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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영장류가 연 5500만년 인류 진화사…척박한 환경 해결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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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라는 물증을 기준으로 삼으면 인류 진화사의 첫 페이지는 5500만년 전 영장류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된다. Smithsonian Institution
화석이라는 물증을 기준으로 삼으면 인류 진화사의 첫 페이지는 5500만년 전 영장류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된다. Smithsonian I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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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억년으로 추정하는 지구 생명 역사의 나무에서 인류의 뿌리는 얼마나 깊이 박혀 있을까?

무엇을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인류의 뿌리가 닿는 곳은 가까이는 호모 사피엔스, 멀게는 포유류나 척추동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는 관점을 따라가 보면, 인류 진화사의 기점은 영장류의 출현으로 볼 수 있다. 인간과 원숭이, 유인원 무리까지 하나로 묶어 영장류로 분류한 이는 현대 생물 분류학의 기틀을 닦은 18세기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폰 린네다. 영장류의 영어 이름 ‘프라이메이트’(Primates)는 포유동물 중 으뜸가는 무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한 세기 전에 활동했던 그는 형태학적 특징을 분류 기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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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장류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몇 가지 핵심 형질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입체적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앞쪽을 향해 있는 눈, 물건을 움켜쥘 수 있게 해주는 엄지와 네 손가락 구조의 손은 나무 위에서 살던 작은 포유류 단계에서 이미 뚜렷한 원형을 드러냈다. 몸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뇌 역시, 비록 지금처럼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이 시기부터 이미 그 경향이 싹트고 있었다.

영장류가 가진 인간의 중요한 세가지 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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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초의 영장류가 등장한 시점은 언제일까? 분석 기준에 따라 견해가 갈린다.

첫째 DNA 돌연변이 속도(분자시계)를 역추적해 분석하는 유전학에선 영장류가 공룡 멸종 훨씬 전인 8500만년 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반면 화석 기록상 영장류의 특징이 뚜렷한 최초의 화석들이 나타난 시점은 5500만년 전부터다. 공룡이 사라지고 10만년 뒤 북미에 살았던 푸르가토리우스가 영장류와 가까운 친척으로 꼽히지만, 이를 '진짜 영장류'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화석이라는 물증을 기준으로 삼으면 인류 진화사의 첫 장은 5500만년 전 시작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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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지구에는 ‘팔레오세-에오세 최대온난기’(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or PETM)라는 이름의 이상 고온기가 찾아왔다. 이로 인해 숲이 극지대까지 퍼져 영장류에 광대한 서식지를 제공했다.

최초의 영장류 가운데 하나인 5500만년 전의 아르키케부스 아킬레스(왼쪽)와 1700만년 전에 살았던 유인원 마스리피테쿠스 모그라엔시스 복원도. 중국과학원, Hesham Sallam 제공
최초의 영장류 가운데 하나인 5500만년 전의 아르키케부스 아킬레스(왼쪽)와 1700만년 전에 살았던 유인원 마스리피테쿠스 모그라엔시스 복원도. 중국과학원, Hesham Sallam 제공

그러다 3천만~25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영장류 일부가 유인원으로 진화했다. 분자시계로 역산한 진화 시점은 3천만년이지만, 화석으로는 탄자니아에서 발굴된 2500만년 전 루크와피테쿠스가 가장 오래된 유인원으로 꼽힌다.

2천만~1500만년 전엔 소형 유인원(긴팔원숭이과)과 대형 유인원(사람과, Hominidae)이 갈라져 나왔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1700만년 전 마스리피테쿠스는 현생 유인원 전체의 공통 조상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기후 변화로 초원지대가 확대되자 일부 유인원들은 유라시아로 건너가 별도의 진화 경로를 밟아갔다. 하지만 유인원 집단 중 인간에 가장 가까운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같은 대형 유인원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서식지로 삼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700만년 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흉상. greyloch/Flickr/CC BY SA 2.0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700만년 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흉상. greyloch/Flickr/CC BY SA 2.0

700만년 전 직립보행이 안겨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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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이 침팬지·보노보 계통과 달리,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서 다니기 시작한 시기, 즉 사람족(호미닌)이 출현한 시기는 600만~700만년 전이다.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는 유전자 증거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약 99% 일치한다. 나머지 1%는 계통이 갈라진 후 유전자 돌연변이가 쌓여 누적된 것이다. 이 분자시계를 거꾸로 돌려 보면, 둘 사이의 유전적 거리가 사라지는 시점이 600만~700만년 전이다.

둘째는 화석 증거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견된 600만년 전의 화석 오로린 투게넨시스 유골에서는 매우 뚜렷한 직립보행 증거가 나왔다. 그런데 차드에서 발견된 700만년 전 화석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를 둘러싸고선 논쟁이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 뉴욕대 연구진은 3차원 형태계측 등을 이용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사헬란트로푸스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 발표했다.

