이 작은 만큼 빨랐고, 연이은 공격에 지친 상대가 항복하기까지 한대도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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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듣고 다른 쿵후 사범과 가라테 사범이 찾아왔고, 그는 네번의 공식 대련을 치렀다.

“내가 한번이라도 졌으면 여기서 태권도 수업 못 했어요.”

김명만은 모두 이겼다. 창문 너머로 구경하던 옆 반의 가라테 학생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그의 수업으로 넘어왔다. 그로부터 51년이 지난 지금, 클럽에는 가라테 수업과 쿵후 수업이 모두 사라지고 그의 태권도 수업만 남았다. 75살의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다섯살 어린아이부터 예순살 성인까지, 초심자부터 유단자까지 백명이 넘는 학생을 직접 가르친다.

김명만씨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오십여명의 학생들이 태권도를 배우는 모습. 서수진 제공
김명만씨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오십여명의 학생들이 태권도를 배우는 모습. 서수진 제공

한차례 인터뷰를 마치고 태권도 도장에 초대를 받았다. 토요일 오전, 클럽(식당과 술집, 게임장이 있는 비영리 대형 주민센터)의 커다란 홀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오십여명의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허리에도 미치지 않는 작은 아이들이 맨 앞줄에 있었고, 맨 뒤에는 검은띠 유단자들이 있었다. 한인 교민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언뜻 살펴봐도 한인은 5%가 안 돼 보였다.

그가 “준비! 차렷!”이라고 외치자 학생들이 몸을 바로 하고 김씨에게 집중했다.

“하나! 둘! 셋!”

그의 한국어 구령에 따라 학생들이 주먹을 내질렀다. 김씨가 한 다리를 곧게 뻗어 공중에 차올리는 시범을 보이자 태극기와 오스트레일리아 국기가 나란히 붙은 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일제히 다리를 뻗어 올렸다. 타국에 사는 한국인으로 어딘지 뭉클해지는 장면이었다.

김씨는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자세를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그렇지!”라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시범을 보이며 아이의 엉덩이를 찼을 때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씩 짝을 지어 대련을 할 때도 아이들은 자주 웃었다. 한국어로 우렁차게 “사범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밝았다.

김씨 역시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경남 진해 웅천면의 시골 마을에는 태권도장이 없었다. 대신 동네 형이 태권도를 가르쳐주었다. 시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집 앞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공부가 싫어서 태권도를 열심히 했다고 그는 웃었다. 고등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고 경남 대표로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군대에서 태권도 교관을 맡으며 해외 귀빈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이면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제대 뒤에는 일년간 취직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다 가난했어요. 전후였으니까. 게다가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대학도 안 갔으니 학연이 있나 지연이 있나 아무것도 없어서 취직이 안 되더라고. 진해 제황산 공원에 365계단이 있어요. 거기를 매일 오르면서 운동을 했지. 종교가 없었는데 공원에서 보이는 십자가를 보면서 ‘하느님 저도 외국에 내보내주십시오’ 기도를 했어요. 하루도 안 빼놓고.”

가난하던 고향 선배가 미국에 다녀오더니 이삼십명을 모아서 자장면을 사주는 데 감격해 생긴 소원이었다. 당시 최고급 음식이던 자장면에 야끼만두까지 사주었다고 했다.

기도가 통했을까. 11개월이 지나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태권도 시범 공연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다. 김씨는 그 공연을 계기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오게 됐다.

김명만씨가 태권도를 지도하는 모습. 서수진 제공
김명만씨가 태권도를 지도하는 모습. 서수진 제공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 왔을 때는 젊고 말 그대로 날아다니던 때였는데도 오스트레일리아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체격이나 체력에서 훨씬 앞서 있어서였다. 그는 지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에 달렸고, 태권도 수업이 없을 때도 도장에 나가 운동을 했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체력을 기르기 위한 그의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그것도 낯선 무술 선생으로 자리 잡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믿었던 관장에게 영주권 사기도 당했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다른 태권도 사범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했다.

“태권도는 파벌이 심해요. 학연과 인맥에 의지하지요. 대학도 안 나온 내가 여기 와서 도장을 차리고 학생이 몰려드니까 시기·질투가 심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시달릴 때 제자들은 김씨를 끝까지 신뢰했다. 무도인으로서 예를 가르치는 태권도 사범을 믿었던 것이다. 영주권 사기를 당해 당장 출국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그에게서 태권도를 배우던 그리스인이었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김씨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김씨의 처지를 알게 된 뒤에는 자기 집에서 머물라고 했고, 자신이 운영하는 가구점에서 일자리까지 내주었다.