두 발 직립보행은 호미닌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했다. 기후 변화로 밀림이 초원으로 변하면서 더 멀리 보고, 더 적은 에너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통적 설명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화석 모형. 런던자연사박물관 제공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화석 모형. 런던자연사박물관 제공

사람속 출현 직전에 나타난 ‘루시’

400만년 전에 이르면 한때 교과서에서 최초의 인류 직계 조상 화석으로 설명하기도 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여러 종이 아프리카 각지에 폭넓게 분포했다. 뇌는 작고 팔은 길어 나무 타기에 유리한 유인원의 특징을 간직했지만, 골격 구조는 두 발 보행에 적합하게 바뀌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 흔적도 있다. 1974년엔 ‘루시’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32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루시란 이름은 발견 당일 열린 자축 행사에서 누군가 틀어놓은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 직계 집단인 사람속(호모)이 등장하기 직전에 살았던 마지막 호미닌 집단이다. 학계에선 사람속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한 집단에서 진화했을 것으로 본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170만년 전의 올도완 석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170만년 전의 올도완 석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도구를 제작하는 인간 ‘호모 하빌리스’

280만~250만년 전에 이르면 아프리카에서 인류 직계 조상인 사람속이 등장한다. 사람속의 가장 큰 특징은 큰 뇌와 체계적인 도구 제작이다. 최초의 사람속으로 인정받는 호모 하빌리스는 ‘손재주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공교롭게도 사람속의 등장 시점은 지구 기후사의 큰 전환점과 맞물린다. 258만년 전 빙하기의 시작과 함께 북반구에 대규모 빙상이 확장되면서 지구 기후가 급격히 건조해졌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날아든 바람먼지가 급증했다. 대륙 전역이 메마르며 밀림이 초원으로 바뀌어가던 이 시기에 사람속이 등장했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호모 하빌리스 화석 주변엔 돌을 깨서 만든 올도완 석기가 함께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의 뇌 용량은 600~800cc로 이전의 고인류에 비해 50% 이상 커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사람속 화석은 에티오피아 레디게라루에서 나온 약 280만년 전 아래턱뼈와 치아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는 케냐에서 나온 330만년 전 로메크위 석기라는 점이다. 이 시기 아프리카에는 아직 사람속이 존재하지 않았다. 도구 제작은 사람만의 특성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호미닌 집단에서 이미 시작됐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로메크위 석기는 돌끼리 부딪쳐 조각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만든 조잡한 형태다.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지피고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런던자연사박물관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지피고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런던자연사박물관

호모 에렉투스, 최초로 유라시아 진출

약 20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는 뇌가 더 커졌고 팔은 짧아지고 다리는 길어져 현생 인류에 훨씬 가까운 체형을 갖췄다.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년 전 처음으로 아프리카 밖 유라시아로 진출한 집단이다. 조지아에선 180만년 전 화석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선 170만~160만년 전 화석이 발견됐다. 자바섬에선 10만8천년 전 호모 에렉투스까지 발견됐다.

170만년 전에는 눈물 방울 모양의 주먹도끼가 특징인 아슐리안 석기가 등장했다. 올도완 석기보다 제작이 까다로운 이 도구는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에서 불을 “언어를 제외하고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불의 사용은 인간의 뇌 발달을 이끈 결정적 사건으로 꼽힌다. 음식을 불에 익혀 먹기 시작하자 소화력이 높아져 뇌 발달에 필요한 영양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불은 또 따스한 온기로 몸을 보호해주고 뜨거운 열기로 포식자의 격을 막아줬을 것이다. 최근엔 해가 진 뒤 피운 모닥불 앞에 마주 앉아 소통한 시간이 언어 탄생을 촉발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나왔다.

인류는 언제부터 불을 다룰 줄 알았을까? 불을 피운 가장 오래된 증거는 영국에서 발견된 40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서 나왔다. 불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칼라하리사막 원더워크 동굴에서 발견됐다. 100만년 전으로 처음 보고됐던 이 동굴의 불 사용 증거 시점이 최근 새 분석을 통해 최대 18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700만년 전 분화한 사람족(호미닌) 집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700만년 전 분화한 사람족(호미닌) 집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이다.

700만년 호미닌 역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30만년 전 마침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제벨 이르후드 유적에서 두개골·턱뼈·치아 등 화석과 석기, 사냥한 동물 뼈 등이 출토됐다. 남아프리카 플로리스바드 두개골(25만9000년 전), 에티오피아 오모 키비시(19만5000년 전) 화석 등이 뒤를 잇는 것으로 보아, 초기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전역에 분포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라시아에는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두 종의 사람속 집단,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터전을 잡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보다 훨씬 더 다부지고 단단한 체격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일대에 분포해 살았다. 데니소바인은 주로 시베리아, 티베트 고원, 동남아시아를 주된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두 고인류 집단은 각각 4만년 전, 3만~5만년 전 멸종하고 오늘날 남은 호미닌은 현생 인류가 유일하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에겐 ‘동물계, 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 호모 사피엔스종’이라는 고유한 식별표가 붙게 됐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 인류보다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데니소바인으로 확인된 ‘호모 롱기’의 생활 상상도. 허베이지질대 제공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 인류보다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데니소바인으로 확인된 ‘호모 롱기’의 생활 상상도. 허베이지질대 제공

마지막 공통조상의 생존 시기는?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공유하는 마지막 공통조상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세 집단의 유전체를 비교한 분석은 마지막 공통조상의 생존 시기를 70만~50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모로코에서 발견된 77만3천년 전 화석은 현생 인류·네안데르탈인의 특징과 함께 훨씬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어, 더 이른 시기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주류 진화 경로에서 다소 이탈한 존재도 있었다. 남아프리카 라이징스타 동굴에서 확인된 호모 날레디(33만5000~23만6000년 전)는 늦은 시기에 살았음에도 뇌가 매우 작았다. 그런데도 불로 음식을 조리하고 동굴 벽에 무늬를 새겼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는 ‘호빗’이라는 별칭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19만~5만년 전)가 발견됐다. 키가 1m 남짓한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고립된 섬 환경에 적응하면서 체구가 작아진 것으로 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각지로 이주한 경로. 위키미디어 코먼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각지로 이주한 경로. 위키미디어 코먼스

10만년 전, 아라비아반도 거쳐 유라시아로

오늘날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육지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계기가 된 호모 사피엔스의 아프리카 탈출은 10만~5만년 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아라비아반도가 관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유라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대체해갔다. 오늘날 비아프리카계인들의 몸에는 이들과의 이종교배가 남긴 유전자가 남아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는 전체의 2% 안팎, 데니소비안이 남긴 유전체는 이보다 더 적은 것으로 추정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바다를 건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한 건 6만5천년 전, 러시아 극동지방의 얼어붙은 육로를 건너 북미대륙에 도착한 건 3만년 전이었다. 1만4천년 전엔 파나마 지협을 지나 남아메리카까지 진출했다.

인간의 가장 경이로운 특징 중 하나인 언어의 기원은 인간 진화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 가운데 하나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를 통해 획득한 특유의 후두(성대가 있는 부위) 구조, 5만년 전 일어난 뇌에서의 인지 기능 폭발 같은 전통적 가설과 함께 최근엔 인류의 지리적 분산이 시작된 13만5천년 전 이전에 언어가 등장했을 것이라는 유전학적 분석이 등장하는 등 여러 가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란에서 발견된 5000년 전의 원시 문자 점토판. 밭의 작물 수확량이 기록돼 있다. 옥스퍼드대 제공
이란에서 발견된 5000년 전의 원시 문자 점토판. 밭의 작물 수확량이 기록돼 있다. 옥스퍼드대 제공

농업의 시작과 함께 완성된 의식주 체계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의식주는 어떻게 발전해갔을까?

오랜 세월로 옛 흔적이 사라져 알아내기 어렵다. 주거의 경우엔 잠비아에서 발견된 약 50만년 전의 통나무 구조물 흔적을 가장 오래된 증거로 본다. 일부에선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DK유적)에서 돌들이 둥그런 모양으로 배열된 180만년 전 흔적을 최초의 건축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옷은 시작 시점을 짐작하기가 더욱 어렵다. 옷에 붙어사는 옷니의 유전자 분화 시기를 역산한 결과는 17만년 전이다. 간접적 증거인 가죽 긁개용 석기로 본 시점은 40만~80만년 전이다. 가죽을 닦는 도구는 모피로 옷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바늘과 같은 직접적인 증거는 3만~7만5천년 전에 나타난다.

인류의 의식주 체계는 농업의 시작과 함께 완성됐다. 250만년 이상 이어져 온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의 마지막 빙기가 1만1700년 전 끝나고 온화한 세상이 찾아왔다. 이 무렵을 전후해 인류도 오랜 수렵채집 생활을 끝내고 한 자리에 정착해 경작을 시작했다. 문명사회의 첫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 독자적으로 농경을 시작했다.

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그린 기원전 1200년 무렵의 고대 이집트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그린 기원전 1200년 무렵의 고대 이집트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류는 이 과정에서 사냥, 노동력, 식량 등에 쓸 요량으로 몇몇 동물을 의식주 체계에 끌어들였다. 1만5천~2만년 전 늑대의 일부가 인간 세상으로 들어와 개로 길들여진 것을 시작으로 양, 소, 돼지, 고양이, 당나귀, 말, 닭 등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인류가 농경을 위해 정착한 곳은 마을에서 도시로, 다시 국가로 발전해갔다. 이 과정에서 도구도 석기에서 청동기로, 다시 철기로 더욱 정교하고 단단해졌다. 이어 5천년 전 문자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선사시대를 끝내고 역사시대라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젖혔다.

수천만년에 걸친 인류 진화사는 하나의 직선 형태로 진행되지 않았다. 소규모 집단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모든 변화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척박해진 환경, 낯선 환경에서 부닥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 설 수 있는 조건을 하나하나씩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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