수중에 돈 한푼 없던 김씨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주권을 따기 위해 5년간 용접 공장에서 일할 때는 너무 열심히 일해서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일주일을 주면 사흘 만에 끝냈고, 이주를 주면 일주일 만에 끝냈다. 영주권을 따고 나서는 새벽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칠십채의 집을 뛰어다니며 우유를 배달했다. 병으로 우유를 먹던 시절이라 양손에 열두병씩을 쇠 바구니에 들고 다니면 땀에 흠뻑 젖었다. 그 뒤로는 택시 기사를 했다.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태권도 사범 일을 쉰 적은 없었다. 가구점이나 용접 공장에서 일할 때는 퇴근 후에 도장으로 달려갔고, 우유 배달과 택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천명의 학생이 그를 거쳐 갔다. 수백명의 유단자를 길러냈다. 자신의 도장도 성공적으로 일구었고, 아들까지 사범을 하고 있다. 75살이 된 지금, 이쯤 하면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여길 법도 한데 여전히 현장을 떠나지 않는 김씨에게 목표가 무어냐고 물었다.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목표는 하나예요. 나한테 배운 제자들이 사범이 되는 거죠. 제자들도 나처럼 태권도를 가르쳐서 태권도가 이어지는 게 목표예요.”

내가 지켜본 수업의 말미에 수준에 따라 그룹을 나누어 검은띠 유단자들이 직접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김씨도 쉬지 않고 한 그룹을 맡았다. 수업이 끝났을 때는 학생들이 유단자들에게 몸을 돌려서 “사범님 수고하셨습니다. 사범님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외치게 했다. 수업이 끝나자 유단자 몇명이 김씨에게 다가와 따로 인사를 건넸다. 김씨는 내게 그들을 한명 한명 소개해주었다. 20년을 가르친 사범은 따로 도장을 차렸고, 10년을 배운 부녀는 딸이 꼬마일 때부터 배웠는데 이렇게나 컸다고 했다.

태권도가 이어지려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김씨는 여러번 강조했다. 머물러 있어서는 퇴보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태권도가 사양 산업이 되었어요.”

전에는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매일 있었는데 이제는 빠져나가는 사람이 더 많다. 유에프시(UFC)나 브라질 주짓수 같은 신흥 무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십년 이상 김씨에게서 배운 유단자 중 스물일곱명이 다른 무술을 배우겠다고 떠났다. 모두 작년 한해에 벌어진 일이다. 51년 동안 지켜온 태권도가 다른 무술에 밀리는 것이 김씨는 속이 쓰리다.

“지난해 국기원 행사에 갔는데 제가 50년 전에 하던 품새를 반복하더군요. 그래서는 신진 무술과 붙어서 이길 수 없어요. 사람들이 떠나는 게 당연하죠. 무술은 싸워서 제압하는 거예요. 태권도가 유에프시나 주짓수와 붙어서 이길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다른 무술의 기술을 접목하고, 신기술의 개발에 힘써야죠. 태권도는 다리 기술이 발전했지만 주먹 기술은 많이 없어요. 그게 약점이에요. 싸움에서 주먹을 안 쓸 수 있나요? 주먹을 쓰는 것을 개발해야 해요. 필요하다면 다른 무술에서 적극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는 수업에서 품새보다 신기술을 포함한 호신술과 일보대련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그는 품새만으로는 실전에서 패배한다고 본다. 내가 본 수업에서도 그는 성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호신술을 가르쳤다. 괴한이 팔을 잡을 경우, 손날을 세워서 상대의 팔 안쪽을 공격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팔 바깥쪽의 뼈나 근육은 단단하지만 안쪽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팔의 바깥쪽과 안쪽을 비교하도록 시키자 학생들은 그 차이에 놀라며 진지하게 끄덕였다.

그는 성인 학생들에게는 상대의 팔을 잡아 비트는 법을 가르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주먹을 빠르게 내지르는 법을 가르쳤다. 학생들이 실전에서 태권도 기술을 사용하기 바란다고 했다.

75살의 태권도 사범 김씨는 태권도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다른 무술의 기술을 배우고 신기술을 연마해 태권도가 유에프시나 주짓수와 맞붙어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제 앞으로의 꿈이 태권도로 신흥 무술하고 일대일로 붙어서 이기는 거예요. 저는 자신 있어요.”

그의 말은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 바람 소리가 났다. 몸을 돌려 발차기를 선보이자 학생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51년 전, 그는 한번이라도 지면 이곳에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싸웠다. 75살인 지금도 그는 여전히 지지 않기 위해 훈련하고 있다.

서수진 작가
서수진 작가

서수진 작가

서수진 작가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 ‘올리앤더’ ‘다정한 이웃’, 중편소설 ‘유진과 데이브’, 단편소설집 ‘골드러시’를 출간했다. 2020년 ‘한겨레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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